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올해 75세의 정만용씨. 그가 '코리아트레일' 국토종단에 나섰다. 코리아트레일은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에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총연장 600km에 이르는 한반도 종주 코스다. 이른바 한국판 '산티아고'라 불리는 길이다. 건강한 청년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그렇다면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인해 평소 걷기조차 힘들어하는 그는 왜 이 고난을 자청한 것일까. 30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파킨슨 환자, 정만용의 도전' 편에서는 파킨슨병 환자로는 사상 최초로 국토종단에 나선 정만용씨의 여정을 밀착 취재했다.

2018년 10월 28일. 강원도 춘천시에는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체감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중증 파킨슨 질환을 앓고 있는 정만용씨는 궂은 날씨 속에서 개최된 마라톤대회에 참가, 5시간 48분의 기록으로 완주한다. 그가 앓는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신경 퇴행성질환이다. 신경세포가 소멸하여 뇌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고, 손발이 떨리거나 몸이 굳는 등의 증상으로 발현된다. 정씨는 파킨슨병 때문에 혼자 걷기조차 힘들어 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SBS <뉴스토리> ‘파킨슨 환자, 정만용의 도전’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파킨슨 환자, 정만용의 도전’ 편의 한 장면 ⓒ SBS

 
2년 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저체온증으로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그가 이번에는 전라남도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600km에 이르는 코리아트레일 완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생사를 넘나드는 고된 여정에 연거푸 도전하는 것일까.

600km 국토종주에 나선 파킨슨병 환자 정만용씨

종주 6일째. 전남 나주로 향하는 길이다. 정만용씨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씨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국토종단 동행자들. 전혀 예측치 못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악화되는 파킨슨병 환자의 몸 상태에 적잖이 당황해하는 눈치다. 코리아트레일 손성일 대장은 "정씨는 힘들면 말을 못한다. 일단 말이 잘 나오면 컨디션이 좋은 것이고, 말이 좀 어눌하면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정씨는 지난 2012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수년 전부터 길을 걷다가 자꾸만 돌에 걸려 넘어지고 손이 떨려 이를 피로 탓으로 여겼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파킨슨병에 의한 것이었다. 정씨는 "내가 파킨슨병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파킨슨병 판정을 받게 되니 하늘이 노랗고 왜 하필 내가 이렇게 됐는지 원망스러웠다. 외로웠다"고 털어놓았다. 요즘에는 그도 파킨슨병을 평생 함께해야 하는 친구 정도로 여긴다고 한다.

정씨 부인 박옥영씨는 재일동포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정씨와 만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그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혼 후 남편에게 다양한 치료를 권하고 난치병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북돋운 건 다름 아닌 그녀였다. 박옥영씨는 "매일이 싸움이다. 그는 일어날 때부터 자신의 몸 자체가 감옥이다.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 옆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며 "치료가 안 되는 병이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SBS <뉴스토리> ‘파킨슨 환자, 정만용의 도전’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파킨슨 환자, 정만용의 도전’ 편의 한 장면 ⓒ SBS

 
파킨슨병은 현대의학이 극복하지 못한 대표적인 난치병 가운데 하나다. 걷지 못하고 젓가락질조차 힘들어하던 정씨에게는 부인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치료가 병행됐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2년 전부터 그의 병세는 조금씩 늦춰졌다.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목표도 이즈음 생겼다. 정씨는 "이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또 즐거워하는 것도 보이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동병상련이지만 '아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정만용씨가 국토종주에 나선 이유

종주 7일째. 그에게 위기가 닥쳤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정씨가 길 한가운데서 멈춰선 것이다. 갑자기 몸이 굳는 이른바 '프리즌' 증상 때문이다. 프리즌은 파킨슨병의 대표적인 증상 가운데 하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여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까닭에 환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중일 난치병극복의료인 회장 서울대 의대 이왕재 교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만들어 내는 신진대사와 관련하여 운동기능만 잃게 되는 건데, 치료가 굉장히 어렵다"고 귀띔한다.

종주 20일째. 주말과 휴일까지 반납한 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걸어온 길은 어느덧 전 여정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정씨의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오는 사람들의 숫자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정만용씨는 그동안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또 다시 걷기를 중단하게 된다.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한 이승교 한의사는 "아주 건강하신 분도 20일 이상 이렇게 걸으면 지친다. 에너지가 고갈된다"며 "모험 차원을 떠나 목숨을 건 행위이다. 이분의 의지가 워낙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초인적인 에너지를 가진 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피로가 누적된 건 정씨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동행하던 일행들 역시 대부분이 지쳤다. 정씨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보살펴온 부인 박옥영씨는 일주일 전부터 그와 함께 걸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다행히 정씨는 몇 시간 뒤 증세가 회복되어 다시 종주에 나설 수 있게 된다. 그는 "장애를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여기 안 왔으면 아마 지금도 철모르고 살았을 거다. 이런 걸 겪어보니 걸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SBS <뉴스토리> ‘파킨슨 환자, 정만용의 도전’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파킨슨 환자, 정만용의 도전’ 편의 한 장면 ⓒ SBS

 
지난 5월 2일 전남 해남 땅끝을 출발하여 전북, 충남, 충북을 거쳐 코리아트레일 종단 21일째 되는 날, 정씨 일행은 경기도 진입에 성공한다. 고된 여정이었다. 그로부터 4일 뒤인 26일에는 580km의 거리를 25일 동안 쉬지 않고 걸어온 덕분에 드디어 목표지점인 서울에 도착하게 된다. 길 위에서 지쳐 멈추거나 쓰러지면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해주던 배려와 관심 덕분이다. 정씨와 함께 걷고자 하는 응원 행렬은 목표지점이 가까워지자 더욱 길어지며 일행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다소 무모한 듯 보였던 난치병 환자의 600km 한반도 종단. '최초의 파킨슨병 환자의 국토종주'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타이틀은 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고 기록됐다.

난치병 환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활동할 용기를 주고 싶다는 정만용씨.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과감한 도전,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하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한 연대의 작은 몸짓은 우리 사회에 파킨슨병 등 난치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난치병을 앓는 환자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작지 않은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온다.

"이 세상은 물 위를 걷는 게 기적이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숨 쉬며 이런 대화가 되는 게 기적입니다."(정만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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