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막장 드라마 구설에 오르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짜임새 있는 스릴러 형식으로 재미를 배가했지만, 지나친 여성 폭력 장면(현서가 '남친'으로부터 심각하게 구타당하는 장면이나, 선우가 태오가 사주한 주거 침입자에게 속수무책으로 폭력에 방치되는 장면 등)은 과도했다. 또한 현서(심은우 분)와 선우(김희애 분)의 연대에 대한 기대는 인규(이학주 분)의 자살이라는 납득하기 힘든 상황으로 허물어지고 결국, 높은 계급의 여성(선우)이 낮은 계급의 여성(현서)을 동정했다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종반을 치달으며 드라마는 선우가 다경(한소희 분)에게 태오(박해준 분)와의 외도를 폭로하고, 다경으로 하여금 결국 "난 지선우 대용품이었어"를 통감케 한 후 태오와 결별하게 만든다. 거기까지는 복수를 완결한 듯 보인다. 하지만 마땅히 떠나야 했던 고산으로 다시 돌아온 선우는 종잡을 수 없는 태도로 태오와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다.

<부부의 세계> 최종회는 선우의 입을 빌려 자칫, '이혼은 아이를 망친다', '이혼하면 불행해진다'라는 고루하기 짝이 없는 결론으로 치달으며, 복수의 여정임을 암시했던 이 드라마가 결국, 길을 잃고 말았음을 고백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복수는 나쁜 걸까? 적어도 복수를 행하려면 유리한 입장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을'의 위치에서 복수란 실상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가공할 힘을 가진 '갑'에게 '눈에는 눈'의 보복이란 애초 가능하지 않다. 복수할 수 없기에 '용서'하라고 하고, 약자는 종종 원수인 강자를 '용서'하고 싶어 안달을 낸다. 그래야만 이 각자도생의 삶을 유지할 수 있기에. 선우의 복수가 마땅함에도 왜 드라마는 결국 '복수'가 재앙을 낳는다고 결말짓고 말았을까? 강자의 복수는 언제나 유효하며 만인의 승인을 받는데, 왜 약자 혹은 여성의 복수는 정신분열적이거나 파렴치한 무엇으로 둔갑하는 것일까? 결국 선우가 자신의 복수가 "오만함"을 이기지 못한 욕망의 질주였다고 독백시킴으로써 드라마는 신파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의를 저버린 배우자에게 가하는 복수가 이혼의 전 과정이 될 수는 없다. 선우의 말처럼, "이혼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생일대의 역사도 아니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실상 이혼의 과정을 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을 '결혼 이야기'라고 했다. <결혼 이야기>는 이혼 소송에 이른 부부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서로의 단점(결혼 전에는 큰 장점이었을 테지만)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며 서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가를 보여주지만, 결국 이 과정을 통과한 후 서로의 상실을 토닥이게 되는 의리 혹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이혼한 부부의 모습을 제시한다.
 
영화는 이혼 후라도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으로 지키려는 성숙한 부모의 모습과 아이 또한 과도하게 부모에게 정상성을 요구하지 않는 모습으로 한국의 이혼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준영이 줄곧 아빠 태오의 비행에는 눈 감으며 엄마인 선우에게만 이혼하지 말 것을 요구하거나, 이혼 후 엄마인 선우를 두고 뒷담화가 오가자 "엄마는 왜 평범하게 못 살아"라며 원망하는 장면은, 아이가 사건의 진위를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존재인 것처럼 만든다. 반면 준영의 친구 노을은 형편이 준영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렵지만, 이혼한 엄마와 한 부모 가족인 자신의 입장을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살아간다. 결국 부모의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이혼 후 한부모 가족의 온전함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이 둘의 현격한 대비는 준영의 나약함을 드러내기 위함인가? 이혼으로 불안감에 싸인 준영이 이를 해소하고자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고 친구에게 주먹질을 하는 설정은 또 무엇인까?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도 단지 이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마는 아이에게 죄인이어야 하는 걸까? 마치 엄마의 잘못된 이혼으로 비행 청소년을 만들기라도 한 양, 선우가 시종일관 아이에게 쩔쩔매고 마침내 '학폭'을 막으려고 피해자 부모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혼은 부모의 선택이고 이혼은 부모에게도 힘든 일이다. 이혼으로 아이의 삶이 혼란해지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비행 청소년이 되는 것도,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 드라마를 내내 같이 시청하던 내 딸은 시종일관 준영에게 감정이입하지 못했다. 이유인즉슨, "철딱서니 없다"였는데, "부모의 이혼이 자식 입장에서 절대 좋을 수는 없겠지만, 자식이 저렇게 부모의 결혼에 지분이 있기라도 하는 양 구는 건 정말 못 봐주겠네"였다. "너는 중 2가 아니지 않냐"는 나의 말에 딸은 "엄마는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고 있나 봐. 그때 나도 엄마 아빠가 이혼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혼했다고 해도 부모를 원망할 수 없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그건 부모의 삶이고 선택이라고." 헐, 오래전 그런 '부부의 세계'가 있었지. 딸은 언제 이렇게 의젓하게 컸담.
 
