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에 나오는 이씨 왕실과 안동 김씨 권세가들처럼 누구나 다 앞날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산다.
 
드라마 속의 이씨 왕족과 안동 김씨들은 돈과 권력을 앞세워 무녀·사주가·관상가들을 불러모으고 이들부터 자신들의 미래를 듣곤 한다. 마음에 안 드는 점괘를 내놓으면 은밀히 살상을 가하면서도, 그들은 미래를 알기 위해 점술사들을 끊임없이 접촉한다.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관련 이미지.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관련 이미지. ⓒ TV조선

 
희망과 미신 사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아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왕이면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갖고 싶어 한다. 직업적으로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니라, 앞날을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대처하고 싶어서 그런 '헛된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헛된 꿈'이 아닐 수도 있다.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축적한다면, 적어도 그 분야에서만큼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점을 치고자 하는 대상의 과거 이력과 행동패턴을 축적된 지식으로 알아낼 수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 대상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도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경제학자나 정치평론가 같은 전문가들이 앞일을 예측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그런 방식에 따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한 친구의 앞날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영적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친구의 과거 이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지를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타고난 영적 능력이 없는 일반인도 특정 분야의 과거 정보를 전문가 수준으로 획득한다면 미래를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방식도 점을 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50년대부터 40년간 무녀 3천 명과 인터뷰한 민속학자 서정범은 1998년 7월 16일자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무속인은 상대방이 방출하는 '기'와 거기에 담긴 정보를 해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무속인들은 상대방의 몸에서 나오는 기를 통해 상대의 개인 이력과 행동 패턴을 영상 이미지로 확보하고 거기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고 서정범 교수의 경험적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연구와 경험을 통해 과거 정보를 획득하는 데 반해 무속인들은 영적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는 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는 전문가나 무속인이나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에는 결함이 많이 존재한다. 전문가가 분석 과정에서 주요 변수를 전부 다 감안하지 않았다면, 그의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분석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돌출한다면, 그 전문가는 '돌팔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전문가들의 예측이 곧잘 빗나가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한 분야만 연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은 한 분야만의 작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분야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나므로, 어느 한 분야만의 변수를 고려해 미래를 예측하다 보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분야뿐 아니라 타 분야까지도 복합적으로 고려해 경제나 정치를 예측하는 전문가의 적중률이 조금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과거 역사를 완벽에 가깝게 정리해놓고, 이런 각 분야의 지식을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우리 사회는 굳이 무속인이나 사주가·관상가들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시스템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나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을 갖추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점술에 대한 사회적 의존도 역시 불가피하게 상당 기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물론이고 미래 사회의 상당기간 동안에도 무속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 사진은 1989년 9월 국회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노태우 대통령. 사진은 1989년 9월 국회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국가기록원

  독재자들의 무속인
 
과거뿐 아니라 현대 사회도 무속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는가는, 총과 탱크에 의존해 국민들을 억압한 현대의 독재자들도 툭하면 무속인을 찾은 데서도 드러난다. 전문가들이 축적해놓은 지식만으로는 자신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독재자들도 점술가를 찾게 되는 것이다.
 
독재자들이 무속에 얼마나 의존했는지를 보여주는 기사가 있었다. 1990년 12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정치인과 점'이라는 기사가 그중 하나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통령 박정희는 종신집권의 길을 여는 1972년 10월 유신 때도 점술가에게 의존했다. 유신 조치의 디데이를 그런 식으로 정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유신(72년 10월 17일)을 단행하면서, 그 날짜를 당시 중앙정보부 판단기획실장 김성낙 씨(유정회 1기 의원 역임, 사망)가 용하다고 소문난 세검정 모 점술가로부터 받아온 10월 17일로 정했다는 것." - 1990년 12월 21일자 <동아일보> 중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간부를 통해 점술가의 의견을 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김대중 정권 때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의원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위 기사에서 그의 증언도 들을 수 있다. 아래에 나오는 '김씨'는 위의 김성낙이다.
 
"박 정권 시절 중정에 근무했던 이종찬 의원(민자)은 최근 '김씨는 개인 사찰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독실한 불교 신자로 평소 점술에도 관심이 많았다'면서 '10월 유신 단행 날짜는 김씨의 건의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김성낙이 점술가한테서 받아온 10월 17일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쿠데타나 정변과 관련이 깊은 날짜다. 정치 풍운아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1884년 12월 4일은 음력으로 10월 17일이다. 당시 사람들은 음력을 썼으므로, 갑신정변을 잘 아는 사람들한테는 10월 17일이 쿠데타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가 3선 개헌의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날도 1969년 10월 17일이다. 유명한 정변이 음력 10월 17일 일어난 데다가 박정희 자신도 10월 17일에 3선 개헌에 성공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김성락이 받아온 10월 17일이 박정희한테 그리 낯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위 기사는 6월항쟁 6개월 뒤 열린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선거 날짜도 그런 식으로 정해졌다고 말한다. 대통령 전두환이 서울 청운동 점술가한테서 그 날짜를 받았다는 것이다.
 
"87년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청와대의 한 고위 참모는 청운동에 사는 노인을 찾아가 선거 날짜를 어떻게 잡아야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 노인은 '12월 16일과 17일 양일 중 택일하는 것이 좋다'면서 '양일 중 어느 날을 택해도 노 후보가 당선되지만, 16일로 하면 표는 많이 나오나 자식이 적고, 17일로 하면 표는 적으나 자식은 많다'고 풀이.
 
이 고위 참모는 전 대통령에게 이 같은 점괘를 보고(報告), 대통령 선거날짜는 당선이 보다 확실하다는 12월 16일로 결정됐다는 것이 청와대 주변 인사들의 전언."

 
청운동 점술가가 말한 '자식'의 의미를 국회의원 당선자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그 후에 나타났다. 제13대 대선 4개월 뒤 열린 1988년 4월 26일 제13대 총선에서 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로 여소야대를 허용한 뒤에 그런 해석이 제기됐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자식'은 13대 총선에서의 국회의원 당선 숫자를 의미한 것으로 풀이되는데, 공교롭게도 대선에선 노 후보가 대통령으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지만, 88년 4·26 총선에서는 민정당이 의석 과반수 미달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에 대해, '자식이 적다'는 16일을 택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얘기가 그럴 듯하게 퍼지기도 했다."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한 장면.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한 장면. ⓒ TV조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바람과 구름과 비> 속의 철종시대뿐 아니라 대한민국 시대에도 일부 정치인들이 무속에 의존하는 경향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그 시대와 지금 시대의 차이가 200년도 안 되므로, 역사적으로 보면 두 시기는 꽤 근접한 시기다. 그래서 큰 차이가 없는 게 실상은 이상하지 않다.
 
보다 더 많은 경험적 지식이 우리 사회에 축적되고 이런 지식들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영험한 무속인이 더는 필요 없게 되기 전까지는, 이런 현상의 지속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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