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모르는 일 투성이다. 삶은 어쩌면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전에 알게 된 지식과 경험이 동원되며, 추측과 판단이 동반된다. tvN 목요 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9회에는 모르는 것을 대하는 우리의 다양한 태도가 담겨 있다.
 
 tvN 목요 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tvN 목요 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율제종합병원이 시끄럽다. 나이와 지방간 때문에 아픈 딸에게 간이식을 할 수 없는 아버지가 소란을 피운다. 간담췌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은 환자 오윤민이 간을 기증받을 수 있는 순서를 의미하는 MELD(Model for End-stage Liver Disease) 지수가 조금은 부족하나 가능할 수도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윤민의 아버지는 익준의 이야기를 조용히 수긍하고 물러난 후, 병원에 통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점점 악화되는 윤민의 상태를 걱정하는 간호사 송수빈(김수진 분)에게 익준은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익준은 가슴 아픈 현실이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윤민의 아버지는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놀라는 익준과 수빈에게 2주간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감량에 성공해 더욱 건강해졌으니, 딸에게 간 이식을 하게 해달라고 다시금 요청한다. 익준은 섣불리 윤민의 아버지를 오해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윤민의 아버지에 대한 익준의 추측은 그동안의 경험에 기반한다. 환자의 건강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던 보호자들을 만났던 기억들이 내린 판단일 것이다. 축적된 경험은 유용한 경우가 많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동일한 경험이 매번 반복되지는 않는다. 삶은 언제든 뜻밖의 장면을 연출한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 tvN

 
윤민의 아버지는 사업에 신경 쓰느라 딸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도 몰랐다며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아비 노릇을 하겠다고 말한다. 병색이 완연한 윤민은 돌아온 아빠에게 마치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새롭게 시작될 이들의 관계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신경외과의 채송화(전미도 분) 역시 예상 밖의 장면에 당황스럽다. '코일 삽입술'을 위해 사타구니의 털을 깎아야 할 환자에게 인턴이 머리털을 깎아줬기 때문이다. 인턴이 허벅지에 있는 대퇴동맥에 카테터를 삽입하는 수술을 뇌수술로 착각한 탓이다. 송화의 깍듯한 사과에 환자는 너그럽게 이해해줬지만 하마터면 큰 소란이 일어날 뻔했다. 또한 송화는 당연히 노인이라 생각했던 뇌출혈 응급 환자가 13세 소녀라는 사실에 놀란다.

익준과 송화의 경우는 한번 만들어지면 사라지기 어려운 고정관념을 떠오르게 한다. 어떤 일이 반복되면 당연한 결과를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만들어지기 쉽다. 고정관념은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 미리부터 준비된 정답이다. 반복이 꼭 논리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자주 잊혀진다.

고정관념은 가진 당사자뿐 아니라 편견 어린 시선을 받은 대상자까지 위축시킨다. 13세 뇌출혈 환자의 보호자는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음에도 요가센터를 개원해야 하는 상황에 난감하다. 보호자가 걱정하는 것은 개원을 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쏟아질 비난의 시선과 가시 돋힌 말일 것이다.

아이의 수술이 너무나 급작스러웠음에도, 아이의 곁을 한순간도 떠나지 못할 정도로 걱정했음에도, 부모의 사랑은 만사를 제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부담스럽다. 부모의 도리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축하나 걱정처럼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면 좋을 마음이 상처를 주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변질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고정관념이나 편견과 양상은 비슷하나 '합리적 의심'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도 존재한다. 율제종합병원 5인방은 흉부외과의 천명태(최영우 분)에 대한, 소위 '뒷담화'를 한다. 함께 골프를 친 같은 과 의사 김준완(정경호 분)는 명태를 별로인 사람이라 확언한다. 이들은 명태가 병원 이사 전민주의 재산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며, 예비 신부를 걱정한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 tvN


이를 뒷받침하듯 진료실의 명태는 세심하게 진료하는 준완과 달리 환자가 사는 지역을 물으며 진료를 기피한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알려진다. 누군가에 대한 평판은 조용히 공유되기 마련이다. 마감 시간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 준완의 진료와 마감이 채 되기도 전에 끝난 명태의 진료 시간은 이를 잘 보여준다.

