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의사생활> 포스터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의사생활> 포스터 ⓒ tvn

 
사는 건 아프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건강만 하면 좋으련만,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좋으련만 인생 길엔 누가 파놓은지 알 수 없는 함정이 기다린다. 낮은 구덩이라면 툭툭 털고 일어나겠지만, 깊은 구덩이에 빠져 어쩔 줄 모르다 보면 아예 일어서고 싶은 마음조차 내키지 않게 된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프다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수도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7회는 몸도 아픈데 마음은 더 아파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마음이 아파서 몸을 살피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은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들이다. 그들과 같은 아픔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가 이들의 아픔을 보듬는 장면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남편에게 간이식을 받았던 환자가 심각한 상태로 간담췌외과 이익준(조정석 분)을 다시 찾는다.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남편이 죄책감으로 자신에게 간을 이식해준 것이라며 환자는 치료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더 악화가 될 수도 있으니 치료에 전념하라는 익준의 말에도 환자는 남편이 준 간으로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강경하게 말한다.

뇌수술을 받아야 하는 신경외과 채송화(전미도 분)의 환자도 목전에 둔 자신의 수술에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경찰인 그는 자신이 더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다. 레지던트 안치홍(김준한 분)은 그런 그를 안타깝게 지켜본다.

남편이 준 상처와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좌절감은 이들로부터 건강을 회복할 의지를 앗아간다. 남편의 간을 품은 환자는 증오와 배신감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해독을 담당하는 장기인 간을 되살려준 사람이 되려 마음에 독을 퍼트린 것이다. 더이상 경찰을 할 수 없는 환자는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다. 불가능에 절망한 그는 가능한 다른 희망을 생각하지 못한다.

건너편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일으키다

깊은 슬픔에 빠진 이들을 달래는 것은 동일한 아픔을 가진 익준과 치홍이다. 익준은 환자의 입원실을 찾아 자신 역시 아내의 외도로 이혼을 했다고 고백하며 남편을 미워하기 보다는 환자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조언한다. 치홍은 환자에게 자신 역시 뜻밖에 발병한 질병으로 인해 군인을 그만두고 지금 의사를 하고 있으며 당신도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익준과 치홍은 그 누구보다도 두 환자의 아픔을 전적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과거 두 사람이 느꼈던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그들이 다른 환자들보다 더욱 안타까웠을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환자를 '또 다른 나'로 인식했을 것이다.

익준과 치홍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두 환자 역시 상처 입은 '또 다른 나'를 만났을 것이다. 밝기만 했던 익준의 상처와 군인이었다는 치홍의 나직한 이야기에는 환자 자신들이 담겨 있다. 이들은 건너편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보며 고통과 좌절로 인해 주저앉은 '나'를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향한 시선에는 진심을 다한 공감과 위로가 가득했을 것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7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7회 한 장면 ⓒ tvN

 
이들처럼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환자들이 있는 반면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 꾀병 환자도 존재한다. 불법을 저지른 산부인과의 양석형(김대명 분)의 아버지 양태양(남명렬 분)은 검·경찰의 소환을 대비해 VIP 병동에 입원한다. 분노한 석형의 엄마 조영혜(문희경 분)는 병실을 찾아와 상간녀 김태연(이소윤 분)에게 구정물을 끼얹고, '미쳤냐'고 소리치는 남편의 얼굴에 걸레를 내던진다.

영혜의 분노는 이들이 석형이 근무하는 병원을 찾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영혜에게 석형은 상처 받은 '또 다른 나'인 동시에 자신처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나'이기도 하다. 태양과 태연은 살펴야 할 것을 살피지 않는다. 이들은 영혜와 석형이 자신들을 지켜보는 것이 편치 않을 것이며, 나아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석형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의 행태는 이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때문에 영혜의 다소 과격한 응징은 비난을 부르기는 보다는 통쾌함을 자아낸다.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자신들로 인해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외면하는 두 사람에게 마땅한 처분이다. 영혜의 고통스런 시간을 떠올린다면 그녀의 행위를 품위 따위를 운운하며 재단질할 수만은 없다. 영혜의 지난 시간 역시 삶의 의지를 상실한 익준의 환자와 다르지 않았다.

뻔뻔한 두 사람의 행태는 나날이 내상을 더욱 깊게 했을 것이며, 남편을 향한 증오심은 그녀 자신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었다. 영혜가 불륜을 저지른 두 사람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키는 과정은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허용된 선에서 표출되는 영혜의 분노는 잊고 있던 자신의 삶을 되찾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잠시의 통쾌함이 한순간에 마음의 상처를 완치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되돌아선 영혜는 그들을 미워하는 시간 속에 방치되었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분노할 테지만 여전히 자신의 곁을 지키는 다른 존재들을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석형을 위해 움직이며 영혜의 치유는 시작되었다.

태양과 태연은 다시 율제종합병원에 모습을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임신한 상태인 태연과 산부인과의인 석형의 관계는 심상치 않을 이들의 미래를 예상하게 한다. 어떤 상황이든 석형은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이겠지만 앞으로 그가 얻을 성찰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미워하고 아파할수록 불행해지는 건 바로...

미워하고 아파할수록 불행해지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일 뿐이다. 익준의 환자처럼 이미 상처 받은 자신을 더욱 학대하고, 치홍의 환자처럼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고, 석형 엄마처럼 쓰나미와도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때 가장 힘든 건 자신이며 그러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고개를 든다면, 그 고개를 조금 돌린다면 아파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나'의 회복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보인다.

쉽지 않겠지만, 해야 하는 일이며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역시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나'와 비슷한 다른 이의 불행을 바라보며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힘을 얻으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 안도감이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이나, 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며 세상에는 고통과 슬픔 이면에 행복과 기쁨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7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7회 한 장면 ⓒ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7회는 성인의 간을 아동의 신체에 맞춰 이식하는 어려운 수술로 시작된다. 수술을 집도한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은 간절하게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환자의 부모들은 눈물을 흘리며 정원에게 거듭해 감사를 표현한다. 정원은 자신이 한 일은 수술 뿐이며, 실상 이들이 감사해야 할 대상은 간을 기증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원의 대답은 잊고 있던 존재를 일깨운다. 환자의 부모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시간, 다른 곳에는 슬픔의 눈물이 가득했을 것이다.

'나'가 있고 '너'가 있듯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심리적인 고통과 슬픔이 가져오는 커다란 불행 중 하나는 아픈 자신과 저 너머의 다른 것을 볼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타인은 새로운 눈이 되어준다. 건너편에 존재한 '또 다른 나'는 아픈 나를 직시토록 하며, 떠올리지 못했던 삶의 다양한 장면을 환기시킨다.

때로 우리는 잊지 말야 할 것을 잊고 놓치지 말야야 할 것을 놓치고 만다. 살다 보면 익준과 치홍의 환자들처럼 어떤 위로도 위안이 되지 않는 고통스런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아파하는 '나' 자신이 외면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프다. 그러니 그만 좀하라는 핀잔 섞인 타박이 결코 아니다. '나'는 아프기에 위로가 되는 존재이다. '나'를 외면하는 것은 곧 어딘가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외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상처 받은 '또 다른 나'가 건너편에 존재한다. 어쩌면 '너'는 아파하는 '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위안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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