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농구가 1997년 첫 출범 이후 23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물들이 리그를 거쳐갔다. 풋풋하던 신인 선수가 어느덧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되어 은퇴하는가 하면, 열정이 넘치던 초보 감독은 세월의 연륜이 더해진 성숙한 노장으로 거듭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사다난했던 리그의 역사 속에서 팬들의 가슴 속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전설'로 남은 인물들도 적지 않다.

23년간 프로농구 코트를 거쳐간 정식 감독은 현재까지 총 70명(감독대행은 제외)이다. 이중 한 팀 혹은 복수의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하여 중복되는 사례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불과 43명의 인물만이 프로농구 사령탑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매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프로의 세계지만, 다른 종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프로농구는 감독교체가 빈번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그만큼 프로농구에서 감독직을 맡길만한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중 프로무대에서 챔프전 우승의 기쁨을 맛본 감독은 12명에 불과하다. 유재학, 전창진, 추일승, 김진, 허재, 김동광, 안준호, 최인선, 신선우, 문경은, 이상범, 김승기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프로 원년 최초의 우승팀 사령탑이었던 최인선 감독은 1997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현대모비스)에 이어 2000년에는 청주 SK(현 서울)를 다시 한 번 정상으로 이끌며 프로농구 역사상 유일하게 '복수의 팀에서 우승에 성공한 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감독은 역시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이다. 유 감독은 1998년 35세, 당시 최연소로 대우 제우스(현 인천 전자랜드) 감독에 취임한 이래 현 모비스에서 현역 최고령 감독에 이르기까지 무려 22년간이나 현장을 지키고 있는 프로농구 역대 최장수 감독이다. 코치 시절까지 포함하면 프로 원년부터 단 한해도 쉬지 않고 프로농구 코트에 개근한 인물로도 유일하다.

특히 유 감독은 모비스에서만 무려 6회의 챔프전 우승과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모비스 왕조'를 구축했다. 현역 감독 최다승, 최다우승이자, 정규리그 600승 이상을 달성한 유일한 감독이기도 하다. 만가지의 수를 가졌다고 해서 '만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유 감독은 뛰어난 전술적 역량과 선수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안목에 있어 역대 지도자중 최고로 꼽힌다. 80년대 촉망받던 포인트가드 출신이었지만 부상으로 일찍 현역생활을 마감한 유 감독은 남들보다 빨리 지도자의 길에 입문하여 오히려 선수보다 감독으로서 더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도 꼽히고 있다.

프로무대에서 선수 시절을 경험한 감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대명사로 꼽히는 허재 감독은 2005년 전주 KCC 사령탑에 취임하며 프로 선수 출신 감독 1호가 됐고, 2009년과 2011년에는 KCC를 우승으로 이끌며 '선수와 감독으로 프로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허재 감독 이후 유도훈, 문경은, 이상범, 김승기 등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 출신 감독들의 성공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현재 프로농구 10개 구단 감독 중 프로 선수 경력이 전무한 인물은 유재학 감독과 전창진 KCC 감독, 단 2명뿐이다.

역대 프로 감독 중에서는 선수 못지않은 강렬한 개성으로 농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들도 적지 않다 한국농구 '스타 출신 감독 원조 1세대'로 꼽히는 김동광 감독은 '열혈남아' '광간지'라는 별명으로 농구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2000-01시즌 삼성의 첫 통합우승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삼성과 KGC 등 두 팀에 걸쳐 각각 두 번이나 감독직을 역임하는 특이한 기록도 세웠다.

특유의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선수들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대단했지만 나이를 무색게 하는 수려한 외모와 패션감각, 특유의 걸쭉한 입담으로 많은 볼거리를 만드는 쇼맨십도 대단했다. 김동광 감독의 삼성 2기 시절 작전타임 영상이나 방송 해설위원 시절의 어록은 지금도 종종 농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다.

