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의 시간>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

영화 <사냥의 시간>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 ⓒ 넷플릭스

 
영화 감독에게 공백이란 충전의 시간 혹은 두려움의 시간이기 십상이다. 치열하게 전작을 마무리 하고 차기작을 위한 준비 시간이라면 전자에 가깝겠지만 공백이 길면 길어질수록 두려움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러다 영화를 못 찍는 거 아닌가." 

<파수꾼>(2010)으로 국내외 평단과 관객에게 호평받은 윤성현 감독은 그렇게 지난 10년을 회고했다. 너무나 긴 공백이다. 그렇기에 최근 넷플릭스로 공개한 <사냥의 시간>에 얽힌 그의 심경은 꽤 복잡했을 것이다. 극장 개봉을 앞두고 투자배급사가 넷플릭스 단독 공개로 방향을 급선회하면서 해외 판매 대행사와 갈등을 빚는 등 최근까지도 순탄치 않았다.

디스토피아에서 피어난 희망

10년 만에 세상에 신작을 내보이는 윤성현 감독은 내심 불안감부터 고백했다. 통일 한국을 배경으로 한 <본영>이라는 SF 영화를 준비하다 끝내 무산된 지난 10년, 그리고 <사냥의 시간> 개봉을 앞두고 법적 공방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그는 "불안감 속에서 지내왔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어렵게 선보인 <사냥의 시간>은 근미래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성장담이었다. SF적 요소, 액션 요소가 담겨 있는데 감독 스스로는 "SF 혹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서 시스템을 비판하는 이야긴 아니다"라고 부정했다. 되려 그는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왠지 윤성현 감독 스스로가 느낀 불안감과 묘하게 이어져 보인다.

"2016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사회를 지옥에 빗댄 말들이 많았다. 청춘들이 생존의 어려움을 쏟아냈다. 내 주변 동생들이 고군분투하는 걸 직접 보면서 사회성 드라마가 아닌 은유적인 장르 드라마를 해보고 싶었다. 감정적 지옥이랄까. 거창한 사회 메시지를 겉으로 표출하기 보다는 제가 그건 영향받고 좋아해왔던 영화적 방식 안에서 표현하려 했다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구조나 시스템을 거시적으로 비판하기보단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려 했다. 전에 준비하던 작품(<본영>)엔 거시적 시선이 담겨 있었지만, <사냥의 시간>은 감정적 지옥도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다. 정서적 공간 표현에서부터 시작한 영화라고 봐주시면 좋을 듯하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준석(이제훈),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이라는 세 친구를 중심으로 영화는 도박장을 터는 청춘들이 결국 수수께끼의 사냥꾼 한(박해수)에게 쫓기며 겪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상수(박정민)라는 또래 청년은 세 친구 주변을 멤돌며 의뭉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경제가 파탄나 화폐가치가 사라진 각자도생의 시기이기에 충분히 등장할 수 있는 캐릭터다.

이제훈과 박정민의 등장으로 많은 영화팬들은 <사냥의 시간>을 <파수꾼>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윤성현 감독은 "전혀 연결성을 생각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파수꾼>은 대사가 위주인 드라마고 등장인물의 감정과 이야기가 중심이다. 근데 <사냥의 시간>은 액션과 추격전, 어떤 공포감이 담긴 영화라 결이 많이 다르다. 비슷한 접근은 전혀 없었는데 같은 배우가 나오고, 화법 등에서 <파수꾼>이 연상될 순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이제훈, 박정민 배우는 <파수꾼> 때 행복하게 서로 신뢰하며 작업했다. 당연히 이후에도 같이 하고 싶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워낙 친한 친구들이라 다시 작품으로 만나고 싶었다. 최우식 배우는 8년 전부터 그의 단편 영화 등을 보며 지켜보던 이였다. 안재홍 배우도 <족구왕>과 연극 공연 등을 보며 함께하고 싶었다. 운 좋게 이들과 작품을 할 기회가 만들어진 것 같다." 

 
 영화 <사냥의 시간>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

영화 <사냥의 시간>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 ⓒ 넷플릭스

 
변화의 흐름

음악과 미술, 영상미 등의 영화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게 윤성현 감독의 설명이었다. DJ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프라이머리를 섭외한 이유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영화라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하던 차였다. 대사와 감정 표현 외에 영화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리고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이더라도 도전하고 싶었다. 한국영화에서 찾기 힘든 다른 영역을 만들고 싶었다. 사운드가 영화에서 되게 중요한데 이전까지 영화에서 쓰지 않던 요소였다. 프라이머리 역시 영화 음악 감독 경험이 없다. 제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면서 같이 공부해나갈 동료가 필요했기에 요청을 드렸던 거다. 

제 장점이라면 심리 묘사와 캐릭터 표현인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 구성 또한 제가 잘하는 것인데, 잘하지 못하는 영역에 도전해서 한국 영화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파수꾼>이 영향을 준 셈이다. 그것과 반대로 가고자 했으니까. 아마 차기적에선 다시 <파수꾼>처럼 이야기 중심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윤성현 감독은 <사냥의 시간>의 부족함을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최선을 다했음을 강조했다. "한국영화가 드라마 기반인 게 많고 거기에 강점이 있기도 한데 굳이 전 어려운 길을 택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아울러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불거진 해외 판매 대행사와 투자배급사 간 갈등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측은 상영금지가처분 상황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합의해 무사히 영화가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극장 개봉은 무산됐지만 넷플릭스로 190여 개국에서 공개된다는 사실에 "기쁘고 감사하다"면서도 "(갈등이 생긴 것에) 불안하고 안타까웠다"고 윤성현 감독은 말했다. 

"넷플릭스와 극장 영역이 변화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장 개봉을 못해) 아쉽다기보단 변화하는 상황에 극명하게 (넷플릭스 공개) 계기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관객을 만날 기대감이 더 크다. 하지만 사운드와 화면에 공들인 부분이 많기에 넷플릭스로 보실 때 사운드의 질감을 잘 느끼시도록 설정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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