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웰터급은 대대로 '지옥의 체급'으로 불린다. 쟁쟁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강자들이 경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지루한 체급'으로 평가절하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타격가, 그래플러가 골고루 섞여 팽팽하게 겨루는 타 체급과 달리 유달리 그래플러 성향의 선수들이 득세했던 것이 그 이유다.

물론 그래플러라고 다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전 헤비급 챔피언 케인 벨라스케즈처럼 공격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넉아웃 시키려 노력하는 터프가이형 그래플러는 타격가 이상의 재미를 안겨준다. 현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또한 쉴 사이 없이 상대를 몰아붙이고 포지션을 장악하는 압박형 그래플링을 펼치는지라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웰터급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간 기중기' 맷 휴즈(46·미국)는 완력을 앞세운 파워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체급 인기 상승에 한몫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이내믹한 싱글 레그-투레그 태클에 상대를 번쩍 들어 올려 옥타곤 바닥에 메다꽂듯 들어가는 슬램 공격까지, 그래플링 기술하나마다 남다른 파워가 넘쳐났다. 슬램 공격 같은 경우 전직인 농부와 어우러져 국내 팬들 사이에서 '쌀배달'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웰터급이 본격적으로 지루해(?)지기 시작한 것은 '수면제' 조르주 생 피에르(38·캐나다)가 장기 챔피언으로 롱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압도적 승률을 기록하며 파이터로서 업적은 착실하게 쌓아갔던 그이지만, 마치 재방송 필름을 반복해서 틀어놓은 것 같은 파이팅 스타일은 보는 이들에게 극도의 지루함을 안겨줬다.

조시 코스첵, 존 피치 등 그에게 도전했던 상대의 상당수 역시 그래플러 계열이 많아 웰터급의 지루함을 극대화시켰다. 존재감이 크지 않아 지분은 높지 않지만 '코리안 매미' 김동현 또한 포지션 장악형 그래플러로 꾸준히 활동하며 힘(?)을 보탰다. 경쟁은 치열했으나 재미의 발화점이 매우 낮았다. 
 
 UFC 웰터급에 '수면제 시대'를 열어제친 조르주 생 피에르

UFC 웰터급에 '수면제 시대'를 열어제친 조르주 생 피에르 ⓒ UFC

 
지옥의 체급에 '지루함 저주' 내린 생 피에르
 
26승 2패의 통산 전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 피에르는 MMA 파이터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전성기를 달리던 휴즈에게 당했던 서브미션패, 방심으로 인해 맷 세라에게 허용한 불의의 넉 아웃 패배를 제외하고는 크고 작은 매치업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비제이 펜과의 1차전, 조니 헨드릭스와의 타이틀전 등 편파논란이 불거진 경기도 있지만 어쨌거나 공식적인 승자는 생 피에르였다.

"전날밤 숙면을 취해도 그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스르륵 잠이 들고 만다"는 우스갯소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 피에르의 스타일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잘생긴 백인 영웅 이미지로 인해 미국과 자국 캐나다 시장에서의 상품성은 높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엇갈린다.

그의 경기가 기술적 전략적으로 수준이 높다는 데는 동의해야겠지만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레전드급 파이터들에 대해 존중의 뜻을 자주 비치는 전 UFC 여성부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조차 "비즈니스맨과 운동선수의 관점에서는 존경할 만하지만 보고 싶은 경기를 하는 파이터는 아니다. 그는 상대를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단순히 경기를 이기려고 싸우는 거 같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물론 격투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다. 경기에 출전하는 각각의 파이터는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패를 꺼내들어 상대를 제압하는 데 모든 힘을 쏟는 것이 맞다. 생 피에르가 아쉬운 이유는 지나친 안전제일주의에 치중한 나머지 다른 패가 얼마든지 있는데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생 피에르는 오랜시간 동안 극진가라데를 수련한 것을 비롯 복싱, 킥복싱 등 다양한 타격 베이스를 갈고닦으며 자신에게 장착시켰다. 워낙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좋은지라 스트라이커 스타일로 가도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선수다. 본인도 가라데를 수련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옥타곤에 입장시 도복을 입고 등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지루한 그래플러일뿐이다. 세라와의 1차전 이후의 그는 승리와 화끈함이라는 두가지 토끼를 포기했다. 보는 이들이야 어쨌든 철저히 이겨서 전적을 관리하는 쪽으로 색깔을 굳혔다.

생 피에르는 스탠딩에서 경기 내내 끊임없이 잽 등 잔타격을 시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수는 생 피에르 쪽으로 쏠린다. 생 피에르의 타격은 상대에게 충격을 가하기보다 포인트를 따기 위한 성격이 짙다. 때린 횟수에 비해 상대가 받는 데미지는 크지 않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생피에르는 상대의 공격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생 피에르의 디펜스가 좋기도 하지만 무리하게 크게 휘두르지 않아 반격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생 피에르의 타격은 방어까지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다.