명태의 진료를 받은 환자라면 다시는 그를 찾지 않을 것이며 좋은 의사라고 그를 소개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장 성실해야 할 순간에 명태는 인성의 바닥을 드러낸다. 이후 명태는 민주의 가족을 소개받는 듯한 자리에서 자신이 불성실하게 대했던 환자와 마주하며 낭패스런 표정을 짓는다. 민주의 딸인 듯한 환자는 명태의 진면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터였다.

누군가에 대한 '뒷담화'는 대부분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만들며, 심한 경우 심각한 왜곡을 거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 아닌 경계와 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정보는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확실히 겪은 본인의 경험담에 의지한 경우라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대를 위해 밝히는 용기도 필요하다. 험담이 목적이 아닌 선의의 피해자를 방지하기 위해 정제된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필요한 법이다.

실습생 장윤복(조이현 분)은 남자친구의 '폭력성'을 감지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을 체험한다. 윤복의 남자친구는 윤복의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며 휴대전화 메세지를 확인하려 한다. 연인이라는 내밀한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장면들은 상대의 실체를 파악하게 해주기도 한다.

평소에는 잘 모르고 지나갈 수 있으나, 뜻하지 않게 한순간에 드러나는 인간의 성정 중 하나가 '폭력성'이다. 데이트 상대가 자신의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분노하고 집요한 집착을 보인다면 이별을 매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 경우 편견이나 고정 관념일 수도 있다는 망설임은 버려야 한다. 자칫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연인의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분명 상처이다. 오랜 시간 믿어온 상대라면 더욱 그러하다. 치홍에 의해 연인에게 배신 당한 익준의 동생이자 준완의 연인인 이익순(곽선영 분)의 과거가 밝혀진다. 익순의 전 연인이 이별하기 위해 쓴 방법은 비열하게도 불편한 순간을 회피하기 위해 익순을 속이는 것이었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 tvN

 
전 연인의 의도대로 익순이 아무 것도 모르고 이별했다면 그저 가슴 아픈 이별의 상처로만 남았을 것이다. 우연히 연인의 거짓말을 알게 된 익순은 큰 상처를 받고 준완과도 보이지 않는 거리를 두는 중이다. 속임수가 탄로나 진실이 밝혀져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허나, 상처가 남는다 해도 익순이 모르고 지나갔으면 안 될 일이었다. 앞으로 익순이 싫다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준완과의 관계가 익순에게 어떤 약이 될지 궁금하다.

모르는 것이 너무나 답답할 때가 있다. 아이가 아프다면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프고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부모들은 궁금하다. 큰 수술을 앞뒀다면 더욱 그러하다. 겨울이 설명해주는 수술 과정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한 엄마는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의 쉬운 설명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겨울은 정원을 지켜보며 자신이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했음을 깨닫는다. 늘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지만 정작 보호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던 겨울이었다.

이제 겨울은 보호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술 과정과 결과를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한다. 큰 감사를 표하는 보호자의 갑작스런 포옹에 겨울은 놀라지만 마음은 따뜻해진다. 뜻이 통하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것과 비슷하다. 겨울이 자신을 위해 부러 애써 가며 언어를 바꾼 마음을 보호자는 아는 것이다. 이해를 주는 것은 곧 이해를 받는 것이다.

꼭 알고 싶은 것을 제대로 알려준 겨울에게 보호자는 커피를 건넨다. 개원과 함께 언제든 요가 센터에 와도 된다는 초대를 받은 송화는 개원 축하 화분을 건넨다. 익순의 아픈 상처를 알게 된 익준은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 담긴 봉지를 건넨다. 이들이 건네는 것은 고마움이며, 응원이며, 걱정하는 마음이다. 몰랐다면 할 수 없지만, 알게 된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이다.

알아야 하는 것이 많은 세상이기에 그만큼 모르고 지나가는 것도 많다. 우리가 아는 것은 언제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늘 많은 것이 모르는 채로 남겨진다. 꼭 알아야 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9회는 잠시 빗속을 지나는 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비춘다. 세상의 많은 것을 모르고 지나가듯 그 많은 사람들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 중에 몇 사람이면 족할 것이다. 석형처럼 원인 모를 부정맥으로 병원에 온 엄마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뿌듯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선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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