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와 작별' 레오(OK저축은행·왼쪽).... '재계약' 다우디(현대캐피탈) 선수

'V리그와 작별' 레오(OK저축은행·왼쪽).... '재계약' 다우디(현대캐피탈) 선수 ⓒ 박진철 기자

 
"한국 팀들의 선택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한 해외 매체가 국내 프로배구 감독들의 외국인 선발에 대해서 촌평하며 내놓은 말이다. 폴란드 종합 스포츠 매체인 < Onet Sport >는 15일자 '2명의 폴란드 선수가 한국 V리그에서 뛸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시아인들의 눈은 세계선수권 2회 연속 우승팀 멤버인 코나르스키를 비롯해 국제적 평판이 더 좋은 선수들을 찾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실시된 V리그 남자배구 외국인 선수 선발은 의외의 연속이었다.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는 "이번 남자배구 트라이아웃 참가자 47명 중 다른 해외 팀과 사전 계약 등으로 문제가 되거나, 드래프트 직전에 불참을 통보해 온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국내 프로구단이 선택하기만 하면, 모두 올 시즌 V리그에서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느 해보다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이 다수 참가했기 때문이다. 2016-2017시즌 남자배구 트라이아웃이 처음 도입된 이후 지난 4년 동안 참가 선수들의 면면과 올해 참가 선수들을 비교해 볼 때, 올해 참가자들의 국제적 수준과 기량, 해외 빅 리그에서의 활약상이 단연 뛰어났다. 코로나19 사태로 유럽 빅 리그가 어려워지면서 한국 V리그가 일종의 수혜를 본 것이다.

포지션별로도 수준급 선수가 다양하게 참가했다. 라이트 공격수로는 가푸르(1991년생·202cm), 코나르스키(1989년생·198cm), 토레스(1991년생·201cm) 등이 세계적으로 명성과 기량이 검증된 선수다.

가푸르는 남자배구 세계랭킹 8위인 이란 대표팀의 주 공격수다. 지난 시즌 소속팀도 세계 최강 클럽이었다. 지난해 이탈리아 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루베 치비타노바 팀에서 지난 시즌 전반기까지 주전 라이트로 활약했다.

코나르스키는 세계랭킹 2위인 폴란드 대표팀의 주요 멤버다. 지난해 8월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폴란드가 본선 출전권을 획득하는데, 주전과 교체 멤버를 오가며 많은 기여를 했다. 최근 클럽 경력도 인상적이다. 야스트솅브스키 벵기엘(폴란드) 팀의 주전 라이트로 활약하며, 2019-2020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C조 1위로 8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특히 세계 정상급 팀인 제니트 카잔(러시아)을 2번 모두 격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토레스(푸에르토리코), 에르난데스(쿠바)도 국제대회와 유럽 빅 리그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의 기량을 선보였다.

레프트 공격수도 트라이아웃 이후 최상급이었다. 펜체프(1994년생·197cm)는 현재 세계랭킹 14위인 불가리아 대표팀의 주전 레프트다. 지난 시즌에는 러시아 리그 전통 강호인 벨고로드(Belgorod) 팀에서 뛰었다. 프롬(1990년생·204cm)은 독일 대표팀의 주전 레프트다. 독일은 올해 1월 도쿄 올림픽 유럽 예선전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최근 클럽 경력도 좋다. 코나르스키와 함께 지난 시즌 야스트솅브스키 벵기엘 팀(폴란드)에서 좌우 쌍포로 활약하며, 유럼 챔피언언스 리그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밖에도 눈여겨볼 만한 수준급 선수들이 몇몇 더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단 한 명도 V리그 트라이아웃에서 선택받지 못했다. 국내 프로구단 감독들은 이들보다 국제대회 대표팀 경력, 해외 리그 활약상이 크게 뒤쳐지는 선수들을 선발했다.

기대 컸지만... 이전 수준 '도돌이표'
 
 선택 받지 못한 세계적 선수... 가푸르(이란·왼쪽)-코나르스키(폴란드) 선수

선택 받지 못한 세계적 선수... 가푸르(이란·왼쪽)-코나르스키(폴란드) 선수 ⓒ 국제배구연맹

 
드래프트 추첨 결과 1순위가 된 KB손해보험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케이타(2001년생·206cm)를 선택했다. 나이가 19살인 케이타는 주요 국제대회와 빅 리그 경험이 전혀 없다. 지난 시즌 활약했던 세르비아 리그도 2020-2021시즌에 새롭게 적용되는 유럽 남자배구 리그 랭킹에서 11위에 불과하다.

그나마 케이타 선발은 이해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공격 타점이 높고 파워가 강한 데다, 지난 시즌 세르비아 리그에서 리시브를 받는 레프트 공격수로 활악하면서 득점왕과 서브왕 2관왕을 달성했다. 또한 최근 이탈리아 리그 밀라노 팀(지난 시즌 5위)과 'V리그 트라이아웃에서 선발되지 못할 경우 입단하기로' 계약을 한 상태였다. 세계 최고 리그에서 영입하려 했던 유망주라는 훈장까지 얻게 됐다.

2순위 삼성화재는 바르토시 크시시에크(1990년생·207cm)를 선택했다. 다만, 폴란드 1군 대표팀 경력이 없다. 또한 지난 시즌 폴란드 '2부 리그'에서 활약했다. 유럽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차이는 한국 V리그와 실업팀 리그의 격차보다 더 크다. 

