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 할리우드>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 할리우드> 포스터. ⓒ ?넷플릭스

 
인간은 때때로 자성, 즉 자아성찰의 기간이 필요하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다가 문뜩 떠올리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뭘 할 수 없겠다는 깨달음이 작용한 것이리라. 그럴 땐 주로 과거로 돌아간다. 물론, 상상력을 발휘해 미래로 가거나 현재를 다시 그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로도 이어지고 현재와도 맞닿아 있는 과거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미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글리>,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넷플릭스 <더 폴리티션> 등을 제작하고 연출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라이언 머피가, '할리우드'라는 오래되고 깊고 넓은 숲을 조망하며 자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넷플릭스와 손잡고 6편 짜리 드라마로 말이다. <오, 할리우드>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황금기라 할 만한 1940년대 후반기를 다루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제작사, 프로듀서, 감독, 작가, 배우들의 열정과 투쟁이 살아 숨 쉰다. 성정체성, 인종, 성별 등 지금까지도 이슈화되어 익숙하게 느끼는 소재와 주제들이 근간을 이룬다. 록 허드슨, 해티 맥디니얼, 안나 메이 웡 등의 실존인물과 다양한 부류의 가상 인물들이 따로 또 같이 극을 이끈다. 주요 등장인물을 연기한 배우들 역시, 촉망받는 신예급과 전설이 되어가는 명배우들이 따로 또 같이 호흡을 맞췄다. 굉장히 이상적인 틀로 굉장히 비이상적이었던 당대 할리우드를 그렸다.

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 이야기
 
 넷플릭스 드라마 <오, 할리우드>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드라마 <오, 할리우드>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할리우드 에이스 스튜디오, 수많은 엑스트라 지원자 중 잭이 있다. 그는 영화배우가 되어 성공해서 가족을 부양하고자 하지만, 잘생긴 외모 하나로는 성공가도를 달리기에 역부족이다. 우연한 기회에 주유소에서 일하게 된 잭, 돈을 벌고자 시작한 일이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몸을 파는 곳이었다. 그는 주요 고객 중 한 명이 에이스 스튜디오 회장 사모님이라는 걸 이용해 영화 <펙> 주연 스크린 테스트를 보게 되고 열심히 연습하여 배역을 따낸다. 하지만 아내와는 멀어지고 만다. 

한편, 영화 <펙>은 필리핀계의 촉망받는 감독 레이먼드가 맡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의 여자친구이자 흑인 여배우 카밀이 주연을 맡는다. 그것도 모자라, 잭과 함께 주유소에서 일했던 아치가 흑인임에도 작가 타이틀을 따냈다. '자유와 평등과 진보'를 내걸고 회사의 사활을 담보로 <펙>을 <멕>으로 바꿔 제작을 강행한 에이스 스튜디오의 결정이었다. 맹렬 인종차별주의자 '에이스' 회장이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난 후, 회사의 중추 고위급들의 각성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할리우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에이전트 헨리 윌슨은 온갖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며 본인 소속 배우들을 챙기고 또 본인은 <멕>의 책임 프로듀서 자리를 노린다. 한때 영화배우를 꿈꿨던 주유소 사장 어니는, 비록 몸을 파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지만 '꿈'을 위해 <멕> 제작진을 물심양면 지원한다. 

영화를 향해 예상되는 대응과 그에 따른 타격 때문에 터무니없는 예산이 책정된 영화 <멕>, 비록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영화로 남을 게 분명하지만 프로듀서, 감독, 작가, 주연배우할 것 없이 신인급으로 꾸려진 이 영화의 앞날이 걱정된다. 영화 밖의 좋은 의미로만 그치지 않고, 영화 안의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할까?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올바른' 메시지

<오, 할리우드>는 세련되게 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를 그린다. 주로 대사와 행동으로 확고부동한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메시지를 전한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선언한다. 메시지가 너무 직설적이고 과할 때가 있는데, 못지 않은 파격적인 행동이 수반되기에 그러한 것일 테다. 하여, 용인된다. 그리고 행동으로서 영화 <멕> 제작 과정을 그려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몸소 혼혈 감독과 흑인 작가을 앉히고 제목과 내용과 메시지를 바꾸면서까지 흑인 여배우를 주연으로 발탁하는 것이다. 굉장히 전위적인 방식의 표현법이다.  

백조가 물 밖에선 우아하게 떠다니지만 물 아래에선 쉼 없이 발을 젓는 것처럼,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고자 '무슨' 짓이든 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파격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인간 세상이 다 그렇지' 하는 깨달음까지 동반하게 한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시선에서 보면, 그 누구 하나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없고 그 누구 하나 '착한 놈'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다. 모두 '때'가 묻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모두 하는 선택이었다는 식이다.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메시지와 '성공'이라는 개념이 합쳐져 확고부동한 줄기를 형성한다. 

단연 눈에 띄는 건, 성별과 인종의 차별 위에 서 있는 성정체성 차별의 모습이다. 아무래도 남성이 주요 인물일 수밖에 없을 텐데, 최소한 절반 이상이 게이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평생 숨기며 살아야 하기에 더욱 힘든 삶을 살았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여, '1940년대 미국 할리우드'라는 지금 우리와는 하등 상관없을 것 같은 이야기임에도 끌린다. 분노하고 응원하고, 치가 떨리기도 하며 열광하기도 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공명하는, 영리한 이야기

작품은 아련하다. 할리우드 최고의 성공가도를 완성하는 이들의 이야기임에도, 그 과정의 온갖 더러운 꾸정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련한 공감이 물밀듯 밀려들어온다. 꼭 저렇게 살아야 할까 싶기도 하면서도, 성공만이 아닌 투쟁으로서의 삶의 숭고함이 불쑥 고개를 들기도 한다. 직접적인 공감은 힘들지언정, 마치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생각하고 말하며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아련한 여운을 남기기에 이른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영리하다. 삶과 세상을 규정하는 한 가지 또는 몇 가지의 개념과 사상이 아닌, 수많은 인물들의 집합체로서의 아슬아슬한 생각과 행동과 변수들까지 총집합 시켜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버렸다. 하여, 어느 누가 보든 전부 받아들여 버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나아가, 그런 곳이 할리우드이고 그런 나라가 미국이라는 보다 거대하고 근원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모든 것이 수용 가능한 곳. 

마지막으로 <오, 할리우드>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와 감동은 물론, 사고방식과 사상의 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획기적인 전환을 말하는 게 아닌 논란의 '올바른 쪽'을 대놓고 지지하면서, 지금쯤이면 짚고 넘어갈 수 있다고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한없이 창대하고 행복하다는 전제 아래, 시즌 2는 언제 어떤 형태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가지고 찾아올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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