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에어로너츠> 메인 포스터 영화 <에어로너츠> 메인 포스터

▲ 영화 <에어로너츠> 메인 포스터 영화 <에어로너츠> 메인 포스터 ⓒ 씨나몬(주)홈초이스


01.
영국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James Glaisher)는 1840년 그리니치 천문대의 기상 및 지자기부 초대 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영국 왕립기상학회 창립자의 한 사람으로 영국의 첫 일기도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늘 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니치 천문대에 근무하면서부터 였다고 한다. 19세기 말 열기구를 이용한 상공 탐사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그 역시 미지의 세계인 상공 탐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열기구 전문가였던 헨리 콕스웰(Henry Coxwell)이 그의 파트너가 되었고 1862년 7월 17일 첫 비행에 성공한다. 그들은 열기구 이륙 12분 뒤에 구름 위로 오른다.

이후 몇 차례의 추가 비행 이후, 9월 5일에는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던 최고 고도를 목표로 도전을 시도한다. 나침반과 온도계, 브랜디 병과 비둘기 6마리를 실은 열기구는 8000m가 넘는 높이까지 올랐다. 이전까지는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던 최초의 기록이었다. 기쁨도 잠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기압 변화로 감압증 증상이 일어나며 팔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고 말도 잘 나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열악한 환경이 계속되자 콕스웰은 고도를 낮추기로 한다. 하지만 열기구 가스를 방출하기 위한 밸브 라인에 로프가 얽혀 있었고, 그 역시 감압증으로 손발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 무렵, 글레이셔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황. 당시 열기구는 1만 미터를 돌파해 성층권에 돌입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02.
톰 하퍼 감독이 연출한 영화 <에어로너츠>는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하늘을 이해하고 싶은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에디 레드메인 분)와 가장 높은 하늘을 만나고 싶은 열기구 조종사 어밀리아 렌(펠리시타 존스 분)이 하늘을 탐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존 인물인 영국의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로, 지난 2013년 발간된 리차드 홈스의 소설 <Falling Upwards : How we Took to the Air>의 내용을 톰 하퍼 감독이 직접 각색했다.

이번 영화는 제임스 마쉬 감독의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에서 루게릭병을 앓게 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연기한 배우 에디 레드메인과 그의 아내였던 제인 와일드 호킹 역의 배우 펠리시티 존스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다.

각색 과정에서 실존 인물이었던 콕스웰 대신 어밀리아 렌이라는 인물이 만들어지며 두 사람이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상의 인물인 어밀리아 렌은 프랑스에서 여성 최초의 전문 열기구 조종사로 활약했던 소피 블랑샤르(Sophie Blanchard)를 모델로 탄생시켰다고 한다.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03.
영화는 열기구 메머드의 이륙을 준비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상학자인 제임스와 열기구 조종사 어밀리아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높이 25m에 이르는 거대한 열기구를 타고 프랑스인이 세운 종전의 기록 7010미터를 넘어 역사상 가장 높은 곳을 향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미 많은 비용을 들였고, 이 소식을 듣고 열기구의 비행을 구경하러 온 만 여명의 관객들 역시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 이성적이고 차분한 성격의 제임스와 달리 쇼맨십이 뛰어난 어밀리아. 함께 비행을 해야하는 두 사람이 서로 완전히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약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갑작스런 기상 변화다.

제임스가 다양한 방법의 측정을 통해 열기구를 운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날을 골랐지만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에 현장에 모인 관계자들은 열기구의 이륙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 장면이 영화의 가장 처음에 배치된 것은 당시의 '날씨'가 얼마나 불확실한 요소였는지, 그리고 제임스가 왜 하늘을 향하고 싶어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다. 기상학자인 제임스가 하늘을 향하고자 하는 것은 기상과 날씨를 미신이 아닌 과학으로 이끌어 내 정확히 측정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04.
영화 <에어로너츠>에서 사실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완벽한 사실'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다양한 지점에서 감독의 의도로 보이는 각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에서 각색을 얼마나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잠시 내려놓도록 한다. 그 중에서도 제임스 글레이셔와 헨리 콕스웰이 진행했던 수 차례의 비행 시도를 단 한 번의 비행으로 묶어낸 부분은 아주 적합한 선택이다.