3순위 우리카드는 V리그 경력자인 알렉스(1991년생·200cm)를 선택했다. 포르투갈(세계랭킹 54위) 대표팀의 알렉스는 지난 시즌 폴란드 1부 리그 10위 팀에서 활약했다. 5순위 한국전력은 카일 러셀(1993년생·205cm)를 낙점했다. 지난 시즌 프랑스 리그(유럽리그 랭킹 7위)에서 활약했다. 러셀의 미국 대표팀 경력은 2019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초반에 주전 멤버가 상당수 빠진 상태에서 잠깐 활약한 적이 있다. 올림픽 예선전 등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미국 대표팀 1군과는 거리가 있다.

6순위 OK저축은행은 미하우 필립(1994년생·197cm)를 선발했다. 신장이 작은 필립은 2014년 유러피언 리그에서 폴란드 대표팀 주전 레프트로 활약한 적이 있다. 유럽 리그는 유럽선수권과 달리 대표팀 2군 선수들이 주로 출전한다. 실제로 필립은 2015년부터 폴란드 대표팀 1군에 발탁돼 경기를 뛴 적이 없다. 필립은 지난 시즌 폴란드 1부 리그 최하위(14위)를 기록한 비드고슈치(Bydgoszcz)에서 뛰었다. 4순위 대한항공, 7순위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 V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을 선택했다.

감독들 "세계적 선수, 우리 팀과 안 맞는다"... 5개 구단 선택 '혹평'도

남자배구 프로구단 감독과 관계자들은 최근 기자와 전화 통화, 그리고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구동성으로 "우리 팀 구성원과 스타일에 맞는 최상의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선수를 제외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은 대동소이했다. 국내 세터의 수준으로는 세계적인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외국인 선수가 신장이 작으면 팀 블로킹 높이가 낮아진다, V리그는 장신의 타점과 몰빵 공격력이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등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배구 전문가와 팬들 사이에선 혹평도 적지 않다. 평소 해외 배구에 관심이 많은 한 학교팀 감독은 "감독들이 팀의 운명이 걸린 외국인 선수이기에 코치들과 수많은 영상과 자료를 보며 각자 최적의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새롭게 선발한 5개 구단 모두가 세계적인 선수를 다 외면했다는 건, 배구 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좀 의아하긴 하다. 1~2개 팀은 그럴수 있다고 하지만..."이라고 밝혔다.

그는 "배구에서 경험, 기량, 국제적 명성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랭킹 상위 국가, 유럽 강팀 클럽의 주전 선수는 신장이 200cm 근처여도 수많은 국제대회와 정상급 리그에서 그 강력한 장신 블로킹 뚫어내고 높은 득점력을 발휘했던 선수들"이라며 "V리그 초반에는 다소 안 맞을 수있지만, 검증된 기량의 차이는 결국 시간이 가면 드러난다. 특히 플레이오프 같은 중요 국면에서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런 것 없이는 그런 명성을 얻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배구팬들도 트라이아웃 실시 이전에는 관련 기사 댓글창과 커뮤니티 등에서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의 다우디 재계약 방침을 비난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세계적인 선수가 많이 참가했는데 왜 기존 선수만 고집하느냐, 다른 팀 전력만 높아질 것"이라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그러나 15일 드래프트 결과가 나온 뒤로는 쏙 들어갔다. 반면, '5개 구단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부쩍 늘었다.
 
최종 판정 'V리그 결과'로... 그래도 남은 '아쉬운 점'
 
 2020-2021시즌 V리그 남자배구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서울 청담동 리베라 호텔(2020.5.15)

2020-2021시즌 V리그 남자배구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서울 청담동 리베라 호텔(2020.5.15) ⓒ 한국배구연맹

 
물론 세계적인 선수라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5개 구단이 선택한 외국인 선수들이 대부분 V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선보일 수도 있다. 세계적인 선수의 몰빵 배구가 재현되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선택했다면 오히려 박수 받을 일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몇몇 감독은 오히려 "몰빵 배구에 적합한 선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V리그 남자 프로팀 감독들의 '인식 범주'가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배구팬들이 세계적인 선수를 V리그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접어야 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최근 여자배구 인기에 뒤처진 남자배구의 흥행 반전 모멘텀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 배구 전문가는 국내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책임과 부담감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부상 등으로 교체할 경우 '역대급 오판'으로 과거보다 더 큰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V리그 남녀 감독들이 선발한 외국인 선수가 매년 기량 부족과 부상 등으로 교체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외국인 선수의 교체는 소속팀에게 팀 전력과 금전적 손실은 물론, 리그 흥행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관련 기사 : V리그 외국인 선발 '오판'... 너무 많은 교체, 이번엔 다를까).

벌써 일부 남자배구 프로구단 관계자는 올해는 외국인 교체 사례가 더 많고, 더 빨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체 외국인 선수의 자원이 역대급으로 풍부한 데다, 남자배구 외국인 선수는 여자배구 외국인 선수보다 한 달 빠른 7월 1일부터 입국한다는 점, V리그 개막 전까지는 외국인 선수를 수십 번 교체해도 '교체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올 시즌 남자배구 외국인 선수는 또 어떤 모습으로 V리그 역사를 수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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