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커밍 제인> 포스터

영화 <비커밍 제인>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최근 <엠마>로 제인 오스틴의 역작이 영화화되었다. 꾸준히 영화와 드라마로 재해석 되는 작품 중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가?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연애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의 연애를 어땠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한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다. <작은 아씨들>과 맞물리는 지점도 인기 비결이다. 글 쓰는 여성, 자매들과 연애 이야기, 결혼. 그리고 앤 해서웨이와 제임스 맥어보이의 풋풋했던 시절까지. 그래서일까. 2007년 우리나라에 개봉한 이후 2017년, 2020년 이번이 세 번째 재개봉이다.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은 영국이 낳은 또 하나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받으며 19세기 초 영국인들의 삶이자 근간이었다. 영화는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된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이 경험을 녹여내 스물하나에 <첫인상>(1796)을 쓰지만, 출판사에서 거절당한다. 이후 첫 작품 <이성과 감성>(1811), <첫인상> 개작해서 쓴 <오만과 편견>(1813)이 성공한다. 그리고 <맨스필드 공원>(1814), <에마>(1815) 등의 걸작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설득>(1817)을 탈고하던 중 건강이 나빠져 이듬해 42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노생거 수도원>은 오빠 헨리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로맨스 소설의 격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가로 20세기에 들어 재평가되었다. 영국 BBC의 '지난 1천년간 최고의 문학가'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영화 <비커밍 제인> 스틸컷

영화 <비커밍 제인>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유머와 아이러니가 살아 숨 쉬는 제인만의 작품 특징은 서로 다른 남녀가 티격태격 오해를 쌓아가지만 우여곡절 끝에 오해를 풀고 결혼으로 마무리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제인의 현실 연애는 씁쓸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해피엔딩을 맞는다. 어쩌면 자신의 처지를 작품에서나마 이루고자 한 심리가 반영된 결말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야기에 끌린다. 특히 남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 감정이입해 공감한다. 그리고 비극보다는 입가에 웃음을 던질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원한다. 때문에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이유기도 할 것이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로맨스 소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보편성 바로 '사랑'을 바탕으로 꾸준한 인기를 이어왔다.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하며 세계문학사에 없어서는 안 될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만약 연애에 성공해 결혼했더라면 어땠을까? 재미있는 상상으로 만들어지는 작품도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영화는 제인 오스틴의 삶을 반영했지만 20대 초반 겪었던 사랑의 열병과 결혼 제도에 대해 다룬다. 당차고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의 엘리자베스는 제인을, 미스터 다아시는 톰의 원조라고 봐도 좋다.

재미있는 것은 제인이 톰과 만난 후 감정에 못 이겨 소설로 분풀이(?)를 하는 장면 자주 등장한다. 작가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작품 속 캐릭터로 둔갑해 소심한 복수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장면. 아마 <오만과 편견>의 초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책으로 연애를 배운 제인의 실전은 연애박사 톰을 만나 무참히 깨진다. 연애를 배우기 위해 백날 책을 읽어봤자 헛수고였다. 책 속에서 나와 진짜 사랑을 해봐야 했다.

사랑 없는 결혼, 돈 없는 결혼의 갈등
 
 영화 <비커밍 제인> 스틸컷

영화 <비커밍 제인>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제인(앤 해서웨이)은 혼기가 찼지만 결혼에는 무관심. 오로지 글 쓰는 데만 관심이 있는 시골 아가씨다. 그러던 중 오빠 헨리의 친구 톰(제임스 맥어보이)이 마을에 찾아오면서 제인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톰은 가난한 변호사이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소위 나쁜 남자의 전형이라 해도 좋다. 정의를 믿지 않고 어딘가 억눌린 듯 세상을 향해 날선 모습을 보인다. 훨훨 날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발목 잡혀 쓸쓸하고 어두운 내면을 갖고 있다. 방탕하고 허세를 부림으로써 속내를 감춘 인물이다.

톰에게는 아픈 가정사가 있었다. 반대하는 결혼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엄마, 그리고 실질적인 가장이자 기둥인 탓에 하고 싶은 일도 접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법관인 삼촌의 눈에 들기 위해 억지로 시골에 오게 된다.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시험에 통과해야 했다.

때문에 당차고 독립적인 제인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톰은 세상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오만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촌스럽고 꽉 막힌 시골 아가씨 제인과 사랑에 빠질 줄 몰랐던 것이다.

제인 또한 톰을 만나기 전까지는 마냥 연애와 결혼의 환상이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제인에게 톰은 돌직구를 날린다. <톰 존슨>을 읽어보길 권하며 편협함을 버릴 때야 남성 작가와 동등한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충고였다. 당시 소설은 여자가 쓰고 여자가 읽는 소설로 폄하되었는데 제인은 톰을 만나면서 넓고 깊은 세계관을 구축하는 계기를 만든다. 둘은 서로의 단점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너무 달랐지만 그 때문에 자석 같은 강렬한 이끌린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결혼은 둘만 사랑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제인은 모든 것이 보장된 그리샴 부인(메기 스미스)의 조카, 위슬리(로렌스 폭스)의 청혼을 끝내 거절한다. 이 소식을 들은 엄마(줄리 월터스)는 다 된 밥에 재 뿌린 딸이 답답해 뼈 때리는 말을 내뱉는다. "사랑은 위대하지만 돈 없는 사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고. 사랑을 택했던 자신의 경험에 빗댄 진실한 충고다.

이는 톰과 제인이 찾아간 작가 래드클리프의 말로 또 한 번 증명된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제인의 혼란을 가중한다. 나 또한 아내 겸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며 작가의 글과 현실 속 작가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말이다. 제인은 또다시 사랑이란 굳은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작가로서의 삶도 이어갈 수 있다는 착각은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결국 주변의 방해 공작과 안타까운 타이밍 때문에 둘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사랑의 도피를 꿈꾸던 날, 톰의 현실을 알게 된 제인이 먼저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훗날 톰과 해우하는 장면에서 짜릿한 감동을 준다. 아마도 이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톰을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의 신실한 눈빛과 표정은 오랜 세월 그리워한 마음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영화 <비커밍 제인> 스틸컷

영화 <비커밍 제인>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오랜 가난은 영혼까지 망가트리게 될 것이다. 제인은 당장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지만 가족에 대한 죄책감, 망가진 명성, 벼랑 끝에 몰린 삶을 겪고 누가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말인가. 사랑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정 없는 사랑은 불행하다.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사랑에 빠진 어여쁜 청춘들은 무엇이 옳은지 알 길이 없다. 이 갈등은 현재도 유효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사랑은 고귀한 존재로 치부되지만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비참해진다. 무엇을 택해야 할지는 아직까지도 끊임없는 논쟁거리다.

영화 <비커밍 제인>은 실제 제인 오스틴보다 수려한 외모 때문에 캐스팅 반대가 많았다는 앤 해서웨이와 푸른 눈을 껌벅이던 미소년 제임스 맥어보이의 리즈시절을 만나 볼 수 있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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