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나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같은 인기 드라마는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점점 올라가다가 최종회에 정점을 찍는 경우가 많다. 열연을 펼친 주역들은 드라마가 끝나면 배우로서의 가치가 한 단계 올라가며 다수의 차기작 제안을 받는다. 또한 드라마를 만든 제작사에서는 제작진과 배우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포상휴가를 보내주며 인연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예능의 경우는 다르다. 아무리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예능이라도 인기가 절정일 때 종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방송국들은 자사의 인기 예능이 힘이 빠지고 시청률이 떨어져 경쟁력을 완전히 잃을 때까지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예능 프로그램들의 끝이 언제나 초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시대 최고의 예능인 유재석도 "배우들의 종방연이 부럽다"며 예능의 생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지난 4월 햇수로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장수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의 4번째 시즌을 종료했던 KBS가 최근 또 하나의 예능프로그램을 잠정중단하기로 결정했다. 1999년 9월에 첫 방송돼 21년 동안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준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이하<개콘>)가 26일 방송을 끝으로 잠정 종영한 것이다. 오직 <개콘> 하나만 바라보고 일주일을 투자하던 수많은 개그맨들이 열정을 불태우던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몇 번의 위기 속에도 '국민 코미디' 자리 지킨 <개그 콘서트>
 
 김병만은 <달인>을 통해 만능 캐릭터를 얻어 <정글의 법칙>의 족장 자리까지 꿰찼다

김병만은 <달인>을 통해 만능 캐릭터를 얻어 <정글의 법칙>의 족장 자리까지 꿰찼다 ⓒ KBS 화면 캡처

 
1999년 7월 파일럿 방송이 나간 지 두 달이 지난 9월 정규 편성된 <개콘>은 대학로 무대에서 한창 유행하던 공개 코미디를 지상파 방송으로 가져 온 신선한 시도가 돋보이는 예능이었다. 특히 SBS 출신의 심현섭과 김준호, 희극인실 막내였던 김영철, 김대희, 김지혜 등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급 개그맨들이 약진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새로 합류한 박준형, 박성호, 강성범이 보여준 개그들도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개콘>은 2003년 초 심현섭 등 원년 멤버와 이병진, 박성호, 김숙 등 특정 소속사 개그맨들이 집단 하차와 동시에 SBS로 이적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개콘>은 이미 내부적으로 빠른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었고 박준형을 중심으로 정종철, 이정수, 정형돈, 임혁필, 김병만, 김다래 등 또 다른 신예들이 급부상하면서 멋지게 위기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개콘>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박준형은 2003년 KBS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중반 컬투를 앞세운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약진하면서 또 한 번 위기에 빠진 <개콘>을 구한 이들은 '<개콘> 역대 최고의 기수'로 불리는 KBS 공채 19기였다.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 김상태, 황현희, 강유미, 안영미, 김대범 등으로 구성된 19기는 <깜빡홈쇼핑> <황현희PD의 소비자고발> <사랑의 카운슬러> 등 선보이는 코너마다 대박을 터트리며 <개콘>을 다시 적수가 없는 국민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부활시켰다.

2008년 <개콘>의 재도약을 견인했던 박준형과 정종철이 MBC의 <개그야>로 이적했지만 <개콘>은 김준현,박성광,박영진,송준근,박지선,장도연,허경환 등으로 대표되던 22기의 활약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2007년 12월 첫 방송된 <달인>은 2011년 11월까지 무려 3년 11개월 동안 방송되면서 <개콘>을 지탱하는 에이스 코너로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사랑 받았고 '영원한 족장' 김병만이라는 만능 예능인을 탄생시켰다.

2010년대 들어서도 <개콘>은 여전히 건재했다. 김준현이 <네가지>, 김원효가 <비상대책위원회>로 인기를 주도했고 정태호, 신보라, 김기리 같은 신예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개콘>을 연출한 서수민 PD는 2013년 3월 한국PD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개콘>은 백상예술대상에서도 무려 세 차례(2000, 2009, 2012년)에 걸쳐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국민 코미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대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개콘>
 
 김대희(왼쪽)와 신봉선의 연애 스토리를 담은 <대화가 필요해 1987>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김대희(왼쪽)와 신봉선의 연애 스토리를 담은 <대화가 필요해 1987>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 KBS 화면 캡처

 
하지만 <개콘>은 2013년부터 지나친 게스트 의존과 비슷한 콘셉트의 코너 남발 등으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6주간 결방 되면서 많은 코너들이 소리소문 없이 종영된 것도 <개콘>의 위기를 부추겼다. 외부적인 요인이나 특정사건, 인물 등에 원인이 있었다면 금방 해법을 찾아냈겠지만 내부적으로 조금씩 곪아가는 것은 제작진과 출연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 <개콘>에는 <달인>이나 <대화가 필요해> <골목대장 마빡이> <씁쓸한 인생> <네가지> 같은 소위 '에이스 코너'들이 있었다. 이런 장수 코너들이 프로그램을 지탱해 주면 사이드로 실험적이고 신선한 코너들을 배치해 다양한 취향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자리 시청률 벽이 깨진 2015년 이후에는 장수코너 없이 단타를 노리는 코너들만 연속으로 이어지며 고정 시청자들이 점점 떨어져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물론 <개콘> 제작진들이 '부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니다. 한동안 <개콘>을 떠나 있던 김준호, 신봉선, 장동민, 양상국, 장동혁 등 소위 '역전의 용사'들이 대거 <개콘>에 복귀한 것. 하지만 OB들의 복귀도 하락세의 흐름을 반전시키진 못했다. 그렇다고 유세윤, 이수근, 김병만, 정형돈, 김준현, 박나래, 장도연처럼 이미 <개콘> 밖에서 큰 성공을 거둔 개그맨들의 복귀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개콘>은 해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떨어졌고 지난해 12월 토요일로, 지난 4월에는 금요일로 시간대를 옮겼지만 시청률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개콘>의 무기한 휴방을 앞두고 모인 마지막 연습 날 공채 32기 개그맨이 여자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대형 악재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사실상 폐지나 다름 없는 잠정 종영이 결정된 상황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조차 힘들어진 것이다.

주말 저녁 시청자들의 웃음을 책임졌고 매주 티켓을 구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던 <개콘>은 결국 26일 한 명의 관객도 없이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았다. <개콘>의 '졸업식'으로 이제 지상파 방송국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대중들이 코미디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뀐 지금, 최후의 보루였던 <개콘>의 폐지로 위기를 맞은 개그맨들은 생존을 위한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개콘>은 대한민국을 웃기는 힘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끝인사를 남겼지만 이 약속이 지켜 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개콘>은 대한민국을 웃기는 힘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끝인사를 남겼지만 이 약속이 지켜 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 KB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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