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개봉한 독립영화 <바람의 언덕>은 올 초부터 지난 5월 말까지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다소 생소한 상영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전국의 관객들과 만나 왔습니다. 전국 각 지역의 영화 커뮤니티와 독립예술영화 극장 등에서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며 '아주 특별한 여정' 이어갔습니다. 그 여정의 기록을 개별 커뮤니티 혹은 개인의 소개와 극장 소개가 포함된 연재를 통해 전합니다. 그 아홉 번째는 <바람의 언덕>의 배우 김태희가 보내온 편지입니다.[편집자말]
누구는 태어나지마자 헤어지고, 누구는 그런 헤어짐을 반복하고, 누구는 뜻하지 않게 헤어진다. 이 영화 <바람의 언덕>은, 용진 아버지의 제사로 시작된다. 누군가 자신의 운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변의 산 사람들은 삶을 지속하여야 한다. 용진이는 어쩐지 엄마가 없다. 살아있는 아버지도 영화에 나온 적 없고, 그 흔한 사진조차도 없다. 다만 그의 아버지가 아팠고, 거동이 불편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꼭 내 이야기 같다. 아니 우리 집의 이야기가 이 안에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감독님은 배우들의 상황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인간성과 함께 녹여내려는 듯, 깊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으신다. 더더욱 이번 영화는 전작보다도 그 바라봄이 더 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용진'이며 배우 김태희이고, 우리 둘은 어느 정도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용진이가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이 조금 더 빨랐을 뿐이다. 용진의 삶을 핑계로 나는 법원에 갔다. 사망신고서와 여타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서류들이 놓여있었고, 몇 줄을 적게 되면 누군가 있었다는 것이 서류상에서 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법원 안에 들어서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말하지 않지만 느껴지는 눈빛과 호흡, 동작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사하듯 다가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삶들이 느껴진다. 후회, 슬픔, 후련함 등 다양한 감정들이 너무나도 압축된 공기 속에서 흐른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연기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리도 흥미롭지 못하고, 죄스러울까? 감히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노력으로 가상 또는 실제적인 인간을 연기한다는 오만은 어떻게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연기를 잘한다는 평가가 무엇인지 항상 의문이다. 그 안에 나의 잔재주를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속성을 다른 위치에서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발표회 같은 평가는 좋던지 나쁘던지 매우 불편하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삶을 영위하는 것 안에서, 누군가의 삶이 단순히 재주로 시연된 정도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고민하여도 그건 나만의 센티멘탈한 변명거리 밖에 되질 않는 듯하다.

모든 장르가, 영화가, 연기가 이러한 맥락을 갖는 건 아니지만, 이 부분을 시작조차 못한다면 길을 잃고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드는 불나방이 되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보아왔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용진과 같이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부를 내려놓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동료들을 바라보고 가야만 이것이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역할의 의상을 구입하러 동묘시장에 갔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용진이 '나'라는 생각에 내가 입고 싶은 재킷을 구입했다. 가격이 저렴했음에도 누군가는 메이커라고 딴죽을 걸었지만, 못 들은 척 넘어갔다. 촬영 끝나고도 계속 입을 건데, 잘 사야한다. 이럴 때, 나는 참으로 합리적인 인간이 된다.
 
 "동묘시장에서 옷을 구입하고, 입어본다." (좌로부터) 배우 정은경과 김태희, 배우 장선과 정은경

"동묘시장에서 옷을 구입하고, 입어본다." (좌로부터) 배우 정은경과 김태희, 배우 장선과 정은경 ⓒ 영화사삼순

 
이렇게 의상을 준비하고 용진의 직업을 배우고... 용진의 직장은 세차장이다. 그 세차를 위해 강원도 원주에도 다녀왔다. 촬영장소이면서, 용진의 가게가 위치한. 세차를 배우면서, 세차가 그래도 쉽지 않기에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운전도 감독님의 전작인 <재꽃>때문에 배웠고, 차에 대한 관심 자체가 낮기는 하다. 세차는 역시 자동세차가 편하지만,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기에 직업으로는 생각해볼만 하다는 생각으로 나름 열심히 배웠다.
 
