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시네마'는 영화평론가이자 인문학자인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이 영화에서 드러난 '테크'의 동향과 의미, 문명사적 향배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속의 '테크'와 영화를 만드는 데 동원된 '테크'를 함께 조명하여 영화와 '테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합니다.[편집자말]
 영화 <추격자> 스틸 컷

영화 <추격자> 스틸 컷 ⓒ (주)쇼박스

 
"야 4885…너지?"

2008년에 개봉된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이다. 이 영화는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유영철(柳永哲)의 살인행각과 체포과정을 극화한 작품이다.

출장안마소(보도방)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는 자신이 관리하는 여자들이 최근 잇달아 사라지는 일이 생기자 신경이 곤두선다. 중호는 조금 전 나간 미진을 불러낸 손님의 전화번호와 사라진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일치함을 알아낸다. 미진마저 연락이 두절되자 그를 찾으러 나섰다가, 유영철의 극중 이름인 '지영민'(하정우)과 맞닥뜨려 영민이 미진 등을 불러낸 범인임을 직감한 중호가 던진 대사가 맨 앞에 소개한 것이다. 그러고는 중호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자 영민의 바지 속에서 벨이 울린다.

"야 4885…너지?"에서 관객은 4885가 전화번호임을 곧 바로 알아챈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왜 하냐고? 사실은 이러한 직관적 소통이 너무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100년 전 사람이 이 대사를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100년 후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요즘 사람의 소지목록 1위인 핸드폰이 인간생활에 들어 온 지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1978년 미국 시카고에서 AMPS(Advanced Mobile Phone Service), 미국 워싱턴D.C에서 ARTS(American Radio Telephone Service) 등 아날로그 방식의 셀룰러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험 운용된 후 셀룰러 방식 이동전화가 1979년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였다. 미국에서는 1983년에 상용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국내에는 1984년에 AMPS 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가 도입된다. 이해에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설립되었다.

제1세대 이동통신이라고도 하는 셀룰러 이동전화는 한 마디로 아날로그 이동통신이다. 간단히 말해 사람의 음성을 전기적으로 이동하여 듣는 사람 귀에다 복원하는 기술이다. 지금에서야 원시적인 기술로 취급받지만 아날로그 이동전화가 나오기까지 인류는 엄청난 지식과 기술의 기반인프라를 구축하여야 했다. 1990년대에는 곧바로 디지털 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가 출현한다. 음성을 0과 1의 두 숫자로 이해하고 기록하여 전달하여 복원하는 방식이다. 디지털의 등장과 함께 이동전화는 진화의 도정에 올려 진다.

특정한 아날로그 신호에 적용된 통신방식이 아니라 0과 1로 기록해서 전달하게 됨에 따라 말 그대로 모든 정보의 이동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추격자>의 대사는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은 지금에도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 출장안마가 매매춘과 관련되어 음성적인 업종이기 때문에 지금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식으로 '예약'을 접수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내 페이스북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부적절한 초대를 보면 전화번호를 적은 예는 없는 듯하다.
 
 영화 <서치 아웃>의 한 장면.

영화 <서치 아웃>의 한 장면. ⓒ ㈜스톰픽쳐스코리아


<추격자>의 '4885' 일화는 당시 실제 상황을 고려하여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사람들은 4885가 유영철 핸드폰의 뒷자리 4개 숫자라고 짐작하겠지만, 이 숫자는 유영철과 아무련 관련이 없다. 나홍진 감독이 옛날에 살던 집의 전화번호였다고 한다.

실제번호는 4885가 아니라 '5843'이었다. 경찰이 밝힌 당시 유영철의 검거 경위를 보자. 경찰은 2004년 7월14일 밤 9시쯤 "출장마사지사 임모양(당시 29세)이 이틀 전인 7월12일 밤에 011-XXXX-5843번 휴대전화를 쓰는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일을 나간 뒤 사라져 이틀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제보를 처음 접하고, 다음날인 15일 새벽 4시30분쯤 '5843'이 다시 뜨자 제보자들과 함께 15일 새벽 5시20분쯤 유영철을 검거했다.

김윤석이 하정우에게 "야 4885"라고 부른 일은 없었고, 대신 "야 5843"이라고 불렀느냐 하면 그것이 사실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만일 현장에서 "야 5843…너지?"라고 물었다고 하여도 유영철이 즉각적으로 그게 자신이 소유한 휴대폰의 뒤 4자리임을 지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011-XXXX-5843번 휴대전화는 유영철의 것이 아니고 유영철이 살해한 여성이 쓰던 것이었기에 번호를 외우고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유영철이 소유한 자신 명의 휴대폰은 뒷자리가 '1818'이었다. "야 1818…너지?"라고 물었어야 유영철이 자기 핸드폰을 말한 줄 알았을 터이나, 모두 나중에 밝혀진 일이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유영철은 이메일을 포함해 써야 할 번호가 있으면 모두 1818을 썼다.

유영철이 검거를 피하기 위해 타인의 휴대폰을 쓰는 나름의 보호책을 세우긴 했지만 지금의 기준으론 너무 허술하다. 몸에 휴대하는 이동전화의 특성상 결국 휴대폰이 검거의 핵심단서가 되었다.

유영철이 2020년에 범행을 저지른다면 GPS 추적 등의 개념을 숙지하고 있을 것이기에 다른 방식의 범행을 계획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범행은 범인과 피해자의 연결 또는 접점을 전제하기에 완전범죄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SNS에 기반한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영화 <서치아웃>은 전화번호 대신 IP주소를 추적한다. IP주소는 끝자리가 네 자리가 아닐뿐더러 그 IP주소에 머물렀던 당사자도 굳이 알려고 들지 않으면 숫자를 알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https://blog.naver.com/ahna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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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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