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포스터.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포스터. ⓒ (주)디오시네마

 
동양 대표 3국, 한국 일본 중국(대만)의 청춘영화 최근 동향을 되뇌어 본다. 이중 의외로 최근 가장 활발하고 핫한 나라는 중국 아니, 대만이다. 2007년 혜성 같이 등장한 <말할 수 없는 비밀> 이후 2010년대 꾸준히 비슷한 느낌의 청춘영화를 선보였다. 고등학생 나이, 풋풋한 사랑, 약간의 코미디 등이 뒤섞여 우리네 80~90년대를 연상시키는 화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한국의 경우, 청춘영화라고 할 만한 장르적 집합체가 사라진 것 같다. 학원물, 로맨스, 액션, 공포 등의 확고한 장르가 청춘이라는 장르와 겹치면서 힘을 더했던 예가 많아, 오롯이 청춘 소재만으로는 영화를 만들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 만들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영화를 '잘' 만듦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되었지만, 장르적 다양성에서는 후퇴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가 하면, 일본 청춘영화는 점점 멜랑꼴리해지는 것 같다. 무기력하고 무심하고 무료하고 애매하다. 상실과 허무를 동반하기도 한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발설하기가 두려운 듯하다. '오그라드는' 대사와 상황연출이 주를 이루기도 했던 일본영화의 기조에서 조금씩 탈피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청춘영화만의 느낌이 확실히 나타나면서 기대하게 된다. 일본 현지에선 지난 2018년 개봉했지만, 우리나라엔 2년이 지난 후 소개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4월 16일 개봉)는 일본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다.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 한 여. 서점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나'는 친구 시즈오와 같이 산다. 어느 날 나는 무단결석을 하곤 밤에 서점으로 찾아와 아르바이트 동료 사치코와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그러곤 시즈오와 놀다가 사치코와의 약속을 잊어 버린다. 다음 날 민망하지만 민망하지 않은 척 사치코와 재회하는 나, 이내 질척거리지 않는 쿨한 관계로 진척된다. 함께 다니고 몸을 섞지만 사귀는 사이는 아닌 관계.

나와 사치코 그리고 시즈오, 세 명이 친해진다. 셋이서 함께 당구도 치고 클럽에도 가고 집에서 술도 마시며 논다. 예기치 않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시즈오가 사치코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나는 괜찮다고, 그렇게 하라고 한다. 시즈오와 사치코는,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급기야 둘만 캠핑에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셋은 함께 놀고 먹고 웃고 떠드며 시간을 보낸다. 

사건이 하나둘 발생한다. 사치코는 점장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사치코와 점장 관계를 눈치챈 서점 아르바이트 동료 모리구치의 눈치 없는 발언에 발끈한 나는 모리구치를 구타한다. 시즈오는 엄마의 건강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엄마에게로 향한다. 나의 심경에 변화가 생기려고 한다. 무심한 나는 어떻게 대처해 행동해야 하는가. 

청춘, 청춘, 청춘!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41세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본의 천재 작가 사토 야스시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70년대 도쿄였던 원작의 배경을 현재 시점의 하코다테로 옮겨왔음에도 괴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청춘'이라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불안한 객체를 완벽히 표현해낸 원작자의 천재성 덕분인지, 50여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표현해낸 연출가의 천재성 덕분인지. 누구 덕분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결과물이 하염없이 좋다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영화의 원제가 'And Your Bird Can Sing'이다. 원제를 충실히 옮긴 제목이구나 싶겠지만, 원제가 다름 아닌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다. 1966년에 발표한 노래로, 유튜브를 통해 들어보면 전형적인 비틀즈 팝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영화와는 분위기나 결이 다르지만, 표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청춘'이라는 범 주제의 유추가 가능하다. 청춘을 생각하고 표현하고 보여주고 노래하고 고찰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가진 게 확실하다. 그리고 비슷비슷하다. 청춘도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도.

청춘은 방황하며 혼란스럽기 마련. 돌이켜 보면 한없이 돌아가고 싶은 그때이지만 정작 그때엔 너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청춘 이야기는 대부분 청춘이 지난 세대가 하기 마련이다. 그럴 땐 '청춘'이 아닌 '꼰대'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에, 청춘 이야기는 청춘이 해야 한다. 문제는, 청춘은 정작 청춘의 '진짜' 가치를 알기 힘들다는 아이러니다. 그걸 해낸 이들이야말로 정녕 위대하다. 

무심하고 무기력하고 무료하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무(無)'의 아우라를 풍긴다. 나는 누가 뭘하든 관심없다는 '무심'을, 시즈오는 무엇도 하기 싫은 '무기력'을, 사치코는 심심하고 지루해 보이는 '무료'를 상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불안한 객체로서의 흔들리는 청춘에서, 무심하고 무기력하고 무료하게 흐르는 청춘으로서의 변화된 모습이다. 일본 청춘만의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과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청춘의 본질은 똑같다는 걸 상기한다면 비단 일본 청춘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세 주인공 중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나'야말로 청춘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우리로선 알 수 없는 본심을 감춘 채 그 무엇과도 '연결'되는 걸 꺼려하는 것 같다. 연결되어 관계를 형성시킨 후,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상실과 허무가 두려운 것이리라. 이 시대의 청춘으로선 그런 류의 감정 소모를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여유도 용기도 없다. 적어도, 청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상 최악의 청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이때,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데 우정과 사랑의 금자탑을 쌓으라니?

그런데, 사람이 왜 사람인가. 오가는 감정으로 연결되고 관계를 형성하며, 지지고볶고 살아가는 게 인간 세상과 인생 아닌가. 청춘영화가 존재하는 이유, 청춘영화가 해야 할 일이 그것이다. '청춘은 이래야만 한다'고 선언하는 게 아니라, '청춘들아, 많이 힘들지?'라고 위로하는 게 아니라, 청춘들이 이렇다는 걸 그저 보여주는 것이다. 본질은 같지만, 시대마다 장소마다 다른 청춘의 모습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잇는 2010년대 후반 일본 청춘영화계의 적통 명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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