 세차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이자 감독님의 지인

세차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이자 감독님의 지인 ⓒ 영화사삼순

 
많이들 물어본다. 촬영 현장에서 어떻게 지냈냐고. 그 질문 뒤에는 사람들의 걱정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촬영장 내 기 싸움에 대해 듣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엔 그런 경우가 많았겠지만 지금은 촬영 생태계가 많이 변했기에 다들 현장에서 소중히 지내려고 한다. 그러나, 불안함과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일이라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이기에 우리는 항상 새로워질 필요가 있고 노력을 하게 된다.
 
 새로워지려는 노력 중인 정은경 배우

새로워지려는 노력 중인 정은경 배우 ⓒ 영화사삼순

 
그 외에 전국에서 가장 작다는 태백 이마트를 꼼꼼히도 다녔다. 눈이 오나, 비가 와도, 꼭 갔다. 가면, 별의 별 것이 다 있어서 즐거웠다. 새로워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비워야 채운다. 나쁜 감정들이나 생각들이 지워져야 누군가를 받아들인다. 내 생각의 틀로는 누군가를 규정짓는 것만이 가능하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쩌면 판단의 늪에서 빠져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나마 생각할 틈을 만들 수 있다고 (나는) 믿는 것 같다.

모두들 그러했다. 각자를 존중하고, 더 나아가지 않았다. 고치려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였다. 사실, 이는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아니면 이제는 내가 나이를 너무 먹은 건지도. 20대 때는 고통스럽게 무언가를 배워 나갔다. 어느 사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적어지고, 듣는 것들도 경험 속에서 걸러지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지를 흐르는 시간 속에서 판단하게 된다.

비록 현재는 그 선택들이 어중간하고 답답할지라도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묵묵히 시야를 좁히고 걸어왔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는 건 특별하다. 그런 배우들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좁고 불안을 가진 자들과 작업하는 일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취를 필요로 하고, 그 성취로 이야기 하기 때문에, 그것에 관심이 덜 한 사람들과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같이 나아가는 것은 나에게도 많은 잡념을 떨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 간 태백에 단 4명이 나오는 영화를 찍었다.

이름에 관해서들 묻는다. 왜 '용진'이냐고. 친구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내 기억 속 가장 최초의 동네친구, 고향친구. 그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영화를 보러 오라고.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친구는 바빠서 나중에 온다고 했다. 역할 이름이 '용진'이라고 말했더니, 영화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 이름이라며, 글자 너머로 쑥스러움이 느껴졌다.

태백, 그 안에서의 여정을 기록하다

영화를 찍는다. 우리는 그 영화를 보고, 기억하고, 잊는다. 나는 그 안에서 배우라는 포지션에 위치해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팀 모두가, 그리고 나아가서 관객이 납득할 만한 연기를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다보면, 그 과정 안에서 다 담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들은 같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노력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순간들이다. 배우들에게 영화 안에서 자신의 모습은 큰 선물로 남겠지만, 나머지 많은 스태프들은 어쩌면 회자되기도 힘들고 영화 안에서 더더욱 자신의 모습을 보기 힘들 것이다. 배우라는 직업은 노출이 주가 되는 직업이지만, 그 외 포지션들은 뒤에서 흔적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볼 수 있다. 적어도 우리 <바람의 언덕> 내에서는 말이다. 내가 나오지 않는 많은 순간순간들을 카메라 밖에서 볼 수가 있었다. 스태프들이 한 장면, 한 장면을 위해 조명기를 든 채 뛰고, 현장을 체크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왜냐하면, 멋있으니까. 사람들은 무언가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고 움직일 때, '멋있다'.
 
