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반니 안토니오 아마데오 <소년을 처벌하는 라멕> 베르가모의 콜레오니 성당

지오반니 안토니오 아마데오 <소년을 처벌하는 라멕> 베르가모의 콜레오니 성당 ⓒ Sailko/CCBY

 

한 소년이 어느 흉포한 남자의 손아귀에 잡혀 내쳐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저 매달려 처분만 기다리는 소년의 표정이 애처롭다. 소년의 뒤에는 이미 쓰러져 있는 무력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후 이 무자비한 남자는 자신이 거느린 두 아내에게 가서 말한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 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로다 하였더라."(창세기 4장 23~24절)

남자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7대손 라멕이다. 시기심에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봐 겁에 질린 가인을 불쌍히 여긴 여호와는 그의 안전을 약속하는 '표식'을 준다. 이후 가인의 삶이 어땠기에 7대 후손 라멕에 이르러서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사람을 둘이나 죽이고도,'자기를 해하면 77배로 보복당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일까.

라멕의 폭력성은 '가인의 표식'에 대한 특권 의식 때문이었을까. 라멕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었다. 자녀들의 직업과 그것의 의미, 또 가인에게 준 여호와의 표식의 의미에 대해, 독립영화계의 전설 <파수꾼>(2011)의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을 살핀 후 말미에 다뤄 보자.
 
 범행에 앞서 불법도박장을 올려다보는 준석과 친구들

범행에 앞서 불법도박장을 올려다보는 준석과 친구들 ⓒ 리틀빅픽쳐스


어둠의 세계, 그리고 '한'의 법칙

근미래의 한국. 경제 파탄으로 황폐화되고, 대낮에도 총소리가 난무하는 등 무법지대다. 길거리는 시위대와 노숙자가 넘쳐 나고, 자동차들은 아무 데나 버려져 있다. 3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한 준석(이제훈)에겐 오랜 꿈이 있다. 따듯한 휴양도시에서 친구들과 편하게 사는 것.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에겐 돈이 없다. 그래서 조폭이 운영하는 불법 도박장을 친구들과 함께 털기로 한다. 도박장은 이상할 정도로 쉽게 털리고, 도주까지 완벽했다. 이제 밀항만 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정체불명의 남자가 따라붙었다. 과연 이들은 훔친 돈을 들고 무사히 밀항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23일 넷플릭스에 공개되기까지 많은 난관의 연속이었던 <사냥의 시간>. 2018년에 촬영은 마쳤지만 후반작업이 길어지고,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개봉 연기를 거듭하다, '넷플릭스'를 통한 온라인 개봉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 또한 투자배급사와 해외세일즈사 사이의 법적 분쟁으로 연기되고, 설상가상 '동해'를 '일본해'로 번역한 독일어 자막 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참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가장 쓰라린 난관은 공개 후 관객들의 '싸늘한' 반응.

꿈에서는 개연성을 따지지 않는다. 오로지 꿈꾸는 자의 의식과 무의식, 욕망과 두려움이 그 세계를 지배하듯, <사냥의 시간>에서 준석의 앞길을 막는 것은 없다. 가족 같은 친구들 기훈(최우식)과 장호(안재홍), 상수(박정민)는 준석의 무모한 계획에 쉽게 동참한다.

술집에서 큰 소리로 범행 모의를 해도, 도박장 CCTV 앞에 대놓고 얼쩡대도 경계하는 이가 없다. 그저 빵에서 만나 친해졌을 뿐인 총포상 봉식(조성하) 역시 대량의 총기를 너무 쉽게 무상으로 내준다. 모든 것이 준석이 꾸는 꿈속 세상인 듯 그의 욕망대로 흘러간다. 정확히 영화의 중간지점, 주차장에서 살인 병기 '한'(박해수)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한'이 준석 일행을 따라 붙으며 위협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한'이 준석 일행을 따라 붙으며 위협한다 ⓒ 리틀빅픽쳐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한'에게 쫓기면서, 그들은 왜 그들의 일탈이 막힘없이 진행되었는지 뒤늦게 알았다. 술집에서 큰소리로 범행 모의를 해도, CCTV 카메라 앞에서 얼쩡대도 왜 아무도 경계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개나 소나 총질하는 세상에 왜 불법 도박장에는 총이 없는지, 마치 모의훈련에 임하는 듯 느긋한 보안 요원들의 태도는 또 어떤가. 이 세계에도 지켜야 하는 룰이 있었다. 즉 무질서도 통제하는, 절대 깨지지 않는 불문율, '한의 심기를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
 
 도박장의 설계도면을 보며 범행 시나리오를 계획하는 준석과 친구들

도박장의 설계도면을 보며 범행 시나리오를 계획하는 준석과 친구들 ⓒ 리틀빅픽쳐스

 
세 친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뒷배'가 없다는 점이다. 보육원 출신 장호는 정말 가족이 없으며, 준석은 하나뿐인 가족인 엄마와 사별한 것으로 보이고, 기훈은 부모님 다 계시지만 실직으로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돈은 없어도 살아 있기에 제 목구멍에 밥을 먹여야 하고 제 몸 누일 곳에 월세를 내야 한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내몰렸을 때부터 세 친구는 서로가 서로를 부양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실직했거나 모두가 절도하지는 않는다. 준석 일행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그들이 돈을 쓰는 공간, 즉 술집, 클럽, 도박장, 당구장 등 그곳 주인과 직원들은 돈을 번다.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달러가 조폭이 운영하는 불법 도박장의 금고에는 가득하다.

