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사회 곳곳에서 광주의 희생을 기억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식과 행사가 열렸다. 언론도 다양한 방법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렸다.

지난 24일 방송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5.18 가짜뉴스의 뿌리는?···전두환의 보도 기술' 편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언론 보도를 돌아보며 언론이 어떻게 권력에 협력했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금도 일부 세력이 어떻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날조하는지 살펴보았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경향신문>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당일 과거 자사의 보도를 사과하고 정정하는 기사 <'광주의 5월' 제대로 담지 못한 기사, 40년 만에 바로잡습니다>를 냈다.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원인은 언론에도 있다. 대다수 언론은 계엄군이 1980년 광주 시민들을 폭력 진압했을 때 현장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 언론이 스스로 당시 사건의 진상에 다가서야 했지만 현장 취재가 부족했다. 계엄사령부 등 당국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썼다."

<서울신문>은 2020년 5월 18일자 1면으로 < 5.18 소년이 40년 후 소년에게 >란 제목으로 당시 희생된 10대 36명의 사진을 실었다. 홈페이지에선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누르면 간략한 정보, 검시 내용, 사망진단서를 함께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보도와 관련해 몇몇 언론사들은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2020년 5월 18일 당일 보도량을 살펴보면 <경향신문>은 16건, <한겨레>는 14건, <동아일보>는 10건의 관련 기사를 썼다. 반면에 <중앙일보>는 6건, <조선일보>는 5건에 불과하다.

사설에서도 온도차는 뚜렷하다.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가 사설을 통해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관련 사설을 내지 않았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40년 전 당시 언론의 모습은 어땠을까? 1980년 5월 광주에 언론은 없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모든 언론 매체에 계엄군의 검열이란 재갈을 물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다. 1980년 5월 18일부터 6월 1일까지 16일 동안 삭제된 기사 숫자만 1만1천여 건에 달한다. 언론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도리어 진실을 덮고 왜곡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그 시절 언론사는 계엄사령부의 보도검열단의 기사 확인을 받은 후에야 인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보도검열단은 전삭(전체삭제), 부삭(부분삭제), 보류 등 난도질을 통해 기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고쳤다. 전쟁터, 폐허, 폭도, 난동, 과격, 과열, 흥분, 무질서 같은 신군부의 시각을 반영한 단어들이 동원되었다. <한국일보>에 내려졌던 보도지침을 보면 당시 언론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혹했는지 느낄 수 있다.

"-보도불가 1. 시위자들의 협상 요구 사항 2. 시위자들이 탈취한 무기 장비 회수 3. 인명 피해, 사상자 처리에 관한 개별 취재 4. 소요 자극, 진정 저해 요인 사항
-보도가능사항 1. 시위자들의 방화, 약탈, 살상, 검거, 선동 등 사실 보도 2. 시위자들의 자수, 안정 회복 권유 관련 사항
-협조사항 1. 간첩 검거, 계엄당국 발표, 계엄군의 활동(공식 발표)-크게 취급 요망"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동아일보>의 1980년 5월 22일자 신문은 보도검열단의 보도검열과정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처음 작성한 기사 <광주 유혈 사태 닷새째>는 세 차례나 검열을 당한 끝에 <광주 데모 사태 닷새째>로 바뀌었다. <16개 시·군 번져···사상자 많다>도 <인접 시·군 번져 군경, 시민 사상자 발생>으로 고쳐졌다. 군 과잉 진압 인정을 담은 <광주 유지 151명 7개 요구 사항 제시>는 삭제되고 말았다. 광주 시민들이 거리로 나간 이유와 무장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전두환 신군부의 입장만이 지면에 채워져 국민들이 광주를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신문의 기사, 사진뿐만 아니라 방송도 통제, 왜곡되었다. 당시 KBS의 취재 원본 영상과 9시 뉴스의 보도 영상은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원본 영상에는 시민을 강경 진압하는 계엄군의 폭력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하지만, 보도된 영상은 "시민들이 경찰 차량을 뒤엎고 불을 질렀다", "군인과 경찰들에게 돈을 던져 중상을 입혔다", "정부의 사태 수습 호소를 외면하고 위협과 선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식의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묘사하는 내용만 담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참혹한 진압 작전으로 10일간의 항쟁이 끝난 후 나온 언론의 보도는 참담하기 짝이 없다. 1980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의 <10일 만의 평온, 복구 서둘러>, <"어떻게 지냈느냐" 인사 나눠>, <"광주 시민을 돕자" 민간단체 등 적극 호응>, <광주에 생필품 비상 공급> 기사들을 보며 임자운 변호사는 "제목만 보면 광주에 큰 홍수가 나서 재난 복구하는 느낌"이라며 "군대를 앞세워 시민들을 학살했던 전두환 신군부가 마치 평화유지군처럼 그려졌다"라고 비판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1980년 5월 광주의 실제 상황이 철저하게 가려진 배경에는 보안사의 'K-공작계획'이 있다. K-공작계획은 보안사의 이상재 준위가 팀장인 언론조종반에서 작성한 문서로 전두환을 'King'으로 만들기 위한 언론 공작을 뜻한다. 매일 실시하는 언론, 출판 보도 검열을 조종하고 감독하는 '검열 조종 업무'와 각 언론 기관의 주요 인사를 접촉하는 '공작 업무'가 언론조종반의 주요 임무였다.

