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흑인 청년 오스카 그랜트를 그린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오리지널 포스터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흑인 청년 오스카 그랜트를 그린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오리지널 포스터 ⓒ 영화사 진진

 
흑인 영화감독 라이언 쿠글러는 마블의 <블랙 팬서>로 친숙한 감독이다. 쿠글러는 2018년 영화 홍보를 위해 주연 배우 채드윅 보스먼, 마이클 B. 조던 등과 함께 한국을 찾기도 했다. 

그런데 쿠글러 감독이 처음 이름을 알린 영화는 2013년작 저예산 독립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다. 쿠글러는 이 영화에서 실제 인물이었던 흑인 청년 오스카 그랜트가 최후를 맞는 과정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한다. 

타이틀롤 오스카 그랜트 역은 마이클 B. 조던이 맡았다. 조던은 이 작품 이후 록키 시리즈의 스핀오프 <크리드>, 마블의 <블랙 팬서>에서 잇달아 쿠글러와 호흡을 맞췄다. 

오프닝은 다소 혼란스럽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화면 속 배경은 어느 지하철 역이다. 역에선 실랑이가 한창이다. 실랑이가 정점에 도달한 순간,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한다. 이어 영화는 오스카 그랜트가 죽음을 맞기 전 상황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오스카 그랜트의 처지는 참 보잘 것 없다. 올해 나이 스물 둘이지만 네 살 난 딸을 두고 있다. 하지만 직장은 없다. 대형 마트에서 점원으로 일했으나 해고당했다. 여자 친구인 소피나는 이런 그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그만 보면 성화를 부린다. 

그랜트는 여자 친구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마트 주인에게 재취업을 요청한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싸늘한 냉대다. 그랜트는 마리화나의 유혹에 빠진다. 그는 이미 뒷골목에서 마리화나를 팔다 체포돼 철창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마리화나에 다시 손대려는 순간, 그의 내면은 혼란에 휩싸인다. 마이클 B. 조던은 오스카 그랜트에 완벽히 빙의된 모습이다. 특히 오스카가 마리화나의 유혹을 받는 장면에서 보여준 내면 연기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조던은 <크리드>, <블랙 팬서>에서 더욱 물오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오스카는 고민 끝에 마리화나의 유혹을 뿌리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소피나에게 고백한다. 이 고백을 받고 감동하지 않을 여자 친구가 있을까? 소피나는 오스카와 결혼을 결심한다. 

마침 이 날은 2008년 12월 31일이었다. 소피나는 약혼자 그랜트,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새해 맞이 불꽃놀이를 보러 시내로 나간다. 한 해의 마지막 밤은 참으로 즐겁고 좋았다. 이들은 지하철로 귀가 하는 데, 지하철 안 다른 승객들도 들뜨긴 마찬가지다. 

비극의 현장, 지하철역 

바로 이때 비극이 벌어진다. 지하철 안에서 오스카와 한 백인 승객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시비를 건 쪽은 백인이었다. 이 백인은 오스카가 뒷골목 생활을 하던 시절 세력다툼을 벌이던 라이벌 갱조직의 일원이기도 했다. 처음엔 말다툼이었다. 하지만 이내 말다툼은 주먹다짐으로 번진다. 방금 전까지 들떴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오스카는 지하철에서 백인 건달과 시비가 붙는다. 그런데 경찰은 백인은 그냥 두고 오스카만 체포한다. 오스카가 항의하자 경찰은 총을 발사한다.

오스카는 지하철에서 백인 건달과 시비가 붙는다. 그런데 경찰은 백인은 그냥 두고 오스카만 체포한다. 오스카가 항의하자 경찰은 총을 발사한다. ⓒ 영화사 진진

 
상황이 심각해지자 경찰이 달려온다. 그런데 경찰은 백인은 그대로 둔 채 그랜트와 흑인 친구들만 체포한다. 그랜트와 친구들은 거세게 항의한다. 지하철 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승객들도 경찰에게 야유를 퍼붓는다. 

그러던 찰나, 총성이 울린다. 백인 경찰이 그랜트에게 총을 쏜 것이다. 승객들은 혼비백산한다. 오스카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둔다. 

이 영화의 원제는 'Fruitvale Station'인데, 바로 사고가 벌어진 지하철역을 제목으로 따왔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85분으로 꽤 짧은 편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카 그랜트는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뒷골목을 전전했다. 그런데 미국엔 오스카 그랜트와 비슷한 삶을 사는 흑인이 너무 많다. 더욱 중요하게는,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로 몰려 경찰 등 공권력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미국 사법부는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기 일쑤다).

비극의 주인공 오스카 그랜트도 이런 경우다. 현장에 출동한 백인 경찰은 백인 건달이 먼저 시비를 걸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의하는 오스카 그랜트에게 총을 발사했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제 새삼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본 이유를 적을 차례다. 최근 미국에서 또 한 명의 흑인이 죽임을 당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에게 제압당했다. 경찰은 무릎으로 제압했고, 플로이드는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를 제압하는 장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이러자 사건 발생지인 미네아폴리스에선 폭동이 일어났다. 미 CNN은 29일(현지시간) 폭동이 미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NBA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도 소셜 미디어에 "이제 이해하겠나? 아직도 모르겠나?"라고 적으며 인종차별에 항의했다. 

이렇게 한 흑인 남성의 죽음에 미국 전역이 혼란에 빠지는 근본 이유는 그동안 횡행했던 공권력의 과잉 단속과 차별, 폭력때문일 것이다. 인종차별이 해소되지 않으면 앞으로 제2, 제3의 오스카 그랜트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오스카 그랜트가 이 생에서 보낸 마지막 하루는 더더욱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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