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스프링스틴

브루스 스프링스틴 ⓒ Bruce Springsteen 공식 SNS

 
친구 중 한 명이 나에게 '취향의 예수'라는 별명을 붙여 준 적이 있다. 좋아하는 음악의 폭이 넓다는 의미의 우스갯소리였다. 친구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 한다. 나에게는 데이브 그롤, 노엘 갤러거, 이소라, 이승환, 켄드릭 라마 등 많은 영웅들이 있다. 칠순의 록커 브루스 스프링스틴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미국을 대표하는 록커였다.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대 아티스트' 23위에 올랐고, 1억 장의 앨범을 팔았다. 20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쥐는 위업 역시 거뒀다. 스프링스틴의 음악은 '하트랜드 록(Heartland Rock)'이라는 단어로 수식되곤 한다. 음악적 양식은 블루스와 컨트리, 포크 등 미국 음악의 뿌리들을 좇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사다. 그는 미국 노동 계급의 꿈과 좌절, 고뇌를 노래한다. 그는 블루 칼라 계급의 아이콘이며, '보스(Bos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내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처음 접한 것은 'We Are The World'의 뮤직 비디오였다.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를 비롯한 당대의 스타들이 모인 가운데, 유독 거칠고 우렁찬 목소리로 스티비 원더와 조화를 이루는 백인 남자가 있었다. 흑인 음악을 가장 좋아했던 나에게는 유독 이질적으로 다가왔지만, 그래도 더 듣고 싶은 목소리였다. 그가 바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었다.

꿈 대신 현실을 노래하는 남자
 
 노동 계급의 현실을 노래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명반 < The River >

노동 계급의 현실을 노래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명반 < The River > ⓒ Sony Music

 
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꾸밈없는 패션과 목소리를 좋아한다. 수십년 째 변함없는 무대 매너 역시 매력적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그가 누구보다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2CD의 대작 < The River >(1980)는 나를 침착하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선율과 이야기가 모두 담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앨범 제목과 동명의 노래인 'The River'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학을 읽는 듯 가깝게 다가온다. 애수에 찬 하모니카 연주와 함께 시작되는 이 노래에서, 스프링스틴은 노동자들의 변함없는 삶을 '강'이라는 시어와 함께 노래했다. 이 노래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허상에 불과하다.
 
"I got a job working construction for the Johnstown Company
But lately there ain't been much work on account of the economy"

나는 존스타운 회사에서 건설직 일꾼으로 일하게 되었지
그러나 요즘은 불경기 때문에 일이 많지 않다네.
 
"Is a dream a lie if it don't come true Or is it something worse
현실이 되지 않는다면, 꿈은 거짓말이 아닐까,
아니면 그보다 더 나쁜 것일지도 모르겠군.

 
'Born In The USA'는 자타가 공인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대표곡이다. 힘찬 인트로와 리듬, 성조기가 그려진 앨범 재킷, 이 노래를 '미국 예찬곡'으로 판단할 근거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스프링스틴은 미국을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했을지언정, 애국을 노래한 적은 없다. 'Born In The USA'에 등장하는 군인은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그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다.

미국은 '더러운 전쟁'의 주범인 동시에, 노동 소외와 불평등이 자리잡은 땅인 것이다. 스프링스틴은 이 차가운 현실을 뜨거운 노래 위에 실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선거 기간에 스프링스틴의 고향인 뉴저지에 방문했을 때, 그를 '훌륭한 미국적 청년'으로 손꼽았다는 것이다. 레이건이 말한 '미국적'인 것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까지 많은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았다. 살면서 평생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한국에서 보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한 꿈일 것이다. 스프링스틴의 역사적 위상에 비해, 한국에서는 인지도 자체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1949년생인데, 늦기 전에 외국에서 그의 공연을 보아야 겠다는 목표를 세워본다.
 
스프링스틴의 음악 인생은 언제나 미국 민중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 그는 군림하는 신이 아니라 동시대의 친구이자 시인이었다. 이 시인의 음악에서 '미국'이라는 맥락을 빼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한국에 사는 20대 청년이 그의 음악에 깔린 '미국적 맥락'을 오롯이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작고 힘없는 민중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칠순을 넘긴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지금도 정력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월가 시위에 영감을 받아 앨범 < Wrecking Ball >(2012)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한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면서 '우리는 공포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미국의 오늘을 쉽게 긍정하고자 하지 않는다. 미국제일주의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불평등이 세계화된 오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가지고 있는 이 '미국적인 경향'은 오히려 '보편성'이 된다. 그는 여전히 불평등과 불합리를 찾아 내면서 진보를 꿈꾸고 있지 않는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여덟. www.facebook.com/2hyunpa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