이러한 양상이 지속되면 상대는 조급해진다. 데미지는 크지 않지만 점수에서 밀려 판정까지 끌려가면 답이 없다. 결국, 무리하게 들어올 때 생 피에르는 그 빈틈을 노려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킨다.

생 피에르의 지루한 플레이는 그래플링 싸움으로 가게 되면 더욱 심해진다. 적극적으로 마무리를 노리는 다른 강자들과 달리 상대를 눌러놓고 자신이 유리한 포지션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생 피에르의 대부분 경기가 판정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이러한 플레이로 인해 생 피에르의 전적은 더욱 탄탄해졌지만 지켜보는 팬들에게는 '웰터급은 지루하다'는 인식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이지리안 악몽' 카마루 우스만(사진 왼쪽)과 '선택받은 자' 타이론 우들리

'나이지리안 악몽' 카마루 우스만(사진 왼쪽)과 '선택받은 자' 타이론 우들리 ⓒ UFC

 
우들리-우스만, 지루함의 역사는 계속 된다
 
웰터급에도 잠깐 화끈한 열풍이 불었던 시절이 있다. 터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로비 라울러가 벨트를 두르고 있던 때다. 난타전을 피하지 않는 라울러는 누구와 붙어도 맹렬하게 압박을 펼치며 명 경기를 만들어냈다. 라울러가 치러냈던 카를로스 콘딧, 로리 맥도날드와의 혈전은 지금까지도 웰터급 최고 명경기로 꼽히고 있다.

그것도 잠시, 안타깝게도 웰터급은 또 다시 지루한 챔피언이 지배하고 있다. '검은 돌풍'의 주역으로 활약 중인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 타이론 우들리(37·미국), '나이지리안 악몽' 카마루 우스만(32·나이지리아)이 바로 그들이다.

무시무시한 한 방을 터뜨리며 라울러를 잠재우고 새로운 챔피언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우들 리가 재미없는 챔피언이 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파괴력 있는 한 방을 갖춰 많은 넉아웃 경기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웰터급에 괴수가 등장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현실은 달랐다. 우들리는 스티븐 톰슨과의 2연전, 데미안 마이어전을 통해 생 피에르에 버금가는 수면제 파이터로서의 잠재력을 드러냈다. 한없이 기다리는 플레이도 서슴치 않는지라 관중들의 야유도 적지 않게 받는 편이지만 그 정도 쯤에는 끄덕없는 멘탈(?)을 장착하고 있다.

우들리는 타격가, 그래플러 모두에게 굉장히 까다로운 유형의 파이터로 꼽힌다. 흑인 특유의 탄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순간적 폭발력이 강한데다 테이크다운 방어 역시 매우 좋기 때문이다. 타격으로 들어가자니 삽시간에 터져 나오는 한 방이 부담스럽고 어렵사리 그립을 잡아 넘기려 해도 대부분 힘으로 버티거나 뿌리친다.

이렇듯 매력적 요소를 갖추고 있음에도 우들리의 경기가 지루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특유의 소극적 플레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보통 우들리 같이 무시무시한 파워를 갖춘 선수들은 전진 압박을 즐긴다. 한방의 존재만으로도 상대를 긴장케하고 움직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들리는 다르다. 적극적으로 압박하기보다는 상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반격 형태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스스로 케이지를 등진 채 한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

우들리의 파괴력은 동급 최고 수준이다. 상대 입장에서는 우들리의 한 방에 두려움을 느끼고 적극적 공세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들리도 끈질기게 기다린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당연히 지루한 경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장기집권이 예상되던 우들리를 누르고 왕좌를 빼앗은 우스만 역시 지루함의 내공에 있어서는 만만치 않다. 그나마 우들리는 간간이 한방이라도 보여줬지만 우스만은 압박형 그래플링 일변도를 앞세워 만랩의 지루함을 과시하고 있다. 스탠딩에서도 간간히 묵직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테크닉보다는 맷집과 파워로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우스만은 격투 팬들이 흔히 얘기하는 '인자강(인간 자체가 강하다)' 유형의 파이터다. 워낙 완력 자체가 강한지라 스탠딩, 그라운드를 가리지 않고 상대를 압박하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특히 근거리에서 상대를 힘으로 뽑아들어 눌러놓는 플레이는 알면서도 막아내기 힘들다.

하지만 넉아웃, 서브미션을 적극적으로 노리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경기 양상은 흥미로움과 관계가 멀다. 닉네임 '악몽'을 상대선수에게만 선사하는 것이 아닌 지켜보는 팬들에게까지 강제로 권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웰터급은 우스만이 정상권을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전 챔피언 우들리와 백인 그래플러 '혼돈(Chaos)' 콜비 코빙턴(32·미국)이 호시탐탐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록키(Rocky)' 리온 에드워즈(28·영국)와 'BMF 챔피언' 호르헤 마스비달(37·미국)은 다크호스로 분류된다. 아쉽게도 마스비달 정도를 제외하고는 화끈함과는 거리가 먼 선수 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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