영화 <톰보이> 포스터.

영화 <톰보이> 포스터. ⓒ (주)영화특별시SMC

 
올해 초 셀린 시아마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는데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 등과 경합을 벌이며 각본상과 퀴어 종려상을 수상해 이름을 알렸다. 사실 이 작품은 비단 칸영화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유수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각 부문 후보에 오르고 또 수상하는 등 일찌감치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여 15만여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레즈비언이자 페미니스트로,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여성 중심의 퀴어영화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04년에 단편을 내놓고 2007년 정식으로 장편 데뷔를 한 그녀는, 그 때부터 전 세계 평단의 지지를 받아왔다. 영화의 기조가 보다 '다양'하고 '올바르게' 바뀌고 있는 와중에 그녀의 영화적 표현 방식이 합당하게 받아들여진 것일 테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러서는, 평단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하여 그녀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전 작품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면서 그녀의 두 번째 장편이자 2011년작 <톰보이>가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톰보이>는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고 '코로나 시대'임에도 3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 아이처럼 보이고 싶은 여자 아이 로레

새로 이사 온 '남자' 아이처럼 보이는 '여자' 아이 10살 '로레'. 하지만 그녀는 집밖에서 자신을 '미카엘'이라고 소개한다. 우연히 동네에서 만난 여자 아이 '리사'와 함께, 남자 아이들로만 이루어진 집단과 어울리게 된다. 로레는 아빠와 함께 운전 연습을 하는 한편, 여동생 '잔'과 함께 놀고 자고 목욕도 하는 등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낸다. 짧은 머리에 분홍색을 싫어하고 뛰어난 축구실력을 자랑하며 남자 아이들처럼 행동하려 한다. 

남자 아이들이 하는 행동, 이를 테면 축구를 하다가 더우면 웃통을 벗어던진다든지 괜히 침을 찍찍 뱉는다든지 하는 것들을 몰래 혼자 따라해 보곤 실전에 옮겼다. 하지만 축구를 하다가 다들 급하게 아무데나 서서 오줌을 쌌는데, 그녀만은 그렇게 할 수 없어 숲으로 달려가 볼 일을 봤다. 충격을 받았을 테다. 그런가 하면, 리사와 함께 재밌게 춤추고 놀다가 리사가 화장을 해 주는 게 아닌가. 그녀는 화장한 채로 집으로 왔다가, 엄마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만다. '잘 어울린다'고 말을 건네며 미소 짓는 엄마와 침울하고 복잡다단한 표정의 로레.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를 가게 되었는데, 로레는 가지고 있던 여자 수영복을 남자 수영복으로 수선한다. 그러곤 찰흙으로 남자의 성기를 만들어 수영복 안에 넣는 게 아닌가. 그날은 대성공이었다, 리사에게 키스까지 받았으니. 하지만 그녀가 헤처나가야 할 것들은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10살 아이의 찬란한 앞날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성장'과 '퀴어'와 '여성'의 이야기
 
 영화 <톰보이> 스틸컷

영화 <톰보이>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톰보이'는 영미권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단어인데, 거칠게 말하자면 활달하고 남성스러운 또는 그렇게 되고 싶은 10대 여자아이를 가리킨다. 영화 <톰보이> 속 로레/미카엘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톰보이의 뜻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이려 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아니, 오산이어야 한다. 로레는, 여자이지만 남자처럼 되고 싶어 하는 톰보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 것으로써, 일종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로레는 또한 본인의 성 지향성과 별개로 여자 아이 리사를 좋아한다. 그녀에게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그녀와 함께 있으면 즐거우며, 그녀에게서 키스를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다. 반면, 남자 아이들에게선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다만, 그 애들처럼 행동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남자 아이들의 집단에 남자처럼 행동하는 여자 아이가 설 자리는 없지 않을까. 그녀가 가야 할 곳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이들이다. 

여동생 잔은 로레를 이해해 준다. 그녀가 몰래 하려는 행동을 이해하고 감싸고 함께하려 한다. 그녀가 단순히 같은 여자이기에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이, 엄마는 로레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빠는 로레를 이해하는 듯하다. 그녀를 남자라고 생각해 이성적으로 좋아한 리사는 어떨까. 그 과정은 여성으로서의 성장일 것이고, 그 결과는 여성들의 사랑과 우정과 연대일 테다. 

이 영화가 복합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차 성징이 오기 전인 10살에 불과한 나이의 아이의 시선으로 보면 '성장'의 이야기로 비춰질 것이고, 엄연한 여성임에도 지향하는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시선으로 보면 '퀴어'의 이야기로 비춰질 것이며, 로레를 비롯해 리사와 잔의 주요 인물 간의 사랑과 우정과 연대의 시선으로 보면 '여성'의 이야기로 비춰질 것이다. 

그저 지켜볼 뿐, 가야 할 길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영화 <톰보이> 스틸컷

영화 <톰보이>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80여 분에 불과한 근래 보기 드물게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충분히 복합적인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이 아닐까 싶다. 보고 듣고 연구하고 해석하며 나름의 이론을 정립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삶의 토대 위에서 직접 맞딱뜨려 부딪히고 헤아려 본 과정과 결과가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정교할 수 없다. 

다시 영화를 들여다보며 로레의 입장에서 가장 힘들고 고민되는 지점이 어딜까 생각해 본다. 10살 아이 입장에서 그녀는 그저 남자 아이들처럼 행동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게 멋져 보여서 말이다. 거기에 무슨 이유를 갖다댈 수 있을까. 여자는 여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남자는 남자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케케묵은 논리? 그럼 로레는 트랜스젠더네 레즈비언이네 하는 섣부른 도식? 로레를 두고 이래라 저래라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로레는 로레로 충분하다. 그녀가 가야 할 길, 가고 싶은 길은 그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보살피고 챙기고 지지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물론 좋지만, 그 올바른 길의 바운더리를 '올바르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올바른 길을 향하도록 돕기 이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나야말로 올바른 성장의 길을 걸어왔는가? 지금이라도 다시금 올바른 성장의 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올바른 성장에, 성에 대한 의식과 생각과 재정립이 함께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세상에 자연스레 체득되는 건 많지 않다, 배우고 배워서 몸과 마음에 체득해야 한다. 매년 6월, 성소수자 인권의 달을 맞이해서라도 인식을 달리하는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까. 영화 <톰보이>가 또 하나의 좋은 교과서일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와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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