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11회 말미, 율제종합병원의 신경외과의 채송화(전미도 분)는 친구들에게 속초 분원으로 1년 간 가겠다고 말한다. 송화는 심해진 목디스크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다.

같은 과 레지던트 안치홍(김준한 분)도 간담췌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도 송화에 대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것은 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당사자에겐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의 매일 보아야 할 20년지기 친구와 후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송화에 고백하는 익준과 치홍

연적을 의식하는 익준과 치홍의 모습은 어느 쪽이랄 것 없이 안타깝다. 두 사람 모두 매력 넘치는 좋은 사람들이다. 1999년 봄, 송화를 위해 반지를 구입하는 익준의 모습에도 2016년의 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송화를 바라보는 치홍의 모습에도 송화를 향한 진심이 담겨 있다.

오래 묵힌 가슴앓이도 덜 묵힌 가슴앓이도 아프기는 매한가지이다. 허나, 남녀의 사랑에 타협이나 중간은 있을 수 없다. 둘 중 한 사람이거나 두 사람 모두 아닐 수밖에 없다. 익준과 치홍의 아린 가슴 한쪽에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결의가 자리잡고 있을 터였다.

다만, 굳이 꼭 송화를 가운데 두고 그렇게 서로 감정을 표현했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술을 빌미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 일방적인 감정 표출은 거북하기 그지없다. 자리를 지키던 송화의 난처함이 실시간으로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사랑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11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11회 한 장면 ⓒ tvN

 
아무래도 세 사람 모두가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생각하긴 어렵다. 욕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심성 고운 송화에게 이 삼각관계는 꽤나 힘들 듯하다.

송화가 누군가의 아픈 마음을 배려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선택을 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더라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아픔까지 책임져줄 수는 없다. 모두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 때문에 한 사람을 위한 뜨거운 자리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만큼이나 쉽게 포기를 떠올리지 않아야 할 곳, 그곳은 병원이다. 병원에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응급 환자나 처치가 시급한 위중한 환자가 끊이지 않는다. 율제종합병원 응급실에 뇌출혈로 정신과 감각을 잃은 환자가 당도한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송화는 급히 수술을 하겠지만 전과 같은 상태를 장담할 수 없다고 환자의 보호자에게 말한다. 환자의 아내는 "살려만 주세요"라고 송화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그러나, 수술 후 깨어난 환자는 마비가 된 팔을 보며 차라리 죽게 두지 왜 살렸냐고 절규한다.

송화가 재활 치료를 이야기하지만 절망에 빠진 환자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송화는 포기하지 않는다. 송화는 치홍을 불러 환자 보호자에게 재활 치료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전해달라 부탁한다. 마비된 팔이 가하는 충격은 환자의 의지를 잠시 마비시킬 수도 있다. 송화는 환자가 재활을 포기하지 않기를, 그리고 그의 아내가 함께 포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다.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 '장기이식'

흉부외과의 김준완(정경호 분)은 심장을 이식 받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남아있지 않은 영아 채윤이를 착잡하게 바라본다. 치료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채윤의 부모는 준완에게 "포기하지 말아달라"며 눈물을 보인다. 이후 채윤은 기적처럼 심장을 이식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식된 심장이 가슴에 비해 조금 커 봉합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채윤은 여전히 살아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많은 회에 걸쳐 장기 이식에 대한 인식을 꾸준히 환기시킨다. 장기 이식은 할 수 있는 처치를 모두 동원해도 치료되지 못한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한 줄기 빛이 될 기증자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기증 대기 중 사망자는 총 1910명으로 하루 5.2명의 환자가 기증을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장기 이식 대기자는 약 3만4000여 명이지만 기증자는 600여 명 정도이다. 드라마에는 간과 심장 이식이 주로 나오지만, 신장·췌장·폐·안구·골수·인체 조직 등 보다 많은 부분에서 장기 이식이 이루어진다.

장기 이식과 기증의 문제는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장기 기증은 가족일지라도 선뜻 동의하고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해주지 않는다 하여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때문에 <슬기로운 의사생활> 역시 이를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익준은 간암 환자에게 간 이식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들은 환자의 직계 가족들은 며느리이자 형수인 환자의 아내에게 반강제적으로 간 이식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 익준은 환자의 아내에게 기증은 본인 의사가 중요한 일이라며 아내의 본심을 확인한다. 환자의 상태가 아무리 안타깝고 환자와 가까운 관계에 놓여 있더라도, 기증이 강요될 일이 아닌 것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11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11회 한 장면 ⓒ tvN

 
사후이건 생전이건, 가족이건 아니건 장기 기증은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이나 당연하지도 쉽지도 않다. 장기 이식으로 사는 것을 거의 포기했던 누군가가 살아나는 장면은 반복적으로 봐도 매회 감동을 선사한다.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며 그 결정이 절망에 빠진 누군가에게 어떤 희망이 되는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잘 보여준다.

죽음 직전의 아들이 간 이식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1회)의 모습이나 딸에게 간 이식을 해주기 위해 식이요법과 간 이식을 하고 나타난 아버지(9회)의 일화는 가슴이 뭉클하다. 특히, 퇴원한 다음날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로 돌아온 후 장기 기증을 한 3회의 육희관 환자의 일화는 숙연한 슬픔에 잠기게 한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삶의 허무를 여실히 드러내지만, 장기 기증은 그 허무를 뛰어넘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다. 장기 기증은 죽음이 삶으로 뒤바뀌는 실제적인 부활과도 같은 기적 중 하나이다. 삶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장기 기증은 축복 그 자체이다.

장기 기증은 분명 '선택'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 선택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다양한 장면을 제공한다. 장기 기증에 대해 한 번쯤 혹은 여러 번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3회 한 장면 ⓒ tvN

 
포기는 곧 끝을 의미한다. 끝은 많은 경우 새로운 시작의 다른 이름이 되지만, 그것은 끝났을 때 할 이야기이다. 가능성이 아예 없다면 접는 것이 좋겠지만 사람의 일 중 무자르듯 확실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아들인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이 신부가 되는 일은 막고 싶은 정로사(김해숙 분)는 레지던트 장겨울(신현빈 분)을 만나 정원을 설득해줄 것을 부탁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 보는 것이다.

준완 역시 유학을 결정한 익순(곽선영 분)과의 관계를 미리부터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보다는 지금의 감정에 충실한다. 어떤 일은 한발 앞서 예상해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변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해 결별을 선택하는 것은 이러한 현명함에 포함되지 않는다. 준완이 보이는 현명함은 아프더라도,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일은 원하지 않는 결말로 끝이 나더라도 포기했다는 자책과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은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 안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포기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살펴본다면 어떨까.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실패하더라도 그 도전에서 분명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 실패는 결코 실패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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