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준 강원대 교수.

류영준 강원대 교수. ⓒ 이영광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란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한 MBC 대표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 >이 최근 30주년을 맞았다. 이 프로그램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2005년 11월 22일 방송된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이다. 방송은 당시 스타로 떠오른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 후 < PD수첩 >은 황우석 교수 지지자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기도 했다.
 
< PD수첩 >이 당시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던 건 류영준 강원대 교수의 결정적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0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류 교수를 만나 당시 제보 상황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류 교수와의 일문일답.
 
- 지난 5월 9일로 MBC < PD수첩 >이 30주년을 맞았어요. 이 프로그램을 언급할 때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논문 조작 사건일 것 같아요.
"제가 2005년 5월 31일 방영되었던 < PD수첩 > 15주년 기념 방송을 보고 제보를 결심하게 되었는데요. 딱 두 배인 30주년을 맞은 < PD수첩 >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 당시 있었던 일들, 그때 15주년 특집 방송 내용, 그리고 그것을 보는 저... 아주 힘들었던 상황 등이 기억이 났습니다."
 
- 최근까지도 황우석 사태 관련 사항으로 고통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황우석 전 교수가 직접 나서서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어요. 최종심까지 무죄로 처리되는데 2년 정도가 걸렸고요. 결과가 좋게 잘 끝났지만, 이 건은 그 전과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 전 교수 지지자들이나 그에게 우호적인 언론들로부터 공격받았던 이전과 달리 황 전 교수가 직접 나섰거든요. 또 고소장을 보면 황 전 교수가 어떻게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황우석 사태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정리하는 의미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 황우석 교수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나요.

"원래 지도교수와 지도학생 관계이니 친했는데요. 그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친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서로 뜻이 같았고, 처음 출발이 어려울 때 제가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다른 관계보다 남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제보하기 얼마 전에 논문 조작이란 것을 알게 되었나요.
"3~4개월 전에 알았어요. 특허 보정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어요. 제가 실험실 줄기세포 팀장으로 있을 때 변리사와 함께 직접 특허 초별을 쓰고 국제 특허로 제출했는데요. 그 일을 맡은 변리사가 제 서울대 석사 동기였어요. 그 변리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황 전 교수 실험실에서는 떠나 일반 대학원생으로 수업만 듣는 상태였는데, 새로운 줄기세포가 수립되었다고 하니 특허 보정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저 다음에 들어온 사람들은 잘 모르고 하니 저를 찾아와서 설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줄기세포 11개가 새로 만들어졌다는 것과 임상시험이 2명에게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 < PD수첩 >에 제보하게 된 계기가 "우리가 능력이 없어서 방송을 못 내보낸 적은 있어도 외압으로 못한 적은 없다"라는 당시 최승호 앵커의 말 때문이라던데.
"2005년 5월 31일 밤 11시가 넘었던 시간인데 최승호 PD가 앞으로도 국민들을 보고 열심히 하겠다는 취지의 클로징 멘트를 했었죠. 그때 당시 전 황 전 교수가 벌인 그 상황 때문에 3개월 정도 속을 썩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 이것을 밝혀줄 언론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고요. 그 와중엔 (최승호 PD의 멘트를 듣고) '이 사람들이라면 혹시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유명한 교수, 박사, 의사 중 아무도 안 나서더라"

- 보도가 될 거라는 기대는 안 하셨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제보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거짓말은 사람들이 많이 하니 거짓말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는 제보할 수가 없었어요. 거짓말의 결과가 중요하죠. 돈을 벌기 위해서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나 권력을 얻기 위해서 등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거짓말은 저한테는 크게 감흥이 없었어요. 근데 그 거짓말로 인해서 누군가가 피해를 보잖아요. 돈을 잃는다는 건 그렇다 치는데 사람의 목숨을 잃는 상황은 저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마지노선이었거든요.
 
그때 당시 제대로 만들지도 못한 줄기세포와 검증되지도 않은 줄기세포를 가지고 임상실험을 하겠다는 계획을 두 건이나 들었잖아요. 그때 당시 10살짜리 소년과 파킨슨병 앓는 사람 등이 혹시 시술을 받아서 목숨에 문제가 생긴다면...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이잖아요. 제가 배아줄기세포 전공을 했기 때문에 과학적 한계를 속속들이 잘 알잖아요. 예를 들면 암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어요. 인체에 넣었는데 치료는커녕 암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누군가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몇 개월 동안 황우석 사단 내에 있었던 그 유명한 교수, 박사, 의사 중에선 아무도 안 나서는 거예요."
 