사실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자 했다면, 영화 속에서 열기구의 이륙이 수 차례 반복되었을 것이며 이는 관객들에게 반복으로 인한 피로감만 증가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광환의 목격과 최고 고도를 목표로 한 비행은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났다. 또한, 극의 흐름이 지금처럼 간결하고 심플하지 못했을 텐데, 이는 관객들의 시선이 두 인물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재한 모든 비행을 하나의 큰 비행으로 치환하며 극의 몰입을 이끌어 내고 이야기의 밀도를 높여낸다.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05.
당신의 평판은 종이 위에 쌓이지만
나의 평판은 환호 위에 쌓여요.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커다란 비행이 중심이 되며 과거 혹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긴 하위 스토리들이 극의 사이사이에 배치되며 쌓여 나간다. 자신만의 확고한 꿈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부모조차 믿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일로 평생을 조롱만 당하던 제임스와 평생을 함께해 온 열기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만 했던 어밀리아의 이야기. 그런 두 사람이 지금, 어떻게 함께 열기구에 오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과정의 이야기까지 모두 말이다. 그렇게 쌓인 이야기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두 사람의 동인(動因)으로 활용된다.

한편, 이 영화에는 극의 주요 순간마다 두 사람이 함께 타고 있는 열기구의 고도를 알려주는 그래프가 등장한다. 하늘 위 열기구를 배경으로 하나의 레이어가 덧입혀져 그래프 형식으로 진행과정과 고도가 표기되는 것. 표면적으로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매듭지어지는 순간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타 작품에서 간혹 등장하는 특정 단어나 문구의 막(幕)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06.
기술적으로 보면,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부분은 열기구의 가스 배출 밸브가 얼고 제임스는 저산소증과 감압증으로 정신을 잃어가는 순간이다. 밸브를 열어야만 열기구를 하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어밀리아가 얼어붙은 열기구의 외벽을 맨손으로 오르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빙벽을 타고 오르는 듯한 장면 덕분에 <버티칼 리미트>(2000)나 <노스페이스>(2010)와 같은 산악 재난 영화를 보는 듯 하다. 하지만, 감정적인 측면에서 클라이막스가 되는 곳은 따로 있다. 더 높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제임스와 당장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밀리아의 트라우마가 서로 부딪히는 순간이다.

공기 층을 하나 지날 때마다 열리는 미지의 세계를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지상에서 있었던 숱한 무시와 조롱을 지워내고자 하는 제임스에게 있어 새로운 사실의 발견은 목숨보다 중요하다. 무게에 제한이 있는 열기구에 하나의 도구라도 더 싣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방수복조차 버리고 올라 탄 이유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한 어밀리아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미 하늘 위에서 누군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상실은 결코 견딜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곁에 머물던 이를 죽도록 내버려 두면 절대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트라우마가 부딪히며 영화가 그동안 쌓아온 두 사람의 감정은 불꽃을 만들게 되고, 그간 서로가 알지 못했던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그 갈등은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전환된다. 제임스가 쓰러져 있는 동안에는 온몸을 던진 어밀리아가,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을 것만 같은 순간 어밀리아가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묘안을 떠올린 제임스가,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지켜낸다.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07.
한 평 남짓한 공간, 열기구의 바스켓 안에서 두 배우 에디 레드메인과 펠리시티 존스는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케미를 다시 한번 보여주기 위해 어밀리아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믿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각자의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커스에 가까운 곡예를 직접 선보이기 위해 태양의 서커스 공중 곡예사에게 실제 곡예를 배우며 스턴트 연기를 준비한 펠리시티 존스와 고공에서 감압증을 겪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직접 저산소증 훈련까지 받았다는 에디 레드메인. 이미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캐릭터에 훨씬 더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면서 작품 속에 깊이 빠지지 않을 관객이 어디 있을까.

두 사람의 목표 지점이었던 종전의 기록 7010미터. 이 구간을 지나는 순간, 환희와 기쁨에 찬 제임스와 어밀리아는 '당신의 열기구에 태워줘서 고마워요'라고 서로에게 진심을 건넨다. 성격도 다르고 걸어온 길도 다른 두 사람. 심지어 이 열기구에 올라탄 이유도 모두 다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함께 비행하는 동안 서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마음속 각자의 짐을 한 꺼풀 덜어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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