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able of the Two Sons (2012) by A. N. Mironov.

The Parable of the Two Sons (2012) by A. N. Mironov. ⓒ CCASA4.0


늙은 아버지와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가업인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한다. 두 아들의 반응이 어째 심상치가 않다. 한 아들은 고개를 외면한 채 대놓고 거부 의사를 표한다. 다른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가겠다며 순종하는 듯하다. 그날 둘 중 하나만 아버지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다. 과연 어느 아들이었을까. 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숙인 아들이었을까. 놀랍게도 아버지의 명을 따른 아들은, 명을 거부했던 아들이었다.

그는 입으로는 아버지의 명에 "싫습니다. 안 갈 겁니다"라고 대답했지만, 곧 후회했고, 행동으로 아버지의 명을 따랐다. 다른 아들은 입으로는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행동으로 아버지의 명을 거부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1장 28절에 등장하는 예수의 '포도원의 두 아들' 비유이다. 예수는 청중에게 "어느 아들이 아비가 원하는 대로 행했느냐?"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왜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라고 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명을 거부한 아들에게 왜 화를 내지 않았는지, 거부한 아들은 왜 안 간다고 했으며, 어떤 부분을 후회했는지, 고개 숙인 아들은 왜 간다고 해 놓고 안 갔는지, 처음부터 안 갈 생각이었는지, 중간에 생각이 바뀐 것인지 수많은 의문점들을 품고서, 영국에서 날아온 따듯한 가족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의 세상으로 가 보자.
 
 아들일지도 모르는 신원불명 시신의 확인을 앞둔 알란의 마음이 초조하다

아들일지도 모르는 신원불명 시신의 확인을 앞둔 알란의 마음이 초조하다 ⓒ 배급사 찬란

 
1992년 5월 8일, 아버지의 시간은 멈췄다

18세인 큰아들 '마이클'이 보드게임을 하다가 화를 내고 집을 나가버렸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직이다. 그리고 오늘, 아버지는 아들일지도 모르는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안치소가 있는 바닷가 마을을 찾았다. 그는 물이 빠진 모래 위에 서서 수평선 끝을 응시하고 있다. 셀 수 없는 모래알로 가득찬 모래사장에서 그가 차지한 면적은 겨우 두 발만큼의 폭. 함께 가기로 한 또 다른 아들 피터를 기다리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쓰러지지 않는 것뿐이다.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을 연출한 칼 헌터 감독에겐 놀랍게도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스케일이 큰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신인이라기엔 작품 전체에 흐르는 감동 선의 조율이 무척이나 유려하다. 이는 연기파 배우 빌 나이의 공이 컸을 터, <러브 액추얼리>(2003)에서 미워할 수 없는 팝스타 빌리로 완벽 빙의, 전 세계에 얼굴을 알린 그는 이 영화에서는 언뜻 괴짜 같으면서도 깊은 공감력을 지닌, 재단사 '알란 멜러'라는 인물에 잘 녹아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어색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어색하기만 하다. ⓒ 배급사 찬란

 
엄마와 사별하고 형마저 가출한 후, 무뚝뚝한 아버지와 살며 홀로 성장해야 했던 둘째 아들 피터(샘 라일리). 불우한 유년기를 반영하듯 피터의 얼굴은 마치 아이의 얼굴에 콧수염을 부착한 것처럼 뭔가 어색하다. 실은 두 사람의 만남도 무척 오랜만이다. 형일 지도 모르는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낯선 동네에 도착했다. 담당자가 퇴근했으니 다음날 다시 오라는 말에 피터는 갖은 핑계를 대며 아버지와의 일박을 피하려 하지만 안 통한다. 아버지 알란(빌나이)은 이런 일에 대비해 숙소를 잡아두었고, 준비물을 다 마련해 두었던 것.

시간이 멈춘 듯한 허름한 숙소, 낡은 소품들. 로비에서 옛날 노래를 듣고 있던 노부부 아서(팀 맥네니)와 마가렛(제리 에구터)에게 갑작스레 단어 보드게임 '스크래블'을 제안하는 아버지. 뭔가 어색함을 견딜 수 없는 피터는 자리를 피한다. 알고 보니 알란과 노부부는 스크래블의 달인. 서로가 고수임을 느낀 알란과 아서는 게임의 긴장을 높이기 위해 돈을 걸고, 이기려고 하니 게임의 분위기는 금세 험해진다. 심란한 밤은 그렇게 지나간다.
 
 처음 만난 노부부에게 보드게임 '스크래블'을 제안하는 알란

처음 만난 노부부에게 보드게임 '스크래블'을 제안하는 알란 ⓒ 배급사 찬란

 
다음 날 아침, 검시소에서 네 사람은 다시 만나고 서로의 등장에 당황한다. 노부부 역시 가출한 아들이 있었던 것. 담당자는 노부부보다 알란에게 먼저 신원 확인을 요청한다.

'난 할 수 있어. 아버지니까'

덤덤하게 따라나서는 알란은 막상 안치실 문 앞에서 무너져내린다. 담당자의 도움으로 다시 들어가는 알란.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피터는 아버지가 보드게임으로 큰돈을 따려 했다며 비난하고, 노부부에게 아버지의 무례에 대해 대신 사과하고 돈을 돌려주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왔다.

