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게 만난 게임, 골조차 오래 기다려야 했다. 득점 없이 끝나는 줄 알았던 K리그 2 최고의 더비 매치가 후반전 추가 시간에 믿기 힘든 극장골로 마무리됐다. 정들었던 친정 팀을 상대로 남기일 감독이 시즌 첫 승리를 따냈다는 것만으로도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남기일 감독이 이끌고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가 26일 오후 7시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투 4라운드 부천 FC 1995와의 어웨이 게임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 2분에 터진 주민규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끈질기게 기다리는 '축구'
 
 26일 오후 7시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투 4라운드?부천 FC 1995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 모습. 골을 넣은 제주 주민규 선수가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26일 오후 7시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투 4라운드?부천 FC 1995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 모습. 골을 넣은 제주 주민규 선수가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코로나19 때문에 관중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홈 팀 부천 FC 1995 팬들은 이날을 기다리느라 5227일 동안 속이 까맣게 타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부천 팬들 못지않게 속이 타들어가던 인물이 또 있었다. 바로 기구한 운명의 제주 유나이티드 남기일 감독이다.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2부리그로 미끄러진 제주 유나이티드를 구하기 위해 부임했기 때문에 축소된 리그 초반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누구보다 컸다. 이전까지 3게임을 치르며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만들었으니 자신이 그라운드를 누비던 부천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결코 가벼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은 부천 팬들이나 제주 유나이티드의 남기일 감독에게 '기다림'의 의미를 크게 깨닫게 해 준 셈이다. 전반전보다 후반전에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노리기 위해 큰 인내심과 집중력을 유지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가르쳐 준 게임이었다.

후반전에 접어들어 빗줄기가 제법 굵게 뿌리기 시작할 때 어웨이 팀 제주 유나이티드는 간절히 기다리는 시즌 첫 승을 거두기 위해 상대 선수들을 가둬 놓고 효율적인 공 돌리기 전술을 펼쳤다. 이 흐름을 만들기까지 그들도 꾹 참고 기다리는 축구를 구사한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후반전 수세에 몰린 홈 팀 부천 FC 1995도 날카로운 상대 공격을 침착하게 막아냈다. 섣불리 역습 전술을 펼치지 않고 수비에 집중할 때 역시 움츠려 기다릴 줄 아는 밸런스를 유지한 것이다.

마지막 선택, 믿음직한 골잡이 '주민규'

오랜 기다림 속에 만난 것이기에 양팀 선수들 모두 득점 없이 게임을 끝낼 마음은 없었다. 후반전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 먼저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은 팀은 부천 FC 1995였다. 

89분, 부천의 윙백 장현수가 재치있는 가로채기로 상대 골키퍼 오승훈과 1:1로 맞서는 절호의 득점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비 때문에 더 미끄러운 잔디 위에서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그 찰나에 제주 유나이티드 수비수 정운의 슬라이딩 태클이 들어와 슛을 막아낸 것이다.

장현수는 미끄러진 정운의 핸드 볼 반칙에 따른 페널티킥을 호소했지만 VAR(비디오 판독 심판) 룸에서 의도적인 핸드 볼 반칙은 아니라는 판단을 최현재 주심에게 전했다. 

그리고 이어진 추가 시간 2분 만에 믿기 힘든 결승골이 반대쪽 골문에 빨려들어갔다. 제주 유나이티드 미드필더 김영욱이 오른쪽 측면으로 빠져서 오른발로 감아올린 크로스를 골잡이 주민규가 점프 헤더 슛으로 시원하게 꽂아넣었다. 부천 FC 1995의 핵심 수비수 김영찬이 바로 앞에 있었지만 뒤로 돌아서 움직이는 주민규의 공간 감각이 한 수 위였다.

VAR 판독이 조금 길어지면서 추가된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홈 팀 부천 FC 1995 김영찬의 마지막 왼발 발리 슛은 야속하게도 골문을 벗어나고 말았다. 끝나고 나서 아쉬움이 짙게 남았지만 전반전 38분에 이현일이 제주 유나이티드 골키퍼 오승훈의 판단 실수를 틈타 빈 골문에 헤더 슛을 꽂아넣지 못한 순간이 부천 선수들의 머릿속에 남았을 듯하다.

이렇게 제주 유나이티드는 기다리던 시즌 첫 승을 양보할 수 없는 더비 매치에서 따내는 바람에 더 귀한 승점이 되었고 덕분에 순위를 8위에서 6위(4점 1승 1무 2패 4득점 5실점 -1)까지 끌어올렸다.

반면에 3연승 선두를 내달리던 부천 FC 1995(승점 9)는 시즌 첫 패배 기록을 양보할 수 없는 라이벌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게임에서 당하는 바람에 같은 시각 안산 그리너스와의 홈 게임에서 1-0으로 이긴 대전 하나시티즌(승점 10)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어지는 5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는 31일 오후 4시에 안산 그리너스와 만나게 되며, 부천 FC 1995도 같은 날 오후 6시 30분에 수원 FC를 만나러 수원종합운동장으로 들어간다.

기구한 운명의 두 팀이 다시 맞붙는 더비 매치는 7월 12일(일요일) 오후 7시에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9월 19일(토요일) 오후 4시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두 차례 더 이어진다. 

2020 K리그 투 4라운드 결과(26일 오후 7시, 부천종합운동장)

부천 FC 1995 0-1 제주 유나이티드 [득점 : 주민규(90+2분,도움-김영욱)]

부천 FC 1995 선수들
FW : 이현일(82분↔이정찬), 바이아노(77분↔서명원)
MF : 국태정, 김영남, 바비오, 조수철, 장현수(90+4분↔이태호)
DF : 김영찬, 조범석, 김강산
GK : 최봉진

제주 유나이티드 선수들
FW : 공민현, 주민규
MF : 정우재, 강윤성, 김영욱, 이규혁(55분↔임찬울)
DF : 정운, 김재봉(63분↔임동혁), 권한진, 박원재(80분↔안현범)
GK : 오승훈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