 조명감독님의 선글라스가 멋있다

조명감독님의 선글라스가 멋있다 ⓒ 영화사삼순

 
이번에 스태프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배우들의 모습은 어쩌면 영화 안에서 가장 멋있겠지만, 스태프들은 그 뒤에서 영화를 만들어 내는 그 순간순간이 멋있을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위해 달릴 때, 우리는 한 가지에 집중을 하고 외부와의 단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상황과 순간에 집중하며 자신의 감각에 모든 것을 걸 때, 원초적이면서 본질적인 에너지가 살아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배우로서 인간의 그런 부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다양한 상황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열정을 이해해야만 캐릭터를 넘어 하나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구나 눈에 띄고 싶고 인정받고 싶지만,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이란 그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촬영현장) 위에서 바라 본, <바람의 언덕>의 한 장면

(촬영현장) 위에서 바라 본, <바람의 언덕>의 한 장면 ⓒ 영화사삼순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영화를 위해 포지션이 다르게 있는 것이다. 사람(스태프)이 많지도 않고 돈도 없다는 것이 어떠한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좋은 것들을 이뤄내기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든다.

무엇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카메라는 무엇을 찍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잘 모른다. 그냥 순간순간 멋있다고 생각되는 장면을 찍었다. 많이 찍기도 했지만, 그만큼 다양한 상황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남겨야 했다. 촬영이 없을 때는, 가장 한가한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이다. 결국 내 사진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바람의 언덕> 포스터로 사용됐고, (개봉용) 보도 자료로 사용됐다.
 
 선물처럼, 우리들의 기록처럼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로 사용됐다

선물처럼, 우리들의 기록처럼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로 사용됐다 ⓒ 영화사삼순

 
사진을 이렇게 돌아보면,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진에 담지 못했던 다양한 상황들도. 태백은 눈이 참 많이 오는 동네이다. 나는 서울에서 살았기에 그런 눈들을 뉴스에서나 만났지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은 처음이기에, 신비로웠다. 그런 신비로움 속에 우리가 갇혀 있다는 것도 영화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상황들이었다.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다. 언제까지나 삶을 여행하듯 살 수는 없을 것이고, 꺾일 때도 올 것이고, 포기할 때도 올 것이다. 그럴 때, 추억을 붙잡는 것이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름답기 위해서만 사는 것도 아닐 뿐더러 우리의 초라함이나 외로움이 추억에 의해 편안해 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갔다는 기록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길을 잃어갈 때 쯤 하나의 작은 나침반이 되어서 방향을 알려 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바람의 언덕> 촬영현장에서. 정은경 배우

<바람의 언덕> 촬영현장에서. 정은경 배우 ⓒ 영화사삼순

 
삶은 생각보다 흥미롭고 외롭고 두렵지만, 재미있다. 감히 규정할 수 없지만, 세상의 크기는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던져오는 질문과 과제를 모두 소화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것을 다 끌어안지 못해 스스로 이렇게 저렇게 하기로 정하며, 요동치는 마음을 한 곳에 묶어두려고 애를 써 보기도 한다.

그러려면 그 안에서 요동쳐야 한다. 그 에너지에 집중하고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그 파장이나 길이가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믿고 싶다. 나는 예술을 하는 것이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이상의 사회적 파장에 다른 이의 행동을 요구할 수 없다. 나의 작은 세계를 유지하는 것이 다른 이들의 세계를 의미 있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이 첫 단계이자 첫 발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의 언덕> 촬영현장에서. 정은경 배우

<바람의 언덕> 촬영현장에서. 정은경 배우 ⓒ 영화사삼순

 
영화에 나오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반면 나의 기록에만 존재하는 장면들도 있다. 나오지 않았기에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마법과 함께 여행하듯 뛰어오르는 이 사진이 좋다. 그리고 그 안에 다 소개하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좋다. 그들의 얼굴이 더 잘나게 찍히진 않았지만,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얼굴과 순간이었기에 좋아한다.

몇몇 사진들을 소개하며 이 불안을 정리한다. 극장에서 만나게 된다면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더 많은 이야기는 극장에서.
 
