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5월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공개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 기자간담회에서 출연진이 질문을 받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공개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 기자간담회에서 출연진이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 공개코미디의 자존심으로 꼽히던 KBS 2TV <개그콘서트>가 폐지설에 휩싸이며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달 초부터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개콘>의 폐지설이 확산됐다. KBS 측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 선을 그었지만 방송가에서는 이미 <개콘>의 폐지를 시간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만일 <개콘>이 막을 내릴 경우 1999년 첫 방송 이후 무려 21년 만이다. <웃찾사>와 <개그야> 등에 이어 지상파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국내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면 사실상 공개 코미디 전성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개그콘서트>는 심현섭, 김준호, 정종철, 박준형, 강성범, 정형돈, 김병만, 김준현, 장동민, 유민상, 이수근, 신봉선, 오나미, 허경환 등 숱한 스타 예능인들과 인기 코너들을 배출했다. 전성기에는 시청률 30% 고지를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기를 기점으로 <개콘>은 스타들의 유출, 소재 고갈, 관찰예능과 유튜브 전성시대 등 방송환경과 트렌드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지며 조금씩 내리막길을 걸었다. 최근 2~3년간은 시청률에 별다른 반등의 계기를 만들지 못했고, 새로운 인기 코너나 스타 발굴도 주춤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공개 코미디의 정체성마저 무너지며 어쩔 수 없이 사전 녹화를 통한 콩트나 스튜디오 토크-상황극으로 분량을 채우게 됐고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

결국 <개콘>은 편성이 연이어 변경되는 굴욕을 겪었고, 끝내는 폐지설까지 직면하게 됐다. 2020년 현재 <개콘>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넘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지난 4월 현재 금요일로 편성시간대를 옮긴 이후 시청률은 내내 2~3%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개콘'이 갖는 의미와 상징성

많은 이들은 <개콘>의 폐지설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 공개 코미디의 실질적인 원조 격인 <개콘>은 국내 방송가와 코미디계에서는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 이상을 넘어선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개콘>마저 사라지면 이제 방송가가 공개 코미디라고 할만한 프로그램은 tvN에서 방송 중인 <코미디 빅리그>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가에서 전문 희극인들이 주도하는 코미디 장르 자체가 멸종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당장 방송사에서 일정 시기마다 선발하던 '공채 개그맨'이라는 시스템도 없어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앞으로는 코미디언-개그맨 등으로 불리는 전문 희극인이라는 직업군 자체가 아예 사라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되는 희극인들이나 코미디 팬들은 폐지 소식에 반발하고 있다. 원로 개그맨 이용식을 비롯하여 <개콘>출신 윤형빈 등 많은 희극인들이 폐지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개콘의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이 올라왔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도 있다. <개콘>이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에 가깝다. 9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던 <유머1번지>, <웃으면 복이와요> 같이 스튜디오 사전 녹화를 통한 콩트 프로그램들이 현장감을 중시하는 공개 코미디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이, <개콘> 역시 어쩔 수 없는 세대교체의 시기에 직면한 것 뿐이다.

스타의 부재나 희극인들의 아이디어 고갈도 <개콘>의 부진에 일정 부분 책임은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국 공개코미디라는 포맷 자체의 수명이 방송가에서 한계에 직면했다고 보는 게 맞다. OTT 서비스의 등장과 모바일-유튜브 시대를 맞이하여 대중의 시청 방식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활성화로 공개 코미디만이 아니라 TV 본방 자체의 시청률이 과거보다 낮아졌다 .

또한 자연스러운 '일상의 리얼리티'에서 오는 공감대를 선호하는 시대에 미리 연출된 설정과 연기로 웃음을 이끌어내야 하는 콩트 코미디의 매력이 반감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젊은 세대가 인기 개그맨의 유행어를 따라하는 게 '인싸'의 필수 조건이었다면, 요즘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방송보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줄임말이나 은어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국내에서 코미디로 풀어낼 수 있는 소재가 지나치게 한정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겉보기에는 '표현의 자유'가 어느 때보다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희극인들의 입장에서는 과거보다도 다양한 코미디를 만들기가 더 어려워졌다.

오늘날 정치-시사풍자를 다루는 코미디는 거의 멸종 상태고, 인권감수성이나 젠더갈등이 민감한 사안으로 급부상하면서 과거에 비하여 외모비하-가학적인 설정-성적인 개그 등에 조심스러워진 분위기다. 여기에 <개콘>의 방송무대는 지상파이기에 표현 수위에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인 KBS는 일찌감치에 코미디 장르를 포기한 MBC나 SBS에 비하면 그나마 <개콘>을 오래 지탱해 온 편이다. 하지만 KBS도 최근 들어 <연예가중계>, <안녕하세요>, <해피투게더> 등 <개콘> 이상의 인기나 역사를 자랑했던 장수 예능 프로그램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며 변화의 칼을 꺼내들었다.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고 해서 <개콘>만 예외일 수는 없다. 수명이 다한 프로그램의 포맷을 바꿔 억지로 끌고 간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정말 아쉬운 것은, <개콘>이라는 프로그램 하나가 사라진다는 차원이 아니라 방송가에서의 '장르적 다양성 위축'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TV를 틀면 비슷비슷한 관찰 예능이나 똑같은 출연자들만 채널을 넘나들며 반복해서 등장한다.

전통적인 코미디를 보고 싶어 하는 소수 시청자들의 '니즈' 역시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개콘>처럼 능력 위주의 프로그램을 통한 '신인 발굴의 장'도 확대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개콘>의 폐지가 곧 지상파에서 '코미디 장르와 해당 인재풀의 전면 포기'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차라리 <해피투게더>처럼 폐지가 아닌 재정비와 새로운 시즌이라는 형식으로 재기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수명이 다한 것은 <개콘>이라는 프로그램의 포맷일뿐, 코미디 그 자체는 아니니 말이다. <개콘>의 존폐 여부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실로 다가온 포스트 <개콘> 시대를 맞이하여 전통 코미디 장르의 맥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현실적인 대안을 더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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