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 올해 열릴 예정이었던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 19' 사태를 맞아 기존의 운영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이에 5월 28일(목)부터 6월 6일까지 열흘에 걸쳐 영화제 상영 예정이었던 작품들을 온라인 OTT 플랫폼인 'wavve'를 통해 유료 상영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www.jiff.or.kr)을 참고바랍니다.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 전주국제영화제


01.
강인한 기계음과 쇳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공장의 선반 작업 소리 혹은 주물 작업 소리와 비슷한 기계음. 현장을 직접 보지 않아도 고된 노동이 짐작되는 힘겨운 소리다. 이내 곧 화면이 바뀌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이 컴컴하고 허름한 탈의실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열기 가득한 공간으로부터 이제 막 뛰쳐나온 듯한 이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지친 모습이고 표정에는 생기가 없다. 그 중에서도 카메라가 따르기 시작하는 한 여성은 유독 더 어둡고 힘들어 보인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땀만 대충 닦아낸 사람들은 집으로 향하는 듯 공장을 빠져나오고, 그녀는 다시 또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긴다. 반팔 셔츠를 입을 정도의 날씨. 검정색 마스크가 그녀의 얼굴을 굳게 감싼다.

위의 장면은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의 코리안 프리미어에 선정된 박희권 감독의 <축복의 집> 도입 부분이다. 어둡고 건조한 분위기의 오프닝은 이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극의 중심이 되는 여성 해수(안소요 분)가 놓인 상황을 다소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아직 20대를 채 벗어나지도 못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삶이 왜 이렇게 척박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는지 궁금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해수가 엄마의 사망 이후 장례를 치르고 사망 신고를 하기까지의 3일을 그려낸다. 다만, 서사의 기승전결이나 극의 치밀한 구조가 아닌 서사의 뼈대가 되는 장례 절차를 그대로 따르며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02.
그녀의 뒤를 따라간 집. 그 어두운 방 한 켠에는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 엄마가 누워있다. 어떤 병에라도 걸렸었는지 주변에는 약봉지가 가득하다. 금방 세상을 떠난 것 같지는 않다. 이 지점에서부터 어쩐지 모를 불편함이 조금씩 전해져 온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담담하고 냉정한 그녀의 모습.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해수의 태도가 많이 이상하다.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로 그동안 모은 돈을 들고 이름 모를 의사에게 검안서를 받으러 간다. 엄마를 그 차가운 방에 홀로 남겨둔 채로 말이다. 모든 절차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정상적이지가 않다.

한편, 해수의 동네인 신길 19구역은 재개발이 한창이다. 언덕 아래부터 시작된 철거 작업은 이제 중턱을 지나 조금 있으면 그녀의 집까지 삼킬 모양새다. 동네 골목마다 걸린 현수막에는 재개발을 환영한다는 글귀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 아직 철거에 동의도 하지 않은 듯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집을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숨을 죽이고 아무도 없는 척을 해야하고, 평소에도 인기척을 내지 않기 위해 불빛 하나 밝힐 수가 없다.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 전주국제영화제


03.
가족의 죽음과 보금자리의 철거. 하지만 이 작품의 불안은 그로부터 형성되지 않는다. 상황적 설정은 인물의 감정을 역설적으로 극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장치일 뿐. 이 영화의 불안은 다가오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이미 상실한 자리의 공허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해수의 반응으로부터 발생한다. 관객들은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이미 유사한 상황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할 장면들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서 벗어날 경우 일종을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다.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는 그 경향이 훨씬 더 짙어진다. 빈소를 마련하고, 사망 보험금과 관련한 일을 처리하는 것부터 시신을 염하고 화장하는 일까지 영화는 해수가 엄마를 떠나 보내는 과정이 그려지는 동안이다. 이 과정의 묘사는 관객들이 실제로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다. 되려 극도로 제한되고 있는 것은 역시 감정에 대한 부분. 엄마를 떠나 보내는 과정에서도 해수와 그녀의 동생인 해준(이강지 분)은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 오히려 해준은 그녀의 누나인 해수에 대해 감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 그렇게 감독은 두 인물의 감정을 절제한 채로 작품을 최대한 건조하게 묘사해낸다.

사건의 전후 관계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이 영화 <축복의 집>의 분위기를 더욱 황량하게 만든다. 엄마의 죽음이나 해수의 현재 상황, 또는 가족의 이야기와 같은 하위 콘텍스트에 대해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극의 후반부에 이르러 해준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꺼내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다른 지점의 이야기는 극을 통해 주어지는 정보들을 조합해 관객들이 추론해 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추론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축복의 집> ⓒ 전주국제영화제


04.
화장이 끝난 엄마의 분골을 들고 산을 오른 해수는 맨손으로 산중턱을 파기 시작한다. 영화의 처음에서 그랬던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그렇게 땅을 파는 그녀. 그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지만 처음으로 행동으로나마 감정적인 표현이 드러난다. 손톱 아래가 까맣게 흙으로 뒤덮인 채 엄마의 사망신고서를 제출하는 그녀. 뒤늦게 그 손을 씻어보지만 완전히 깨끗해지지는 않는다.

박희권 감독은 이 작품의 영제를 'Dust and Ashes'라고 붙였다. 재와 먼지. 국내에 소개되는 타이틀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다. 최대한 감정을 걷어내고 그 절차를 따라왔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느끼게 되는 어떤 감정적인 잔여물들. 해소되지 않은 채로 떠다니는 그 감정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극 중 해수에게도 마찬가지로 전해졌을 감정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