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극의 쉐프> 포스터.

영화 <남극의 쉐프> 포스터. ⓒ ㈜스폰지이엔티???

 
'음식 영화'라는 장르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만들어져 우리를 찾아온다. 그 중에 일본 음식 영화는 특히 자주 만들어지기도 하고 장르화되어 있기도 하다. <카모메 식당> <심야식당> <리틀 포레스트> <하와이언 레시피> <해피 해피 브레드> 등 여러 영화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힐링'을 표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른바 '일본 음식 힐링 영화'를 떠올릴 때 낄 만한 영화 한 편이 더 있으니, <남극의 쉐프>가 그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남극 관측 대원으로 조리를 담당했던 니시무라 준의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 요리인>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 갇혀 있는 분들에게 힐링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북극과 달리 남극은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곳으로 온갖 관측이 필요하기에 인간이 기지를 지어 상주하고 있다. 하여 밖이 아닌 기지 안에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한다. 일하고 놀고 먹고 싸고 자고 씻고. 그중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품과 고민이 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과연 남극의 요리사는 어떤 요리를 만들어 대원들을 먹일까. 

펭귄도 바다표범도 없는 남극에서 살기

1997년 남극, 연안의 쇼와 기지에서 1000km 정도 떨어진 내륙 산간부의 돔 후지 기지는 고도 3800km, 평균 기온 영하 54도의 환경에 있다. 펭귄이나 바다표범은커녕 바이러스도 살지 못하는 극한지이다. 그곳에 8명의 대원이 함께 생활한다. 기상학자, 대기학자, 빙하학자, 빙하 연구 보조, 의료 담당자, 통신 담당자, 차량 담당자, 조리 담당자가 그들이다. 

오직 담당자만이 담당할 수 있는 각자의 일을 하고 한데 모여 가열찬 식사를 한다. 말없이 열심히 맛있게 먹는 대원들, 조리 담당자 니시무라 준은 자못 긴장한 듯 흐믓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젓가락을 든다. 준은 대원들에게 주먹밥과 된장국, 닭새우 튀김, 스테이크, 킹크랩, 라멘을 대접한다. 닭새우 튀김 같은 실패에 가까운 요리와 라멘 같은 모두의 힐링을 돕는 요리까지, 다양하다. 

그런가 하면, 몇몇 대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헤아릴 수 없는 추위의 '밖'과 덥기까지 하지만 무료하기 짝이 없는 '안'의 대비가 주는 압박이 기본적으로 상당할 테다. 무엇보다 일 외적인 부분, 이를테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말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들은 과연 일 년 반의 임무 기간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갇혀 있는 생활, 음식으로 힐링하기

<남극의 쉐프>는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고 보고 나면 힐링되는 느낌이 든다. 그 모든 게 다 음식 덕분일 테다. 니시무라 준이 정성스레 준비하고 요리하여 차린 음식을 대원들이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먹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흐뭇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장면이 주기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일본인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내는 추임새를 듣기 어렵다. 여타 일본 음식 영화들에선, 한국 사람에겐 익숙하지 않은 추임새를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대원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무리없이 잘 먹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심지어 몇몇 대원들은 표정이 좋지만은 않고 편식을 하기까지 한다. 갇혀 있는 상황을 대변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겹치지 않게 식재료를 조달해 스케줄을 짜서 요리를 한다고 해도, 요리를 하는 입장이 아닌 요리를 받는 입장에선 절대 완벽하지가 않다. 때론 일탈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뭔가를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말로 직접적으로 내색하진 않지만 미묘한 표정으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 테다. 또한 영화에서 몇몇 대원들이 오밤중에 조리 담당자 몰래 라면을 끓여 먹질 않나, 어느 날엔가 역시 조리 담당자 몰래 버터를 우적우적 먹고 있질 않나. 일종의 '증세'가 아닐까. 

힘과 힐링의 원천, 음식에의 행복 방정식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 갇혀있는 것과 다름 없는 지금과 <남극의 쉐프> 속 현실이 겹쳐지는 데서 공감할 수 있었다. 별개로 지금의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전에 없던 '힐링'을 받을 요소도 존재한다. 영화 후반부, 대원들을 이끄는 대장이기도 한 기상학자는 라면이 먹고 싶어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른다. 니시무라 준은 탄산가스가 없어 간수를 얻을 방법이 없기에 면을 만들 수 없었다. 그때 어느 대원의 도움을 얻어 탄산가스를 만들고, 간수를 만들어, 면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얻는다. 

그런데, 라면은 조리 담당자가 만들어준 요리들 중 가장 하찮은 요리에 속하지 않나 싶다. 주먹밥과 된장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닭새우 튀김, 스테이크, 킹크랩이 메뉴였으니 말이다. 또한 더 이상 라면은 먹을 수 없는 대신 킹크랩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일상이었으면 킹크랩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극 기지에서는 라면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이다. 심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소울 푸드' 라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어 대원들에게 대접하는 니시무라 준, 대원들한테서 처음으로 '맛있다'는 격한 표현이 들린다. 그야말로 별 것 아닌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대원들이다. 우리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느끼고 느낄 수 있는 음식에의 행복 방정식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가. 이런 식의 생활 방식이 계속 된다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원 포인트 장면, 조리 담당자 니시무라 준이 대원들의 실수로 큰 실의에 빠져 있었을 때 대원들 7명이 모여 허접한 닭 튀김을 만든다. 얼마 후 주방으로 향하는 니시무라 준, 그의 앞에 처음으로 그가 요리하지 않은 음식이 차려져 있다. 먹다가 복받쳐 펑펑 우는 그, 그들은 그렇게 다시 하나가 되어 버티며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 음식은 힘과 힐링의 원천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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