 뭔가 가장 불안해 보이는 사진. 프로듀서와 조연출, 촬영팀

뭔가 가장 불안해 보이는 사진. 프로듀서와 조연출, 촬영팀 ⓒ 영화사삼순

 
"우리 손잡을까요? 지난날은 다 잊어버리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이 노래는 우효의 '민들레'다. 전작 <재꽃>의 컬래버레이션 때, 알게 된 이 노래를, 이상하게 '항해'와 혼동하고 흥얼거리게 되었다. 가사를 천천히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았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를 마친 후, <바람의 언덕>은 '시네마로드쇼'를 시작했다. 여타 영화들이 서울에서 먼저 상영하고 지방을 가는 방식이었다면, 우리는 지역의 영화 공동체들을 개봉 전에 미리 만나게 됐다. 영화제의 힘이 조금 남아있고, 관심이 있을 때, 공동체 관객들, 대략 20명에서 50명 사이의 관객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 싶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관객'과 만남으로써 알게 되었다.
 
 영화 <바람의 언덕> 상영회 모습

영화 <바람의 언덕> 상영회 모습 ⓒ 영화사삼순

 
다양한 지역을 돌며 (지역) 관객들이 어떻게 영화를 감상하는지 알게 되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많은 커뮤니티가 영화를 읽는 소모임을 하는 것도 알게 됐다.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몰라도, 영화를 깊이 있게 읽으려는 노력이 존재한다는 일은 조금 반가워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같이 영화를 보고 관객과 배우와 감독이 그리고 더 나아가 스태프들까지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그보다도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시네마로드쇼에서 가장 큰 수혜를 얻는 사람들은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연기를 하며 매우 한정적인, 다양하지 않은 한정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비슷한 고민과 삶의 방식, 가치관 그리고 더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거리.

그런 것들은 삶을 매우 편안하게 만들지만, 삶의 매우 작은 일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안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그것이 어떤 솔직함을 내포하고 있다면, 더더욱 불편하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더 큰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두려운 순간. '솔직함'은 그 동안 내가 느끼지 못한 또는 겪지 못한 삶의 불안이 담겨 있다. 그 안에서 인간이 성장하고 나아갔기 때문에 그 솔직함은 매우 깨끗하게 느껴지고 귀 기울이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삶을 하나의 큰 계획으로 보고 원칙을 정하고 시스템을 운영하듯이 살아간다면, 고민도 적을 것이고 슬플 일도 별로 없고 성취에 대한 결과만으로 행복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근데 그렇게 해보니까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되는 듯하다. 삶에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을 그 톱니바퀴 안에서 만들어진 답으로만 채우게 된다면 힘들긴 하겠지만,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그걸 모를 리 없기에 어느 사이, 자신도 모르게 괴로움과 싸우고 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그런 모범 답안과 싸우고 있다.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와 결단. 힘이 들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만나야겠다고 모두들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많은 문제들 중 하나를, 어쩌면 나는 <바람의 언덕>과 만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관객들이, 우리들이, 살아남기 위해 원칙을 강하게 믿으며 살아가는지도 보게 되고, 원칙 밖 세상에 대한 불편함을 애써 억누르는 일들도 보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불편함이 그 안에서 함께 작용한다. 무언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삶을 조금 편안하게 살고 싶다. 그 편안함이란, 부끄러움과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이게 어려운 것은, 머리는 알지만 몸이 쉽게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고, 내 몸에 흘러 소화가 되어야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텐데. 그런 '쿨'함이 참으로 어렵다.
 
 영화 <바람의 언덕> 팀

영화 <바람의 언덕> 팀 ⓒ 영화사삼순

 
며칠 전, 나이가 비슷한 어느 바의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자신에게 77살 친구가 있는데, 인생 별 것 없다고 이야기를 하더란다. 이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소화가 되려면 앞으로 4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조금은 우리가 불안하고 모자란 존재이지만, 그것이 큰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재꽃>에 나오는 '민들레'의 첫 소절처럼 "우리 손잡을까요? 지난날은 다 잊어버리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의 용기를 조금은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바람의 언덕>과 '항해'하며,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은 알겠다.

다음에는 기타를 매고, 누군가의 삶을 동냥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작은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바람의 나그네 흘러가듯, 조용히 흘러간다." 영화 <바람의 언덕> 대구 상영회

"그렇게 바람의 나그네 흘러가듯, 조용히 흘러간다." 영화 <바람의 언덕> 대구 상영회 ⓒ 영화사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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