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지는 순간도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뜨거웠던 프로농구 시즌, 그리고 FA계약과 이적시장을 지나 이제는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스스로 농구인생을 정리하거나 프로구단으로부터 더 이상 계약 제의를 받지 못한 선수들이 각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든 코트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올 시즌이 끝나고 은퇴하는 선수는 현재까지 모두 17명이다. 프로농구 최고의 레전드 양동근을 비롯하여 전태풍, 박상오, 신명호는 이미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여기에 한국농구연맹(KBL)이 지난 22일 오후 2020 KBL 자유계약선수(FA) 시장 3차 협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소속팀을 구하지 못한 13명의 선수가 추가로 한꺼번에 은퇴하게 됐다. 아직 계약 미체결자로 남은 문태영, 홍석민, 이지원의 거취도 불투명하여 은퇴 선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원주 DB와 FA 계약한 김창모(오른쪽)

원주 DB와 FA 계약한 김창모(오른쪽) ⓒ 연합뉴스

 
반면 김창모와 양우섭은 은퇴 기로에 몰렸다가 마지막 재협상에서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사례다. 김창모는 계약기간 3년 보수총액 6000만 원, 양우섭은 계약기간 1년 보수총액 3500만 원에 각각 계약을 맺으며 현역 생활을 연장하게 됐다.

해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새로운 별이 뜨는가 하면 밀려나는 선수들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올 시즌에는 유독 아쉬운 은퇴를 선언한 선수들이 많다. 양동근과 박상오는 MVP까지 수상했던 최정상급 선수들이었고 전태풍은 귀화혼혈 선수 1세대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였다. 신명호는 수비형 선수임에도 KCC의 우승 멤버이자 원클럽맨으로 남는 업적을 이뤘다.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현역 생활을 더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은퇴를 선언한 것도 팬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양동근은 마지막 시즌이 된 2019-2020시즌에도 울산 현대모비스의 주전으로 경기당 28분 24초를 뛰며 10점 4.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불혹의 나이가 무색하게 전성기와 큰 차이가 없는 꾸준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선수로서 모든 것을 다 이룬 양동근은 팀의 미래와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미련없이 은퇴를 선택했다.

양동근은 신인왕을 비롯하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4회, 플레이오프 MVP 3회, 우승 반지 6개로 역대 프로농구 선수 중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선수생활 내내 울산 현대모비스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모비스 왕조'를 개척한 원클럽맨으로 남았다. 코트 안에서나 사생활에서나 누구보다 모범적인 농구인생을 살아오며 모든 KBL 선수들의 귀감이 될만한 '롤모델'로 남았다는 평가다.

전태풍은 뛰어난 기술과 유쾌한 쇼맨십을 겸비하여 농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9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거쳐 KBL에 데뷔했고 2011년에는 KCC에서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다가 뒤늦게 한국에 귀화했지만 '진정한 한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노력했던 전태풍의 진정성과 열정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한편으로 전태풍은 한국 농구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악습과 관행에 대하여 과감한 소신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태풍은 은퇴 후에도 방송활동과 3대3 농구 진출 등을 통하여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프로농구 전주 KCC 가드 신명호

프로농구 전주 KCC 가드 신명호 ⓒ KBL

 
박상오와 신명호는 '노력형 선수들의 대기만성'을 증명하는 모범 사례라고 할만하다. 박상오는 중앙대 재학 시절 주전 경쟁에서 밀려 한때 농구를 포기하고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며 공백기 길었지만, 이후 심기일전하여 끝내 재기에 성공했고 뒤늦은 나이에 프로무대에서 각성하여 MVP까지 등극한 입지전적인 사례다. '신명호는 놔두라고'라는 동영상으로 더 유명해진 신명호는 슛이 약한 전형적인 수비형 식스맨에 불과했지만, 자신만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당당히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중에서 박상오만 유일하게 우승을 못했다는 점,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코트에서 팬들을 앞에두고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지만, 4명 모두 프로무대에서 자신만의 캐릭터와 업적을 확실히 남겼다는 점에서 충분히 성공적인 농구 인생을 보냈다고 할만하다.

이밖에도 은퇴하거나 은퇴 기로에 몰린 선수들 중에서는 웬지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쉬운 얼굴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성진과 한정원, 문태영 등을 꼽을 수 있다.

박성진은 2009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전자랜드에 입단하며 신인왕까지 차지했을만큼 많은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지만, 이후 성장세가 정체됐고 지난 2019년에는 KCC로서 팀을 옮겨 새로운 도전에 나섰으나 역시 주전 경쟁에서 밀려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전정규(은퇴), 박정현(LG) 등과 함께 역대 1순위 출신으로는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 선수가 되고 말았다.

한정원은 안양 KGC 인삼공사-창원 LG-인천 전자랜드 등을 거치며 백업 토종 빅맨으로서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지난 시즌 일어난 KCC의 팬서비스 논란 속에서도 라건아와 함께 어린이 팬들의 하이파이브 요청에 응했던 유이한 선수로 팬들에게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토종빅맨의 가치가 높아진 최근 프로농구에서 수비형 선수로서 나름의 활용도가 있었지만 끝내 타 구단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문태영은 KBL 역대 귀화혼혈 선수 중 최고의 커리어를 이룩한 거물이다. 현재까지 KBL유일의 한국 국적 득점왕 출신이자 국내 선수 득점 1위만 6차례나 차지했다. 2013년부터 모비스의 챔프전 3연패를 함께한 주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에서 활약하던 2017년 이후로 기량이 급격한 노쇠화 조짐을 보였고 수비력과 팀플레이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재계약에 실패했다. 은퇴하는 마지막 시즌까지 모비스의 우승멤버이자 클러치슈터로 활약하며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던 친형 문태종의 말년과도 비교되는 행보다. '레전드급' 선수의 마지막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초라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많은 선수들이 팬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다. 비록 큰 기회나 족적을 남기지못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선수들도 많지만, 그들도 자신의 꿈을 위하여 코트 위에서 흘린 노력과 땀방울의 가치는 존중받아야한다. 양동근처럼 소속팀과 KBL에 모두 큰 업적을 남긴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선수들도 어느 정도 은퇴를 예우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레전드급 선수에게는 은퇴 경기를 열어준다거나, KBL 차원의 합동 은퇴식 등도 생각해볼만하다.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새로운 시작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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