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KBS 2TV <개그콘서트>의 종영이 결정된 이후 <개그콘서트>와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한때 열렬히 좋아했던 프로그램이라 현재의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 지켜주지 못한 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귀를 쫑긋하게 된다. 행여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회생' 같은 희소식이 전해질까봐. 그런데 최근 <개그콘서트> 관련 뉴스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지난 5월 29일, <개그콘서트> 연습실 및 기타 예능 프로그램 회의실이 있는 KBS 연구동의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기기(카메라)가 발견된 것이다. 최초 발견자인 KBS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불법촬영기기를 수거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한편, KBS 측은 사건이 알려진 5월 31일 "범인 색출을 위한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여성들에게 불법촬영의 안전지대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지경에 이른 게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지상파 방송국의 여자 화장실이 범죄 현장이 됐다는 사실은 대중들에게 훨씬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발생건수는 2016년 5185건, 2017년 6465건, 2018년 5925건이었다.) 불가피하게 외부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소름돋고 끔찍한 일이었다.

지난 1일, 관할서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용의자 A가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자수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용의자의 정체는 또 한번 우리를 충격에 빠드렸다. 그는 바로 'KBS 공채 개그맨'이었다. 용의자 A는 2018년 7월 KBS 개그맨 공채 전형을 통해 데뷔했고, 지난달까지도 <개그콘서트>에 출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이 범인이 KBS 방송국을 아주 자유롭게 드나들었기 때문에. 제가 알기로 KBS만 해도 여자화장실이 여러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군데에, 지금 한 곳에 설치할 수 있는 위치였으면 다른 곳에도 설치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이 범인의 목적이 뭐냐,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행위를 했느냐를 따져서 혹시나 여죄의 가능성, 혹시나 이 카메라가 다른 데도 설치돼 있을 가능성도 한 번쯤은 염두에 두셔야 되고. 이걸 또 온라인상에서 어떤 웹하드나 아니면 채팅 사이트에다가 올려서 유포를 시키고 있었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할 걸로 보입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인터뷰 중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공영방송으로서 KBS 측이 취해야 할 애티튜드는 무엇일까? 세세한 사정이 무엇이든 간에, 이유를 불문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 경각심을 갖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KBS 측은 지난 2일 "용의자 A는 KBS의 직원이 아니"라며 '선긋기'에 나선 모습이었다. 용의자가 KBS에서 근무하는 남성 사원이라는 <조선일보>의 보도에 "오보이며 법적인 조처를 취하겠다"고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물론 KBS 측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었다. 실제로 KBS 개그맨 공채 합격자들의 계약 기간은 1년(뿐)이고, 그 이후부턴 '프리랜서'의 개념으로 활동하게 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KBS의 주장처럼 용의자 A가 KBS의 '내부' 직원은 아니다. 그러나 KBS와 용의자 A의 관계를 밝히는 일이 가장 시급했을까. 그렇다고 해서 본사 연구동 건물에서 불법촬영 기기가 발견된 KBS의 책임이 없어지는 걸까.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아니오'이다. 
 
 지난 2017년 5월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공개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 기자간담회에서 출연진이 질문을 받고 있다.

2017년 KBS <개그콘서트> 기자간담회 사진 ⓒ 연합뉴스

 
아무리 '내부'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 자격이라고 해도 KBS는 용의자 A에게 'KBS 희극인 6등급'을 부여했고, 그에 따른 출연료도 지급했다. 왜냐하면 지난 달에도 A가 <개그콘서트>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직원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데 집중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씁쓸했다. (KBS 측이 '내부 직원'이라 최초 보도한 <조선일보>에 법적조치를 하는 건 추후에 따로 진행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결국 KBS는 3일 오후가 돼서야 "이 사건의 용의자가 KBS 직원은 아니더라도, 최근 보도에서 출연자 중 한 명이 언급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재발 방지와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는 새로운 입장문을 내놓았다.

용의자와 선긋기를 한 입장문과 책임 있는 자세로 대하겠다는 입장문은 불과 하루라는 시차를 두고 나왔다. 왜 KBS가 책임 지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 못한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2018년 9월 tvN <국경없는 포차> 스태프가 여성 출연자의 숙소에 불법촬영기기를 설치했다가 적발된 사건, 2019년 7월 SBS 김성준 전 앵커의 지하철 내에서 불법촬영을 한 사건 등 방송국과 '관련'된 성범죄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우려스럽다. 불법촬영에 대한 방송국 내부의 경각심이 글높지 않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최근 들어 우리는 '정준영 단톡방 사건(불법촬영)', '텔레그렘 n번방 성착취 사건' 등 천인공노할 충격적인 사건들을 연달아 겪었다. 그러면서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도 더욱 높아졌다. 예민하고 꼼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방송국 내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사건을 마주하면서 절망은 깊어진다. 저들은 '내부 직원이 아니다', '개인의 일탈이다', '외주 직원일 뿐이다'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만다. 정말 방송국은 문제가 없는 걸까?

물론 내부적 어려움이 있겠지만, 처음부터 적극적인 태도로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다 치열하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KBS 측이 이번 사건에 있어 좀 더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길 희망한다. 용의자 A에 대한 선긋기에 매진하기보다 불법촬영 범죄와 엄중한 '선긋기'를 해주길 기대한다. 공영방송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줬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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