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시간은 마치 강물처럼 흘러간다고 인식된다. 우리는 이 시간을 간편하게 과거·현재·미래로 구분한다. 이 구분대로라면 엄밀히 말해 현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언급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그 폭이 확장되기 마련이다. '어제'는 어떤 맥락으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과거가 되기도 하지만, 현재에 포함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현재는 '최근'이나 '근래'라는 말로 일정 시간을 지칭하며, 과거는 흘러간 시간으로 미래는 도래할 시간으로 인식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6회는 누군가의 현재가 뚝 떼어낸 한때가 아닌, 편의상 구분한 시간들의 통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석형의 조언에 웃는 산모

삶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과거는 쓰디쓴 독이 되기도 하고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낭만이 되기도 한다. '습관성 유산'을 하고 눈물 짓는 산모를 대하는 산부인과의 양석형(김대명 분)의 태도는 오랜 시간동안 고통의 굴레가 될 수도 있을 사건을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유산은 산모가 결코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임신을 원했던 산모의 반복 유산이라면 자책을 동반한 강렬한 슬픔이 동반될 것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니 몸을 추스리고 좀더 건강에 신경을 쓰라는 석형의 조언은 얼핏 차갑게 들린다.

그러나, 석형의 조언으로 산모가 눈물을 닦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말이 사실이지만, 무심히 내뱉은 흔한 일에 대한 적당한 견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석형의 말은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죽음과 모성이 뒤섞인 슬픔에 더해질 자책으로 산모가 받을 과도한 고통을 헤아리는 진심 어린 당부이다. 석형은 이미 지난 일이 긴 시간을 두고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 석형의 조언은 남편의 외도로 괴로운 자신의 어머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어떤 사연들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현재에 머물며 영향을 끼친다. 지난날의 아련했던 감정을 되살리는 '옛날 노래'처럼 당시와 달리 낭만적으로 추억되는 과거도 있지만 고통으로 각인된 정서는 여전히 현재에 생생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각인의 순간, 달리 볼 여지도 있음을 기억한다면 고통이 조금은 덜어질 수도 있을 터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6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6회 한 장면 ⓒ tvN

 
송화에게 끝내 고백하지 못한 익준 

미처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지난 날의 해묵은 감정 역시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다. 간담췌외과 이익준(조정석 분)은 전 연인 고아라(고아라 분)와 재회한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그녀는 익준에게 여전히 호감을 표시한다.

과거 익준은 신경외과의 채송화(전미도 분)를 좋아했지만 그녀를 좋아하는 석형의 마음을 알고는 고백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먼저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다는 익준의 과거는 그의 마음이 여전히 송화에게 있음을, 자신의 고백으로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음을, 꼬인 애정의 관계로 밴드 5인방의 우정을 망치고 싶어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촬영장을 방문해 달라는 아라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새벽녘에야 수술을 마친 익준이 향한 곳은 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던 송화가 있는 곳이다. 유방암을 걱정하던 송화의 검사 결과를 듣는 자리에 익준은 함께한다. 할아버지의 수술을 걱정하며 할머니가 커피를 건네던 것처럼 익준 역시 병원의 관계자들에 커피를 건넨다. 주지 말아야 할 선물임을 잘 알면서도 익준은 그리한다. 그의 마음은 할머니의 마음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이다.

송화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익준의 생일선물처럼 두 사람의 마음은 표현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 감정을 완전히 과거의 것이라 치부하며 부인하기란 불가능할 터였다. 타이밍을 잘 맞춘 '나도 널 좋아했었어'란 한 마디의 고백은 묵힌 감정을 둘러싼 견고한 둑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그 감정의 확인이 어떤 방향으로 두 사람을 이끌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현재의 선택에 지난 과거의 일이 영향을 미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신경외과 레지던트 안치홍(김준한 분)의 대사로 익준의 동생 익순(곽선영 분)에게 모종의 상처가 있음이 암시된다. 오빠 익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내색하지 않았던 그녀는 고민 끝에 흉부외과의 김준완(정경호 분)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익순이 망설인 시간 속에서 지난 일과 다가올 일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익순은 지난 경험이 만들어냈을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선택했다. 새로운 시작을 선택했더라도 그녀를 채운 과거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시간은 언제든 현재에 다시금 등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6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6회 한 장면 ⓒ tvN

 
현재는 과거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

'청춘은 갔다'지만 주종수(김갑수 분)와 정로사(김해숙 분)는 여전히 소꿉동무이다. 세월이 데려온 노화가 이들의 관계에 축적된 시간들까지 늙게 하지는 못한다. 아버지가 농사를 짓지만 장윤복(조이현 분)과 장홍도(배현성 분)는 의과대학 연습생으로 율제종합병원에 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의사가 되려는 이유는 중학교 시절 엄마의 죽음과 관계가 깊다. 가족과 통화하는 준완과 송화의 모습은 그들의 지금이 긴 시간 관계 맺어온 가족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어찌 보면 현재는 과거의 총합이다.

<슬기로운 생활> 6회의 프롤로그는 1년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후배들의 물음에 대답하는 익준과 송화를 비춘다. 익준은 아이가 없다는 전제 하에 매일 밤을 나이트클럽에서 춤추겠다고 말한다. 송화는 작은 병원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한다. 아이와 바쁜 일정으로 '나이트 죽돌이'를 할 수 없는 익준이며, 자신이 유방암일 경우 병원의 이목을 끄는 것이 부담스러워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송화이다.

익준과 송화의 대답은 현재의 결핍을 잘 드러낸다. 취향이 너무나 달라 웃음이 나오는 이들의 희망사항은 현재의 생활에서는 이루기가 힘든 것들이다. 이 바람들은 현재에 대한 불만족을 강하게 표출하기 보다는 어떠한 현재도 완전하게 만족스러울 수 없음을 기억케 한다.

이들이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맞이한 또다른 현재에서 만족할 순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도래하지 않는 미래는 현재의 결핍을 반영하며 만들어질 또다른 현재이다.

그러나, 그 결핍이 덜 만족스럽더라도 웃고 지나가면 그만인 농담으로 끝날 희망사항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고통을 수반한다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지금 변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도 동일한 삶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6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6회 한 장면 ⓒ tvN

 
<슬기로운 생활> 6회는 과거와 미래가 결국 현재의 다른 이름임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역설적으로 보다 지금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삶의 어떤 순간은 오직 그때뿐이지만, 삶의 장면들은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지나온 과거의 행복과 고통들은 현재로 되돌아온다. 때문에 크고 작은 인생의 문제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회피했다면, 결국 과거는 현재를 지배하게 된다. 지나친 욕심을 지양하고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겸허히 수용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과거에 붙들린 현재가 미래에도 영향을 끼칠 것은 자명하다.

과거는 현재를 이루며 현재는 과거로 돌아간다. 미래는 지금을 비추는 반사경이며 현재는 미래가 된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와 교통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에 집중해야 할 강력한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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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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