"가자. 형 아니다."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

방에서 게임만 하는 사춘기 아들 잭(루이스 힐리), 사려 깊은 아내 수(앨리스 로위)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피터의 집에 불쑥 아버지가 찾아왔다. 곧 가실 줄 알았는데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안 가신다. 피터는 대놓고 눈치를 주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는다. 손자 잭의 침대를 차지하고, 잭의 게임에 훈수를 두며, 급기야는 잭의 컴퓨터를 차지한다.

할아버지는 잭의 세계에 들어가 인간관계에 대한 충고들, 다사다난했던 가족의 역사를 들려주고, 의복과 구두의 올바른 착장법을 알려주면서, 방구석이 전부였던 '잭'이 운신할 공간을 크게 넓혀준다. 사연 많은 '멜러' 가문의 일원이며, 멋진 할아버지의 손자이자, 부모님의 아들이고, 짝사랑하던 재클린의 남자친구가 되기까지 할아버지의 등장 이후 잭의 세계는 풍요로워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사라졌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낸 피터는 어릴적 했던 '스크래블'을 하자고 제안한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낸 피터는 어릴적 했던 '스크래블'을 하자고 제안한다. ⓒ 배급사 찬란

 
가족이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당장 찾으러 가야 한다는 잭에게 피터는 '할아버지는 어른이니 찾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가 수와 잭으로부터 비난을 당하고, 내키기 않지만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흔적을 추적한 끝에 어릴 적 휴가를 보낸 바닷가 마을에서 아버지의 밴을 발견한 피터. 밴의 문을 열자 그 안에는 피터가 짐작도 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내면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속에 들어선 피터는 이제 아버지의 큰 그림을 알아챘을까.

예수의 포도원 두 아들 비유로 돌아가 보자

아버지는 왜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라고 했을지 생각해보자. 포도원은 아버지의 기업이니, 곧 아들의 기업이 될 것이다. 가업이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보기에 두 아들은 포도원의 노예나 삯꾼이 아니므로 두 아들이 포도원을 자기 일처럼 돌보고 관여하기 바랄 것이다. 시켜서 가는 것은 일꾼의 태도이므로, 두 아들이 스스로 가기를 기다리다가 영 안 갈 것 같으니 가라고 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두 아들이 단지 게으르게 있는 것이 보기 싫어서 가라고 한 것일까. 아니다. 돌보는 자가 없으면 포도원의 포도는 살아남지 못한다. 적절한 물 대기, 가지치기, 일조량 조절, 해충 제거 등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돌보는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포도들을 외면하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아들들은 '일꾼들이 하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안 오면 그만'인 그들의 손길이 어디 주인만 하겠는가.

아버지의 명을 대놓고 거부한 아들은 자신의 항명이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마음을 상하게 했음을 후회하고 뒤늦게라도 갔을 것이다. 또는 자신이 아버지의 후계자라는 책임감 때문에 갔을 수도 있다. 가겠다고 해 놓고 안 간 아들은 아버지에게 명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게 중요하지, 포도원에 안가도 상관없다 생각했을 것이다.

비록 나중에라도 포도원에 간 아들은 명은 따랐지만, 심중에 포도에 대한 마음 씀이 없다면 그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세계를 소중히 여기는 아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돌려온 형의 실종 전단지

아버지가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돌려온 형의 실종 전단지 ⓒ 배급사 찬란

 

"이 실종의 미스터리를 끝내 풀지 못하고 죽을까 봐 두려워."

피터는 그동안 형이 어른이 다 되어 가출한 것이니 알아서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형 실종의 미스터리는 아무도 모른다. 추정할 뿐이다. 피터는 사춘기 아들이 방에서 안 나오는 것은 스트레스 때문이지 별거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란은 손자의 세계에 들어가 많은 것들을 돕고 그를 방 밖으로 이끌어 낸다. 아마도 마이클을 찾느라 작은 아들 피터에게 신경쓰지 못했던 미안함을 손자에게 대신 갚아주려는 것이리라. 그리고 가족은 사라지면 찾아야 함을 손자에게 가르쳐 줬을 것이다.

알란은 피터가 자신을 찾으러 왔고 밴에 이미 다녀온 것을 알고 나서부터 피터에게 조금씩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마이클을 끝내 못 찾을까 봐 두려워.' '마이클이 왜 가출했는지 그 이유를 모른 채 내가 죽게 될까 봐 두려워.' 그리고 알란이 피터에게 끝내 하지 못한 말은 이것이 아닐까. '내가 죽고 나서, 네가 형을 찾지 않을까 봐 두려워.'

피터가 아버지의 세계에 찾아간 후 가족의 풍경은 달라졌다. 아버지는 이제 피터를 바라보고, 피터의 가족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비어 있는 의자가 그들과 항상 함께 한다. 부재로 존재하는 마이클과 함께 말이다. 그러니 아버지는 이제 미래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가 끝내 말하지 못한 바램을 피터와 수와 잭이 잘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출판 참서림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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