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한때 우스갯소리로 '선동열 방어율급'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현역시절 국보급 투수로 불렸던 선동열 감독은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0점대 평균 자책점을 3번이나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이를 패러디하여 수치가 낮을수록 뛰어난 활약을 펼쳤음을 의미하는 야구 자책점과는 정반대로, 방송 시청률처럼 되도록 수치가 높게 나와야 하는 지표에서도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을 경우 '선동열 방어율 찍었다'는 식으로 조롱하는 의미다.

이 선동열 방어율급 시청률이 종편이나 케이블 채널이 아닌 지상파 방송에서 현실화했다. 지난 17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KBS 수목드라마 <어서와>15회(1부)는 0.9%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간 광고타임 이후 방송된 16회(2부) 시청률(1.1%)을 합쳐도 평균으로는 1%에 불과하다. 13·14회(1.8%·1.8%)보다 떨어진 수치로 자체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어서와' 힐링주는 셀피 배우 김명수, 신예은, 서지훈, 윤예주, 강훈이 25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KBS 새 수목드라마 <어서와>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셀피를 찍고 있다. <어서와>는 남자로 변하는 고양이와 강아지 같은 여자의 미묘한 반려 로맨스 드라마다. 매주 수목 10시 방송.

▲ '어서와' 힐링주는 셀피 배우 김명수, 신예은, 서지훈, 윤예주, 강훈이 25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KBS 새 수목드라마 <어서와>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셀피를 찍고 있다. <어서와>는 남자로 변하는 고양이와 강아지 같은 여자의 미묘한 반려 로맨스 드라마다. 매주 수목 10시 방송. ⓒ KBS

 
<어서와>는 인간 남자로 변신하는 고양이 홍조(김명수)와 강아지 같은 인간 여자 솔아(신예은)의  '반려 로맨스'를 표방한 다룬 판타지 로코물이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했으며 제작진과 출연진은 힐링이 있는 로맨스를 드라마의 매력으로 강조한 바 있다.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처참했다. 역대 지상파 평일 미니시리즈 드라마 중 0%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어서와>가 최초다. 종전 지상파 드라마 최저시청률 기록은 박시후·송지효 주연의 <러블리 호러블리>(2018·1.0%)와 김재중·유이 주연의 <맨홀>(2017·1.4%)이었다. 공교롭게도 최저시청률 1위에서 3위가 모두 KBS에서 방송된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미니시리즈를 넘어 역대 지상파 드라마 최저시청률은 2018~2019년 방영된 MBC  <대장금이 보고 있다>로 당시 13회와 16회가 각각 0.7%(최고시청률 1.8%)를 기록했다. 다만 <대장금이 보고있다>는 목요일 주 1회 심야시간(11시)대에 방송된 작품이었고 장르도 예능 드라마(시트콤)였다. 평일 밤 10시 드라마 주력 시간대에 지상파에서 방송된 드라마 1%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어서와>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잘못된 편성, 실패한 각색, 매력 포인트의 부재다. 최근 국내 드라마에서도 타임슬립, 엑소시즘, SF 등에 이르기까지 '판타지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확실한 볼거리와 개연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외면당하기 일쑤다. <어서와>의 사람으로 변하는 고양이 설정은 신선하기는 했지만 지상파에 방송되는 정극보다는 '웹드라마'나 '숏폼' 형식에 더 어울리는 소재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원작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연출이나 각색으로 원작 팬과 드라마 팬들에게 이중으로 비판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서와> 역시 원작이 품은 판타지적인 요소와 시각적인 매력을 영상으로 설득력 있게 구현하는 데 실패했다. 젊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흡인력도 많이 부족하다. 소재 자체가 10, 20대 젊은 시청층을 목표로 한 작품인데 젊은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도 공감대가 부족하고 설정이 유치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BS는 최근 종영한 월화극 <계약우정> 역시 1∼2%대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계약우정>의 경우 4부작의 단막극이기는 했지만 5개월 만에 재개하는 월화극이었음에도 최저시청률이 1.4%까지 떨어지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사실 지상파의 시청률 부진은 KBS만이 문제도, 드라마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 12일 방송된 MBC TV 주말 예능 <끼리끼리>의 1.2부 합산 평균 시청률은 0.9%(0.8%-1.0%)였다. <무한도전>, <런닝맨>, <1박2일> 같은 지상파 주말 예능들이 전성기에는 시청률이 수시로 20-30%를 넘나드는 인기를 누렸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끼리끼리>의 경우 박명수, 장성규, 은지원, 황광희 등 예능에서 두루 활약한 예능 베테랑들이 대거 출연했지만 이미 방송가에서 한물간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를 답습한 낡은 구성과 출연자들의 개인기와 상황극에만 의존하는 점이 한계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 방송가는 종편과 케이블 채널 약진에 채널도 다양화되면서 더 이상 지상파 프리미엄이 사라진 상황이다.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지상파 드라마나 예능도 3~4% 이하에 그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시청률 두 자릿수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어지고 있다. 지상파 출신의 PD,작가 등 우수한 방송제작인력들이 종편이나 케이블로 유출되며 지상파 스스로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능력이 하락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전반적으로 방송 시청률의 절대적인 가치가 예전보다 퇴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인기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다. TV조선은 <미스트롯>,<미스터트롯>의 연타석 히트에 이어 스핀오프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콜센타>까지 '트로트 시리즈'의 성공을 이어가며 최고시청률 30%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스카이캐슬>의 성공으로 새로운 '드라마 명가'로 자리잡은 JTBC는 불륜치정극 <부부의 세계>가 분당 최고시청률 23%를 돌파하며 또 다른 대박 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도 '컨텐츠의 경쟁력 차이'에 따라 시청률 양극화 현상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확실한 타깃 연령대 시청자들을 정하여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매력을 얼마나 보여주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되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이 이처럼 달라진 방송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황금시간대에 선동열급 방어율의 굴욕을 당하는 드라마-예능 작품들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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