부모의 이혼으로, 엄밀히 말하면 선우와 태오의 깔끔하지 못한 부적절한 이혼 '후'의 관계로, 분열을 겪는 준영을 드라마는 지나치게 나약하게 그려냈다. 물론 이런 아이도 있을 수 있다.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준영의 경우, 주된 스트레스는 이혼하고도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 부모의 기이한 애증에 있는데, 드라마는 이를 성공적으로 납득시키지 못했다.

엄마인 선우의 사회적 지위는 오히려 사생활을 구설수에 오르게 한다. 선우의 이혼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 현상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쇼윈도 부부' 또는 '유사 정상 가정'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내보이고 있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부부는 결혼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정상성을 인정받는다는 말이다. 이혼 후 아이를 부모 누구도 돌보지 않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혼 후 한부모 가족은 재앙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삶의 모습일 뿐이다.

준영처럼 부모의 이혼으로 자식이 돌이킬 수 없이 불행해진다는 결말은 시대착오적이며 한부모 가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다. 결혼했다면 이혼할 수 있다. 그런데 <부부의 세계>는 마치 이혼을 인생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어떤 무엇, 아이를 위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무책임한 어떤 것으로 그림으로써, 이혼을 삶의 한 방식으로 다루는데 실패하고 말았으며, 게다가 아이를 부모의 인생에 휘둘리는 나약한 부속물로 상정함으로써,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희생이 결혼의 미덕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애초 선우는 그럴만한 가치도 없는 남편에게 복수라는 칼을 벼리느라고 무의미한 에너지를 과도하게 쏟아붓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선우가 미스터리한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자신의 아이에게는 절대 이런 아픔을 주지 않겠다는 집념의 화신이 된다는 설정은 선우를 희생자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두고 싶은 드라마의 집착이다. 부모가 불행했다고 모든 아이가 그 부모의 불행 속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무엇도 부족할 것이 없는 다경이 고작 태오라는 남자에게 보인 집착은 어떠했나? 이 드라마의 가장 설득력 없는 설정인 다경의 집착이 마침내 '본처 콤플렉스'에 이를 때엔 한숨이 나온다. 또한 어찌 보면 적인 선우에게서 태오의 본체를 확인받고 그야말로 정신을 차린다는 설정은, 다경을 도무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여성으로 전락시킨다. 선우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태오를 선택하고 선우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지키던 태오를 결국, 선우에 의해 유실시킨다는 드라마의 서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다경은 '무뇌'라는 것인가?
 
한편, 재혁의 지치지도 않는 외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으려던 예림이 오래된 신화인 '미워도 다시 한번'을 재현해 재혁과 재결합 한다는 설정에서 시청자는 거의 탄식이 나온다. 어떤 여성이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는 말인가? 한 번 바람을 피운 남자는 또 핀다는 오래된 경구가 아니더라도, 예림은 재혁에게 잃은 신뢰를 복구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한번 소용돌이 같은 감정에 휩싸여 재혁의 "너밖에 없다"는 달콤한 구애에 굴복하고 말다니, 여성은 단지 로맨스에 의해 어리석은 삶만 선택한다는 말인가? 마침내 예림이 부부간의 허물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깨진 그릇을 붙이는 것만큼이나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지만, 바로 갈 길을 돌아도 너무 돌아 제자리에 오게 만드는 드라마의 전개는 지루하고 진부하다. 여성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복수를 한 축으로 세우고, 이혼 후에도 끝나지 않는 부부의 세계를 증명하려 했던 <부부의 세계>는 절반의 실패다. 드라마는 이혼을 정상성의 이탈로 상정하고, 아이를 낳고 산 부부의 이혼이 얼마나 끔찍한 최후에 이르는지에 과도히 매달리느라, 이혼 후 부부를 심리 장애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우스꽝스럽게도 '이혼한 부부'라는 새로운 축을 세움으로써, 부부의 세계를 결국 막장으로 끌어내렸다. 하지만 모든 이혼이 그러한가. 다시 말하지만, 결혼했다면 이혼할 수 있다. 결혼도 이혼도 선택일 뿐이다. 이혼한 과거의 부부에게 '부부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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