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기자말]
*올해 열릴 예정이었던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 19' 사태를 맞아 기존의 운영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이에 5월 28일(목)부터 6월 6일까지 열흘에 걸쳐 영화제 상영 예정이었던 작품들을 온라인 OTT 플랫폼인 'wavve'를 통해 유료 상영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www.jiff.or.kr)을 참고바랍니다.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1.
한 중학생 소년에 대한 심리가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키라. 심리의 내용에 따르면, 그가 동급생 친구인 이츠키를 살해했다고 한다. 젓가락으로 만든 석궁을 갖고 장난을 치며 놀던 중, 자신에게 반항적으로 굴던 이츠키의 태도에 화가 나 그의 목을 향해 화살을 쏜 것이다. 목을 관통할 정도로 강하게 발사된 화살을 맞고도 이츠키는 다소간 숨이 붙은 채로 살아 있었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두려움을 느낀 키라는 그를 방치한 채 도망쳤고 홀로 남겨진 이츠키는 죽어버렸다고 한다. 이는 모두 경찰의 사전 조사에 의해 밝혀진 내용이다.

자신의 부모와 함께 심리를 받던 키라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다. 이날 이츠키를 불러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는 것.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그의 변호사 역시 그의 대답에 힘을 싣는다.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이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더불어 그를 취조한 경찰의 강압적인 태도가 있었고, 아직 14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년을 부모와 분리해 심문한 것 역시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그의 자백에 자의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증거다. 이츠키의 죽음의 전말을 밝히고, 키라가 그의 죽음에 관여되어 있었는지를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서는 지문과 같은 정확한 물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CCTV와 같은 정황 근거만 존재하고 피의자 측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자백에만 의존하고 있다. 물론, 그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근거도 없지만 피의자 측이 이를 찾을 의무는 없다. 이에 키라는 불처분 결정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된다.

02.
영화 <퍼즐>(2014), <노루귀꽃>(2017) 등 소년과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다수의 범죄 영화를 연출한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 그는 이번 영화 <용서받은 아이들>에서 살인을 저지른 한 청소년의 모습을 통해 지금 사회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집단 괴롭힘 문제와 그 악습의 질기고 질긴 꼬리, 그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청소년 집단 속 집단 괴롭힘이 어떤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지는 물론 사회의 어떤 부조리한 문제들이 그들을 더욱 더 악랄하고 잔혹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키라다. 그는 함께 몰려다니는 같은 반 친구 숀, 카뮤, 구리손과 함께 법과 질서를 넘나들며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14살 소년이다. 무리 속에서도 키라는 단연 우두머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친구들 역시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면 가만두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이기도 하다. 이츠키를 죽이게 된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아래로 생각했던 그가 자신의 행동을 막아 서자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해 화살로 쏘고 방치한 채 달아나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단순히 집단 괴롭힘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작품이라면 이츠키의 죽음은 극의 가장 중요한 부분, 후반의 클라이맥스 지점에 위치할 법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상당히 초반부에 등장한다. 시간적으로는 20분 남짓한 지점이지만, 구성으로 볼 때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이전의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 이 소식을 들은 언론과 네티즌들의 뜨거운 논쟁이 오버랩 되는 장면이 이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인 셈이다.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3.
한 인간의 인격을 형성하고 행동의 근거가 되도록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실로 다양하다. 아직 성인이 채 되지 못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른의 잘못된 행동이나 선택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걷게 되는 청소년의 모습을 다룬 영화가 많은 까닭이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동급생 살해라는 사건 하나에 국한하면 그 죄는 오롯이 키라의 것이지만, 감독은 그 문제에 대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접근한다. 가정과 부모의 문제, 피해자가 중심이 되지 못하는 법과 규칙의 문제, 그리고 교육의 문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키라의 부모다. 그 중에서도 전후 사정과 관계없이 덮어놓고 자식의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엄마는 키라가 속죄하지 못하고 진실을 가리게 되는 첫 계기가 된다. 실제로 죽은 이츠키의 부모와도 아는 사이로 지내던 그녀는 이츠키가 돌아오지 않았던 날 밤에 그 부모의 요청으로 함께 이츠키를 찾으러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제의 주요 용의자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말에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고 마는데 이와 관련한 그녀의 일관된 행동은 키라의 눈을 가리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 키라의 심리 날, 바로 등뒤에 앉은 피해자 이츠키의 부모를 향해 단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 그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그는 키라를 마지막까지 지켜내지 못한다.