'공격농구의 대명사' 김태환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추일승 감독 이전에 한국프로농구에서 최초의 비주류 성공신화를 만든 인물로 거론되는 김 감독은 LG 사령탑 시절 조성원-에릭 이버츠 등을 앞세워 KBL 사상 평균 100점대를 넘나드는 화끈한 쇼타임과 '양궁농구'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수비농구가 득세하는 최근의 KBL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비록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지금도 당시의 LG 농구가 유독 화끈하고 재미있었다며 그리워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근엄하고 무뚝뚝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허를 찌르는 유머감각도 갖춰서 종종 선수와 팬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농구계의 성리학자' 강을준 감독은 프로농구의 작전타임을 이른바 철학 강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로 회자된다. 특유의 구수한 영남 사투리 발음으로 농구와 인생을 통찰하던 유니크한 어록은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성리(승리)했을 때 옝웅(영웅)이 나타나." "아이반, 니가 갱기를 망치고 있어(니갱망)" "이해가 안 돼, 니덜(너희들)이 무슨 서타(스타)인줄 알어?" "무슨 NBA 할렘농구를 하고 있어." "맨날 아프다꼬(아프다고)? 다들 유리몸이야, 야 나도 아퍼" 등 지금도 강 감독의 어록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안준호 감독은 '저평가받은 명장'의 대명사로 꼽힌다. 안 감독은 2005-06시즌 삼성의 2번째 우승을 비롯하여 재임기간 내내 팀을 매년 6강 플레이오프 이상으로 이끌었다.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던 유재학 감독에게 단기전에서 몇번이나 완패의 굴욕을 안겨준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뛰어난 성과와 지도력에도 불구하고 부족해 보이는 카리스마와 당시로써는 보기 드물게 선수의 의견을 수용하는 '민주적인 덕장' 이미지 때문에 당시에는 과소평가받는 측면이 많았다. 이상민, 서장훈, 이규섭, 테렌스 레더 등 당시 팀내 스타 선수들이 안준호 감독의 지시에 항명하거나 노골적으로 무례한 태도를 보인 장면들이 크게 이슈가 되기도 했다. 정작 안 감독이 물러난 이후 삼성이 김상준-이상민 감독 체제를 거치면서 후임 감독들의 부진과 더불어 혼란기를 겪으면서 안 감독의 뛰어난 역량이 오히려 재평가받고 있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무관의 영웅'으로 불린다. 유 감독은 안양 KGC 인삼공사를 거쳐 2009년부터 전자랜드의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아직까지 프로무대 우승경력은 한번도 없다. 프로에서 10년 넘게 우승이 없음에도 현역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경우는 유도훈 감독이 유일하다.

유 감독은 만년 중하위권팀으로 꼽히며 한때 매각 위기까지 몰렸던 전자랜드를 매년 플레이오프를 노리는 끈끈한 '언더독' 구단으로 만들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프로 지도자중에서는 가장 먼저 경기중 마이크를 차고 팬들과의 소통에도 앞장서는 등 달라진 프로스포츠의 시대 변화와 팬서비스 의식을 가장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호평받는 부분이다.

반면 기대와 달리 프로무대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진 인물들도 많다. 대학무대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주가를 높였던 최희암 감독은 울산 현대모비스와 인천 전자랜드에서 지휘봉을 잡았으나 최고성적이 6강플레이오프 진출에 그쳤고 2009년 이후로는 농구계를 떠났다. 중앙대의 52연승 신화를 이끌었던 김상준 감독도 삼성에서 부임 1년만에 꼴찌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기고 경질되며 지금까지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 밖에도 박수교 감독은 인천 전자랜드에서 감독과 단장으로 2년연속 최악의 성적을 거두는 진기록을 남겼고 박종천 감독은 전자랜드와 LG에서 각각 성적부진으로 잇달아 경질됐다. 현역 시절 '슛도사'로 명성을 떨쳤던 이충희 감독은 고양 오리온과 원주 DB 두 팀에 걸쳐 꼴찌는 물론이고 '한 시즌 10연패 이상만 3번이나 달성'하는 초유의 기록을 남기며 역대 프로농구 스타 출신 감독 중 가장 안타까운 흑역사의 감독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강동희는 원주 동부(현 DB) 사령탑 시절인 2013년 '승부조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으며 프로스포츠 사령탑 중 최초의 영구제명 징계를 당하는 최악의 역사를 남기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프로무대에서 '농구대잔치 세대'와 '프로화 1세대' 출신 젊은 감독들을 한동안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문경은 SK 감독 같이 장수 사령탑으로 성공적인 안착을 이룬 사례도 있지만, 현주엽, 조동현, 이상민 등 실패에 가까운 사례들도 많다. 현역 시절의 명성에 비하여 감독으로서의 전술적 창의성이나 리더십이 부족하고 성장 속도가 더디다는 아쉬움이 크다. 선수 시절의 이름값만큼이나 지도자로서의 경험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달라지고 있는 농구 트렌드나 시대적인 분위기에 맞춰 프로농구 감독들의 리더십도 좀더 다양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국 프로농구에서 선수들이 비하여 '지도자 육성'에 대한 장기적인 기획과 인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다른 종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외국인 사령탑도 농구에서는 보기 힘들다.

출범 23년째를 맞이하는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감독은 제이 험프리스 전 전자랜드 감독과 스테이시 오그먼 전 KCC 감독 정도에 불과하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리더십이 어우러지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구도가 정착되어야 프로농구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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