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1985년의 삼미 슈퍼스타즈와 불명예 기록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최원호 감독대행이 이끄는 한화 이글스는 1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에서 홈런 2방을 포함해 안타 9개를 허용하며 2-5로 패했다. 지난 5월 22일 NC다이노스와의 원정경기 5-3 승리 이후 연패를 이어온 한화는 한용덕 감독이 교체된 후에도 연패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끝내 1985년의 삼미와 역대 최다연패 타이기록(18연패)을 작성했다(7승 27패).

한화는 연패 탈출을 위해 작년 11승을 올렸던 외국인 투수 채드 벨이 선발로 등판했지만 벨은 4.1이닝 동안 6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4실점으로 부진하며 조기 강판을 당했다. 반면에 2군 선수가 대거 합류한 타선은 크리스 플렉센 대신 등판한 임시선발 최원준에게 5이닝 동안 2안타 7삼진 무득점으로 꽁꽁 묶이고 말았다. 한화는 9회 22이닝 만에 득점에 성공했지만 끝내 경기를 뒤집진 못했다. 

'장명부 돌풍' 사라진 후 찾아온 역사적인 18연패의 굴욕
 
 12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경기. 한화가 두산에 5-2로 패한 후 한화 더그아웃의 코치진과 선수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12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경기. 한화가 두산에 5-2로 패한 후 한화 더그아웃의 코치진과 선수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 원년 .188(15승 65패)이라는 역대 최저 승률로 최하위에 머문 삼미는 1983 시즌을 앞두고 재일교포 투수 '너구리' 장명부를 영입했다. 장명부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시절 두 차례나 15승 시즌을 만들며 통산 91승을 따냈을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올린 투수였다. 비록 전성기가 지나긴 했지만 아직 아마추어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한국 무대에서 장명부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삼미 구단은 장명부에게 "30승을 하면 1억 원을 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원년 최고 몸값을 받았던 OB 박철순의 연봉이 2400만 원이었다)을 했고 장명부는 이 목표를 위해 열심히 마운드에 올랐다. 1983년 60경기에 등판한 장명부는 무려 427.1이닝을 던지며 36번의 완투를 포함해 30승 1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6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삼미는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억 원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삼미 구단과 감정이 상한 장명부는 1984년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로 13승 20패로 부진했고 삼미도 1년 만에 꼴찌 자리를 되찾았다. 삼미는 1985년 구단 재정이 더욱 힘들어졌고 1985년 3월 31일 롯데 자이언츠전부터 4월 29일 롯데전까지 약 한 달 동안 18연패라는 엄청난 부진에 빠졌다. 결국 삼미는 전기리그 종료 후 청보식품에 매각됐다(삼미를 인수한 청보 핀토스 역시 만년 꼴찌에 허덕인 건 마찬가지였다).

삼미의 18연패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약팀을 이야기할 때 야구 팬들에게 자주 소환되는 기록이다. 물론 프로농구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32연패와 프로배구 한국전력 빅스톰의 25연패 등 훗날 타 종목에서 삼미를 능가하는 기록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변수가 워낙 많아 연승만큼 연패를 하기도 어려운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삼미의 18연패는 여전히 스포츠 팬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있다.

IMF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주력 선수들을 팔면서 간신히 팀을 운영하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지난 1999년 팀이 해체 직전에 몰렸을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쌍방울의 연패 기록도 '17'에서 멈추면서 삼미의 기록이 얼마나 깨기 힘든 대기록(?)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줬다. 하지만 삼미의 18연패 기록이 작성된 지 35년이 지난 2020년, 드디어 삼미를 따라 잡은 팀이 등장했다.

3주 만에 삼미 따라 잡은 한화, 고졸 루키에게 팀의 운명 맡겼다

사실 한화 이글스는 2010년대를 대표하는 KBO리그의 대표적인 약체 구단이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10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를 밟지 못했고 이 기간 동안 최하위만 5회나 기록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3년 연속 꼴찌에 머물렀고 2012년 '괴물'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은 탈삼진 1위를 차지하고도 프로 데뷔 7년 만에 처음으로 두 자리 승수를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한화가 그렇게 오랜 기간 암흑기를 보냈음에도 연패 기록 만큼은 삼미의 기록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화는 2012 시즌 마지막 경기를 시작으로 2013 시즌 개막 13연패를 당하면서 팀 내 최다 연패인 14연패를 당했지만 삼미의 기록에는 4패나 부족했다. 하지만 역시 모든 불행은 방심에서 찾아오는 법. 한화는 2년 만에 가을야구 복귀를 노렸던 2020 시즌 뜻밖의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한화는 시즌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던 이적생 장시환을 비롯해 이태양, 안영명, 장민재, 김이환 등 핵심 투수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할대 초반, 때론 1할대 타율로 부진에 허덕이는 주력 타자들의 부진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투타 불균형으로 다른 팀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던 한화는 지난 7일 한용덕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음에도 분위기 반전을 만들지 못했다.

롯데와의 주중 3연전에서 스윕을 당하며 17연패를 기록한 한화는 대전으로 돌아와 '디펜딩 챔피언' 두산과 만났다. 마침 12일 경기에서는 두산이 플렉센의 부상으로 대체 선발 최원준이 등판하면서 한화에게도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1회부터 박건우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맞은 한화는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끝에 2-5로 패하며 1985년 삼미의 기록과 타이를 만들었다.

최원호 감독대행이 부임하자마자 장시환, 김이환 등 기존의 선발 투수들을 2군으로 보낸 한화는 13일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부산고 출신의 루키 한승주를 선발로 예고했다(상대는 통산 91승을 기록하고 있는 베테랑 좌완 유희관이다). 한화는 KBO리그 역대 최약체 팀으로 기록될 수 있는 중요한 기로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고졸 신인에게 너무 큰 짐을 떠맡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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