최근 공개된 문건들을 보면 전두환 신군부가 언론을 어떻게 회유하고 끌어들였는지 낱낱이 드러난다. '광주소요사태 언론인 취재계획'에 따르면 1980년 5월 24일, 계엄사는 중앙언론의 기자 49명을 광주로 초청해 현장을 취재하게 하고 해당 기자들에게 1인당 20~30만 원(현재 기준으로 약 400~600만 원)을 지급했다.

'중진언론인 국민계도유도계획'을 보면 당시 보안사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동안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실은 신문 10만 부를 한 부당 40원에 사서 광주 지역에 배포한 정황이 들어있다. 언론이 기사를 돈과 거래한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년이 흘렀으나 왜곡과 날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랫동안 '광주사태'로 불렸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1995년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비로소 역사적 위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보수 정당과 언론, 극우 세력은 여전히 '빨갱이들이 일으킨 유혈 폭동'이라 주장하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부정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08년 1건에 불과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 왜곡 영상은 200여 건으로 늘어났다. 조회수가 수십만을 넘긴 영상들도 상당수다. 유튜버 '왕자'는 영상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에서 "무기고를 털어 총을 든 대학생들이 교도소를 6번이나 습격하고 정치사범, 흉악범, 간첩들을 풀어 혼란을 야기시키려고 한 게 민주화운동이야?"라며 역사를 왜곡하며 조회수 67만을 기록했다. 유튜버 '왕자'처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왜곡하는 이들이 주로 근거로 당시 언론 기사를 내세운다.

<중앙일보>의 1980년 5월 26일자 기사 <광주에 공포 불안 계속. 한때 호전···무기 재탈취>엔 "깡패, 양아치, 건달 등 불량배들로 구성되어있어 이들은 약탈행위를 자행했다", "가가호호 방문하여 쌀, 음료수, 담배, 침구 등은 물론 금전까지도 강제 각출했으며 약국, 금은방 등에 침입, 강도질은 물론 슈퍼마켓에 침입, 현금을 강탈했다", "무차별 사격을 가함으로써 시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란 거짓으로 가득하다.

<동아일보>는 1980년 5월 22일 화약을 만들 줄 아는 연대생과 고대생 600명이 광주에 갔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런 기사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부정하고 정파적 도구로 활용하는 세력들의 근거로 활용된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로그램의 한 장면 ⓒ KBS


일부 보수 언론은 정정은 고사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북한 특수부대 소행으로 발생한 무장 난동"이라는 지만원씨의 주장을 그대로 지면으로 옮겨 '북한군 개입설'만 확산시키는 중이다. 기계적 중립을 앞세워 망언을 검증 없이 보도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에 대해 강유정 강남대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현상이 있더라도 부적절한 정보는 선별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언론은 자사의 과거 기사에 대해 사과하고 정정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언론이 바로 설 수 있고 가짜뉴스의 악순환도 끊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자들을 처벌하는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을 법의 심판대에 올리겠다는 의지다.

1985년 초판 출간 당시에 5·18의 진실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 이재의씨는 32년 만에 전면 개정판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걸 쓰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니죠. 너무 힘들었습니다. 워낙에 왜곡이 심하고 다시 80년도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비판해주는 언론이 없고. 그러니까 안 되겠다. (5·18을 폄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돈벌이로 생각을 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언론 자유 보장됐으니까 하는 것이다(라며). 역사적 사실을, 진실을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규제가 있어야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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