04.
감독은 14살 키라가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범법행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사회적 형벌을 주지 못하는 법과 규칙의 문제 역시 중요하게 다룬다. 영화의 가장 처음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힘겹게 길을 걸어오는 키라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를 찾으러 다니던 엄마의 품에 안겨 초점이 나간 얼굴로 애처로이 엄지를 빨던 그의 모습. 그 역시 어린 시절 가혹한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후반에는 이런 장면도 나온다. 키라의 무리로 함께 범죄를 저질렀지만, 실제 활시위를 당기지는 않았던 탓에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있었던 숀과 카뮤가 또다른 동급생을 상대로 과거 키라가 했던 동일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 그러니까, 키라의 과거와 키라의 사건, 그 이후에 벌어지는 또 다른 무리의 폭력과 따돌림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청소년들의 문제와 더불어 그 문제를 조금도 제어하지 못하는 유약한 법적 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치다. 물론, 과거에 키라를 괴롭혔던 아이들도 지금 키라가 그런 것처럼 큰 처벌을 받지 않고 평화로운 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전학을 가게 된 키라가 만난, 다른 학교의 또다른 따돌림 피해자 모모코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동급생의 폭력과 따돌림으로부터 그녀를 적극적으로 보호해 줄 장치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그녀는 실제로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은 물론,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어른들까지 모두 말이다. 생각보다 훨씬 교묘한 그들의 괴롭힘은 앞서 살펴본 대로, 모모코가 자신의 상황을 법적인 문제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한다.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영화 <용서 받은 아이들>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5.
영화는 그들의 자아를 형성하는 교육에도 문제는 있다고 이야기한다. 키라의 무리가 폭력성을 드러내는 동안 학교는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못하고,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겨우 한다고 하는 것이 전학을 권유하는 일이다. 그 전학의 이유 역시 외면적으로는 면학 분위기를 훼손하고 동급생들의 불안을 재우기 위해서라지만 그 이전부터 키라가 만들어 온 폭력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한 학교 측의 변명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령, 학교의 명성이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던가.

에이스케 감독은 키라가 전학을 가게 된 학교의 토론 수업에도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을 담는다. 집단 따돌림에 대해 가해자의 문제보다는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도록 행동하는 피해자의 잘못을 더욱 크게 제기하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따돌림 가해자는 사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한 아이의 발언에 대해서도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는 가해자의 갱생에 대한 부분만 지적하며 피해자에 대한 심리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는 모습이다.

06.
불처분 결정을 받기는 했지만, 그 날 이후 키라의 가족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들로부터 끊임없는 테러와 괴롭힘을 당한다. 기사화 시키기 좋은 이슈를 취재해 가려는 기자들과 정의 구현 혹은 처벌되지 않은 범죄자 저격 등의 이유로 밤낮없이 찾아오는 일반인들. 키라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은 온통 더러운 낙서와 험한 말들이 적힌 벽보로 엉망이 된다. 친한 이웃으로 지내던 사람들은 그들이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직접 말하고, 사람들의 눈에 띌까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고 이름까지 바꿔가며 하루 하루를 버텨간다.

한편,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죽음으로 집안이 온통 풍비박산이 되어버린 이츠키네 가족.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키라가 처벌을 받기는커녕 아무런 처벌도 없이 풀려나 버리자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아들의 죽음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먼저 해와도 모자란 판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른 척 하며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하는 키라의 가족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어디에 숨어 지내더라도 끝까지 찾아내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원통함을 달래주고자 한다.

영화 <용서받은 아이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물은 의심할 여지없이 키라지만, 그를 불안정한 상황으로 밀어 넣는 것은 주변 인물이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그의 죗값으로는 불안정한 상황을 형성할 수 없기에 그 대신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한 쪽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연히 발생하게 된 것이고, 다른 한 쪽은 키라의 행동과 직후의 과정을 통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07.
처음의 심리 장면으로 되돌아 간다. 키라가 사실이었던 자신의 혐의를 거짓으로 부정하고 결국에는 불처분 결정을 받고 풀려나는 동안, 피해자인 이츠키의 부모가 바로 뒤에 앉아 모든 절차를 함께 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소리 없는 눈물만 쏟아내던 두 사람. 의견 진술을 하라는 판사의 말에 이츠키의 아버지는 오열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아까부터 자꾸 이 살인자만 걱정하는데 내 아들 목숨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냐고!"

용서를 받는다는 일은 무엇이며 그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또, 과연 용서를 구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 것이며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구해야 하는 것일까? 이 영화 <용서받은 아이들>이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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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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