행도 망하고 기업도 망하고 도시가 텅 비었는데도, 클럽이나 도박장 등 유흥시설에서 일하면 달러로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즉 돈도 일자리도 어두운 세계에만 있었고, 그 세계는 '내 심기를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는 한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한의 등장과 함께 준석에게 지옥문이 열렸다.

한의 등장과 함께 준석에게 지옥문이 열렸다. ⓒ 리틀빅픽쳐스


가인의 표식과 라멕의 횡포 

가인과 라멕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가인은 동생을 살해한 죄로, 땅의 저주를 받고 내쫓긴다. 가인은 원래 농부였는데, 여호와는 그가 땅에서 소산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농경을 금한 것으로 사실상 밥줄을 끊는 벌이기에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그보다 가인은 아벨의 목숨 값에 대한 보복이 있을 것을 알기에 겁이 나서 길을 나서지 못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여호와는 '너를 죽이는 자는 내가 7배로 보복할 것'이라며 안전을 보호하는 표식을 준다.

가인의 표식이 어떤 형식의 표식(marker)인지는 모르나, 가인은 '죽일 수 없는 자', 혹은 '죽여도 안 죽는 자'였음은 확실하다. 하나님의 보호 약속을 불신한 가인은 스스로 성을 쌓고, 아들의 이름을 따 '에녹 성'이라 짓는다. 최초의 도시, 가인의 성은 대를 거듭할수록 견고해졌다. 7대손 라멕에 이르러서는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사람을 둘이나 죽이고도, '자기를 해하면 77배로 보복당할 것'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지경에 이른다. 

라멕의 횡포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그에게는 야발, 유발, 두발가인, 나미아라는 네 명의 자녀가 있었다. 야발은 '육축'치는 자의 조상,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 두발가인은 동철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의 조상,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뜻의 딸 나아마이다.

야발은 최초로 가축을 대량 사육해 판매하는 장사꾼이었다. 유발은 수금과 퉁소 등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음악'과 '예술'의 조상쯤 되는데, 세속신 찬양 제의를 이끌지 않았을까 싶다. 두발가인은 동철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 즉 도구와 무기를 더 많이 가진 자가 권력을 장악하던 당시 라멕이 두발가인에 품은 자긍심은 대단했을 것이다. 딸 '나아마' 역시 성경에 이름이 오를 정도면 당대 뛰어난 미모였으리라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라멕은 부와 명예, 권력, 그리고 유력자와 사돈을 맺을 카드까지 쥔, 도성 최고의 실세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 성의 설립자이자, '죽일 수 없는 자', '죽여지지 않는 자' 가인의 후손 아니던가. 조상부터 내 자식까지 이렇게 뒷배가 든든한데 무엇이 두려우리. 오늘도 외쳐본다.

'내 심기를 상하게 했으니 일단 죽였는데, 그렇다고 내게 보복하면 77배로 당할 줄 알아!'

소년이 과연 뭘 했기에 라멕의 심기를 상하게 했을까. 소년도 라멕의 77배 법칙을 미처 몰랐을까. 가인의 성에서도 돈과 일자리가 어둠의 세계에만 있었을까. <사냥의 시간> 속 한국도 가인의 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도 소년을 도와주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저마다 살아남기 급급할 뿐이다. 소년의 뒤에 쓰러진 남자는 누구일까. 소년과 함께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건지, 소년을 도우려던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도 힘없는 어른이었으리라.

이제, 가인의 표식이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살해를 면하는 표식을 내린 것은 가인을 불사신으로 만들고자 함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인의 진심 어린 회개와 보복의 연쇄 고리를 끊고자 함이었는데, 그는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았으며, 살해되지 않았으나 아마도 끝이 없었을 살해 위협에 결국 성을 쌓고 더 잔혹해졌으리라.

신의 가호와 용서의 상징이었던 표식은 가인의 악행으로 인해 폭력과 난공불락의 상징으로 변질되었다. 마치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피하게 하는 조폭들의 용 문신처럼 말이다. 가인의 성은 7대손 라멕에서 폭력의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홍수 재앙을 통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심판'을 통해 인간의 죄성을 다루지 않으며,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싹을 틔운 용서와 이웃사랑이라는 가치관으로 인간의 죄성을 다룬다. 낮에 꾸는 악몽 같은 <사냥의 시간> 속 헬 조선은 어쩌면 우리의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든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연대와 사회적 안전망의 가치를 포기하면 언제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출판 참서림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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