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시네마'는 영화평론가이자 인문학자인 안치용 한국 CSR연구소장이 영화에서 드러난 '테크'의 동향과 의미, 문명사적 향배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속 '테크'와 영화를 만드는 데 동원된 '테크'를 함께 조명하여 영화와 '테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합니다.[편집자말]

SSN-571. 
​ 
인류가 만든 최초의 핵잠수함에 붙은 식별기호이다. 각국 해군 등에는 함선식별기호(hull classification symbol)라는 것이 있는데 미 해군의 함선식별기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 'SSN-571'일 것이다. 'hull'은 선체(船體)ㆍ함선을 의미한다. 'SSN-571'에는 '노틸러스(Nautilus)'라는 별도의 이름이 있다. 선박이름 중에서 타이타닉 메이플라워 등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에 속한다. '노틸러스'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9년에 쓴 고전 과학소설 <해저2만리>에 나오는 잠수함 이름이고 SSN-571의 노틸러스 또한 여기에서 따왔다. 어느 일본 만화에서도 <해저2만리>의 네모 선장과 '노틸러스'라는 이름까지 함께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노틸러스의 함선식별기호는 SSN-571이 아니었지 싶다. 
 
 SSN-571 노틸러스는 1980년 퇴역했으며, 1982년 미국의 국가 역사 랜드마크에 지정되었다. 사진에서 보듯 노틸러스 호는 현재 코티컷의 그로튼에 위치한 잠수함대 잠수함 및 박물관에 박물관 배로 보존되어 있다.

SSN-571 노틸러스는 1980년 퇴역했으며, 1982년 미국의 국가 역사 랜드마크에 지정되었다. 사진에서 보듯 노틸러스 호는 현재 코티컷의 그로튼에 위치한 잠수함대 잠수함 및 박물관에 박물관 배로 보존되어 있다. ⓒ 위키백과

   
 
정리하면 'SSN-571'이란 식별기호를 가진 미 해군의 함선이 있고 그 함선을 부르는 명칭이 '노틸러스'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홍길동'이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함께 갖는 것과 비슷하다. 외국에 나가면 주민등록번호가 소용없고 거기서 이름만이 불린다고 할 때 우리 입장에서 'SSN-571 노틸러스'를 그냥 '노틸러스'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노틸러스가 유명세를 탄 이유는 모두에 밝혔듯, 인류가 만든 최초의 핵잠수함이기 때문이다. 1954년 진수된(선체의 최종 완성은 1955년) 노틸러스는 길이 98m에 폭 8.5m이며 23노트(43km/h)로 항해할 수 있었다. 승조원은 장교 13명, 수병 92명이었다. 제원상 노틸러스가 기존에 존재한 잠수함을 절대적으로 압도한 항목은 항속거리(航續距離, cruising distance). 노틸러스의 항속거리는 '무제한'이었다.​
 
물론 무제한 항속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 전시의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주기적으로 해상에 떠오르거나 귀항하기 마련이다. 무제한 항속이 이처럼 중단되는 이유는 잠수함 때문이 아니라 승조원, 즉 사람 때문이다. 잠수함만 놓고 보면 사실 무제한으로 항행할 수 있다. 따라서 근자에 모색되는 무인핵잠수함이 실전에 배치되면 거의 바다 속을 떠나지 않는 잠수함을 구현할 수 있다.​
 
이론상이지만 항속거리 무제한이 가능한 근거는 식별기호에서 찾아지는데, 바로 'SSN-571'의 'N'이다. SSN은 "Submarine(Nuclear Powered)" 혹은 "Ship Submarine Nuclear"의 약자로 말 그대로 핵추진 잠수함이다.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에너지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내구성이 좋은 것이 핵에너지이다. '항속거리 무제한'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핵 추진 잠수함에서 선체를 구성하는 다른 부분이 문제면 문제이지, 추진력을 잃어서 배를 세우는 일은 없다.​
 
SSN 실현의 관건은 핵에너지였고, 핵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원자로가 필요했는데, 핵심은 원자로의 소형화였다. 노틸러스의 제원 중 폭이 8.5m인 것을 감안하면 그 폭 안에 승조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안전이 검증된 소형의 원자로를 집어넣었다는 뜻이다. SSN에는 인간이 원자력을 무기의 형태로 개발한지 약 10년 만에 잠수함의 추진력으로까지 응용하는 데 성공한 일화가 담겨있다.​
 
