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경제위기 여파로 엉망이 된 대한민국. 감옥에서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근근이 살아가던 가족 같은 친구들,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에게 인생을 바꿀 제안을 한다. 바로 불법으로 운영되는 도박장을 털자는 것. 도박장에서 일하는 다른 친구 상수(박정민)가 계획에 합류하고, 4명의 친구들은 우여곡절 끝에 위험천만했던 계획을 이루어낸다. 그러나 돈과 함께 한국을 뜨려던 그들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박해수)이 나타나고, 그들은 사냥꾼과 사냥감이 되어 끝나지 않는 추격전을 펼친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극장 개봉을 취소했던 영화 <사냥의 시간>은 여러 난관을 뚫고 마침내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상영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데다 넷플릭스 공개에도 잡음이 생기면서, 이 작품은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큰 기대 속에 만난 <사냥의 시간>은 단점들이 분명하지만, 이른바 '헬조선'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개인의 심리,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차별화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영화였다.

기본적으로 <사냥의 시간>은 장점이 유독 도드라지는 흥미로운 영화다. 특히 영화의 중심에 위치한 준석과 한의 관계는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호텔 지하주차장에서 준석과 친구들을 잡은 한은 돌연 준석을 놔주고 다시 쫓기를 반복한다. 이때 한은 병원과 폐 아파트 단지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절대 놓치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무서운 집념을 보여준다.

절대 떨어뜨릴 수 없고,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언제나 다시 나타나는 한은 두 가지 의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준석의 후회와 죄책감이다. 그는 하지 않으려는 친구들을 꼬셔서 도박방을 무장 침입하고, 그 대가로 친구들과 함께 하던 일상의 삶, 평화, 소소한 행복을 잃고 그들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의 발단이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준석은 어깨를 짓누르는 회한과 두려움, 자책감을 결코 떨쳐버리지 못한다. 호텔과 병원에서럼 장소가 바뀌거나 상황이 전환될 때마다 준석이 꾸는 악몽이 삽입되고, 그 직후에 한이 들이닥치는 전개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다른 하나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다. 영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가 파탄난 대한민국을 그린다. 한화 대신 달러가 통용되고, 총기 없이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IMF 구제 금융도 받지 못한 한국은 문자 그대로 지옥, 헬조선이나 다름없다. 이 지옥에서 준석은 해결책으로 탈출을 제시한다.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으로 도망가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때문에 끝내 한국을 떠나지 못한다. 이때 한이라는 이름을 '한(韓)국'으로 해석한다면 준석과 한의 관계는 달리 보일 수도 있다. 한국의 사회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책임을 다한다면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 엔딩에서 준석의 결정은 결자해지를 위한 마무리로 읽히기도 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준석과 한의 관계는 영화에서 강렬한 긴장감과 깊은 감정선을 형성한다. 이때 조명은 결정적인 몫을 해낸다. 강렬한 색감이 두드러지는 조명은 이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알 수 있는 차별점 중 하나다. 특히 붉은 조명과 파란 조명은 강렬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연출은 주인공인 준석과 악역인 한의 내면을 외면화하며 직관적으로 제시해준다. 모든 색은 고유의 감정적인 센스를 지니고 있으며, 붉은색과 파란색처럼 보색 관계인 경우에는 반대되는 색의 성질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며 더욱 자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명의 효과가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호텔 바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시퀀스다. 호텔 바는 전체적으로 흥분, 떨림, 긴장감을 외면화하는 붉은 조명에 물들어 있는데, 이는 핸드폰을 통해 준석의 긴장감과 공포감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해당 시퀀스의 전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반대로 지하 주차장은 푸른 조명이 명암이 분명한 로우 키 조명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한이라는 인물의 냉혹하고 무자비한 속성을 압도적인 공포감과 함께 전해주는 기능을 한다. 또한 보색 관계의 조명은 준석이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새빨간 항만에서 장호를 잃는 준석과 포기를 모르는 한에 대적하기 위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돌아오는 준석의 모습은 각각 흥분과 자책감, 결연함과 차분함이라는 정서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면서 캐릭터의 성장을 묘사한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적지 않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사냥의 시간>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 영화이기도 하다.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이 캐릭터 활용과 구축이다. 박정민 배우가 연기한 상수의 경우 전형적으로 배우가 아까운 캐릭터로 보였다. 그는 도박장을 강탈하기 위한 계획을 위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가 계획이 성공하자 다시 사라진다. 짧은 시간 속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소외되어 있는, 동등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인물의 서글픔과 질투심 등을 잘 보여준다. 극에 깊이를 더했지만 반면 서사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캐릭터의 매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 이처럼 캐릭터를 온전히 구축하지 못한 것은 작중 네 주인공 사이의 우정이 얼마나 깊고,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지 못한 스토리의 한계로 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영화는 좋은 설정을 미처 다 살리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아쉬운 짜임새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준석과 친구들에게 습격당한 도박장은 빼앗긴 돈보다도 고객들의 자료가 들어있는 하드디스크의 분실을 더욱 걱정하며 한에게 임무를 맡긴다. 그러나 작품의 반전을 담당할 결정적인 소품처럼 보이는 하드디스크는 정작 영화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총포 밀매상인 봉식(조성하)은 숨겨진 뒷이야기를 지닌 듯 보였지만, 영화는 마치 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모든 내용을 러닝타임 안에 풀어내는 데 실패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유독 인물들의 최후를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경우가 잦다.

한편 <사냥의 시간>은 스타일적으로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다. 사실 과거가 아닌 미래의 시간대를 다루는 영화는 한국 상업 영화들 중 결코 많지 않다. 그렇기에 달러가 통용되는 편의점을 비롯한 각종 상점들, 디트로이트를 연상시키는 그라피티를 비롯해 엉망이 된 도시 경관, 거리를 울리는 다양한 총기 등은 익숙한 배우들과 어우러지면서 팍팍한 현실을 과장된 미래에 투영한 디스토피아적 공간에 이색적인 묘미를 불어넣는다. 다만 그 경광이 한국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과 낯설음이 느껴지는 것이 약간의 흠이다.

이처럼 디스토피아라는 시공간적 배경, 극단적인 조명과 스타일 등에서 볼 수 있듯 <사냥의 시간>은 결코 익숙한 화법을 구사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에 더해 스토리를 전개하고 캐릭터를 구축할 때 보이는 단점들은 분명 실망스럽다. 그러나 <사냥의 시간>을 단순한 킬링 타임 액션 영화로 평가하는 것 역시 결코 합리적인 처사는 아니다. 이질적이고 낯선 배경과 환경이 영화의 메시지를 어떻게 구축하고 전달하는 지를 보는 묘미가 단점들을 충분히 상쇄시키는 영화가 바로 <사냥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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