- < PD수첩 > 말고 제보한 데는 없나요?
"직접적으로 제보한 데는 없고요. 당시 언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공부하는 과정이 꽤 길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언론이 이걸 할 수 있는지 제가 타진해 보는 과정이 있었고 그 가능성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몇 군데 접촉했어요. 근데 그 과정에서 한국 보도 시스템에서는 (보도가) 다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을 것 같아요. 또 지금 언론은 어떤 것 같나요?
"사실 저뿐만 아니라 의사로서 과학자는 언론에 대해 잘 몰라요. 제보하고 사태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언론에 너무 큰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진영논리가 그렇게 심한지도 몰랐고 보도국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도 잘 몰랐지요.
 
1인 미디어 시대로 언로가 크게 확장되었지만, 언론사는 그때랑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는 달라진 모습이 조금 있는데 제가 볼 때 언론은 아직까지 그때 모습이랑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고난의 길... 회생 불능일 가능성 높은 일"
 
 류영준 강원대 교수.

류영준 강원대 교수. ⓒ 이영광


- 제보한 갈 후회한 적 없었나요?
"네. 후회한 적 없어요. 후회할 수가 없죠,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선택의 여지가 있으면 후회를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후회할 것도 없어요."

- 잠깐 눈 감고 모른 척하며 '난 거기서 나왔으니 책임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그 말이 맞아요. 저에게 법적인 책임이 없었지만, 사람이 죽는다는 결과에는 법적인 책임이나 논리 같은 게 안 통하거든요. 그걸 막지 않는 것은 그 사람 죽으라는 거잖아요.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는 그렇게 못 해요."
 
- 대한민국에서 내부고발자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가요?
"고난의 길이죠. 회생 불능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지금은 공익신고자 부패신고자를 보호하는 법들이 몇 개나 생겼는데 그 법들로도 감당이 안 돼요. 현실적으로 신고자들이나 제보자들은 하루가 급하거든요. 당장 잘 데가 없어요. 쫓겨다니고 그 다음에 소송당하고 그 다음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치료도 받아야 되지만, 쉴 데도 없고 도움 받을 때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걸 증명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걸 할 정신도 없어요. 그러니까 웬만한 정신력이나 집중력 아니고는 다 힘든 길을 가는 거예요."
 
- 제보한 후 교수님을 만나러 온 사람은 한학수 PD라고 들었어요.
"사실 텔레비전에서는 최승호 PD를 봤잖아요. 근데 한학수 PD가 와서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되겠더라고요. 믿을 만한 사람인지 판단해야 해서 제가 질문을 한 가지 던졌어요. 답변이 마음에 안 들면 제보를 안 하려고요. "PD님, 진실이 먼저입니까? 국익이 먼저입니까"라고 물었고, 한학수 PD가 망설임 없이 진실이 국익이라는 취지로 대답했어요. 제가 그때 마음을 굳히고 알고 있는 사실을 쏟아냈죠,"
 
- 한학수 PD를 비롯한 제작진들이 2010년 초중반 비제작 부서로 발령받기도 했었잖아요. 자주 연락도 하신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예전엔 제가 더 힘들었지만, 이후에 저는 교수가 되고 일상으로 돌아간 상태였지요. 그런데 MBC 상태가 그렇게 돼버려서 거꾸로 제가 만나자 하고 같이 밥도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해 들릴 수 있는 건 사실 없었어요. 근데 두 분이 대처를 너무 잘하셨어요. 결국은 한 분은 MBC 사장이 됐고 한 분은 다시 < PD수첩 > 진행자가 되었잖아요. 저로서는 그게 현실감이 없어요. 한국에서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요. 약간 판타지 같아요."
 
- 2018년 MBC가 정상화되면서 < PD수첩 >도 재정비 시간을 갖은 뒤에 방송을 시작했잖아요? 요즘 방송은 어떤가요?
"지금 MBC가 다시 정상화를 위해서 열심히 가고 있는데 제일 처음에 정상화된 프로그램이 < PD수첩 > 아닌가 해요. 사람들 신뢰도 거기서부터 회복되는 것 같고, 수치로 봐서도 많이 나아졌잖아요. 역시 MBC 정신이 그래도 강하게 발현되고 유지되는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계속 좋은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고 있습니다."
 
- 교수님이 보는 < PD수첩 >의 매력 혹은 장점이 뭐라고 보세요?

"두 가지인데요. 송곳과 같은 진실의 힘과 경험이 말하는 겸손함이죠. 두 가지가 같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요. 15주년 특집 때는 송곳 같은 힘이 아주 잘 나왔다면, 지금 30주년 < PD수첩 >은 겸손하고 논리적으로 잘 전달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 PD수첩 >이 앞으로 어떤 방송을 하길 바라세요?
"지금처럼 외압이 계속 있을 거예요. 근데 외압 견디는 힘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다른 건 없고, 사실의 힘과 겸손함, 이 두 가지만 잘 유지하면 외압에 잘 견딜 거라고 보고요. 망설이는 제보자들한테 힘을 주는 그런 강한 진행자가 계속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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