영화 <울프콜> 영화 <울프콜>의 한 장면

▲ 영화 <울프콜> 영화 <울프콜>의 한 장면 ⓒ 판시네마

   
핵추진 잠수함이 등장하면서 승조원의 복무생활은 큰 변화를 겪었다. 노틸러스의 함내 거주 편의 및 복지는 당시 미 해군의 디젤 잠수함보다 훨씬 좋았다. 배가 커져서 공간이 넓어진 것이 함내 생활의 편의를 증진시켰지만, 편의와 복지의 핵심은 원자력에서 나왔다. ​
 
소형원자로이지만 발전량이 충분하다 보니 전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리하여 조수기(造水機)와 공기청정기를 마음껏 가동해 신선한 물과 공기를 원하는 대로 공급했다. 심지어 아이스크림 제작기까지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디젤 잠수함에서 노틸러스로 옮긴 승조원들은 "돼지우리에서 저택으로 옮겨간 느낌"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승조원 복지의 핵심은 흡연이었다. 잠항중이든 부상중이든 어느 때든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는 것. 원자로에서 나오는 막대한 전력을 기반으로 공기정화 장치를 24시간 돌려서 깨끗한 공기를 함선 전체에 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금연 추세와는 맞지 않지만 그때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반면 디젤 잠수함에 탑승하면 잠항 중에는 흡연은 꿈도 못 꾸고 부상 항해 중일 때나 암암리에 피웠다.​
 
핵 추진 잠수함은 석유 에너지를 쓰는 디젤 잠수함에 비해 승조원 복지 뿐 아니라 전력면에서도 확고한 우위를 지녔다. 축전지를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디젤 잠수함은 축전지가 소진되면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한다. 스노클(해상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배기가스를 밖으로 배출하는 장치)을 통해 디젤 엔진을 작동해 축전지를 충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노클을 사용하면 적에게 탐지될 위험이 높아지고 동시에 충전 때문에 추적 등 작전을 잠시 중단해야 하는 이중의 고충을 겪는다.​
 
속도 또한 전술적 우위를 발생시킨다. 최대 속력이 시속 28~37㎞인 디젤 잠수함에 비해 핵잠수함은 45~66㎞로 기동할 수 있어 교전이나 추적에서 훨씬 유리하다. 공간이 넉넉하기에 미사일 발사관이나 어뢰관이 디젤 잠수함보다 더 많다. 공격력이 더 세다는 의미이다.​
 
핵잠수함의 단점은 무엇일까. 세상사가 거의 그러하듯 핵 추진 잠수함의 단점은 장점에서 비롯했다. 즉 바다 속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되면서 지상생물인 승조원들에게 '인간적인' 어려움이 야기된 것이다. 디젤 잠수함은 기능상의 한계 때문이라도 주기적으로 해상으로 올라와야 했는데, 그 덕에 지상생물인 승조원들이 하늘을 보며 지상(地上), 더 정확히는 해상(海上)의 환경에 잠시나마 접촉할 수 있었다. 반면 핵 추진 잠수함은 굳이 이유를 찾지 않으면 바다 속을 떠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승조원들이 폐로 숨 쉬는 감금된 어류의 삶을 강요당하며 정신적인 문제에 봉착하곤 했다는 이야기이다.​
 
SSN이 탄도 미사일을 탑재하면 SSBN(Ballistic Missile Nuclear Submarine)이 된다. SSN의 소형원자로 기술에다 탄도미사일 기술이 합쳐진 게 SSBN이다. 영화 <울프콜>에서는 SSN과 SSBN이 모두 등장한다. 영화 속 SSBN은 '무적함'이고 SSN은 '티탄함'이다. 핵미사일을 쏘려는 SSBN, SSBN을 막으려는 SSN 사이의 바다 속 드라마를 그렸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 해저에 가라앉은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될 텐데, 이로 인해 생겨난 괴수를 소재로 한 영화가 후속편으로 제작될까.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https://blog.naver.com/ahnaa)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