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걸> 포스터

영화 <라라걸> 포스터 ⓒ 판씨네마(주)

 
답답했던 마음이 순간 뻥하고 뚫린다. 광활한 대지, 해변, 트랙을 정신없이 달리는 말과 기수. 둘은 혼연일체다. 봄은 왔지만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 몸과 마음이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때, 마음이 탁 트이는 영화가 우리 곁에 왔다. 바로 테라사 팔머 주연의 <라라걸> 이야기다.

영화 <라라걸>은 155년 멜버른 컵 역사상 우승한 최초의 여성 기수 미셸 페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녀는 생후 6개월에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버지(샘 닐) 혼자 10명의 아이들을 키워 내야 했지만 남매들은 서로가 서로를 키우며 부지런히 자랐고, 10명 중 8명이 기수가 되었다. 막내였던 미셸(테레사 팔머)은 자연스럽게 기수였던 언니 오빠들을 보며 기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거기에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탐탁지 않아 했다. 이미 아내와 딸을 잃은 터라 더 이상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그래서 막내딸이 더 큰 무대로 진출하는 것을 말린다. 하지만 미래를 향해 뻗어 나가고만 싶은 미셸은 아버지의 반대도 무릅쓰고 질주본능을 키운다.
 
 영화 <라라걸> 스틸컷

영화 <라라걸> 스틸컷 ⓒ 판씨네마(주)

 
남자 기수가 대부분인 경마에서 여자 기수가 살아남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성차별, 성추행을 물론 혹독한 훈련과 환멸도 이겨내야 했다. 미셸은 오로지 다음 스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고 속도보다는 인내심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항상 기억했다. 그렇게 온갖 방해공작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을 지키고자 했다.

드디어 상위 그룹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 그룹에 들어가면 지금보다 더 좋은 말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말을 타면 우승 확률이 높아지고, 멜버른 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기수로서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은 절호의 찬스다. 미셸은 이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의 위험에까지 놓인다. 모두가 다시는 어렵다고 했지만 승마를 향한 그의 용기와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미셸은 기적적으로 다시 고삐를 잡고 말에 오르게 된다.

미셸은 3200번의 출전, 361번 우승, 7번의 낙마와 16번의 골절을 겪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달렸다. 상처 입고 나이 많은 말 프린스를 자기 말로 삼아 승리로 이끈 능력도 높이살 만하다. 우여곡절 끝에 멜버른 컵까지 다가갔고 드디어 여성 최초 우승이란 타이틀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영화 <라라걸> 스틸컷

영화 <라라걸> 스틸컷 ⓒ 판씨네마(주)

 
영화 <라라걸>은 '여자라서 할 수 없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여성 영화다. 여성 감독, 각본, 주연으로 트리플 F 등급을 받은 바 있다. 감각적인 음악과 기수의 독특한 패션이 인상적이다. 실제 미셸의 오빠인 스티브는 미셸의 든든한 친구이자 정식적 지주를 직접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 깊은 건 굴하지 않는 의지를 가진 주인공 탓에 시종일관 열정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터라, 이미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마장의 흥분과 긍정의 기운이 시종일관 계속된다. 축 처진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스크린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하기 금상첨화다. 마음껏 달리고 뛰고 싶은 마음과 바닥에 떨어진 열정을 단숨에 끌어올려 준다. 떨어지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경쟁 순간의 쫄깃함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세상에 남성이라서, 혹은 여성이라서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여자는 힘이 부족하다지만 방금 세상을 이겼어요"라는 그녀의 우승 소감이 증명한다. 이는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는 메시지이자, 오랫동안 쌓아온 남성 중심 성(城)을 차지한 여성(性) 정복자가 내던지는 일갈이다.

원제 Ride Like a Girl은 '여자답게라 승리하라'라는 말이다. 여자다움(Like a Girl)이란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 #LIKEAGIL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성성, 여자답게, 여자다움, 여자력이란 단어로 성의 경계를 긋는다. 하지만 영화는 '여성은 선천적으로 남성과 신체 구조가 달라 스포츠에 불리하다'는 말을 보기 좋게 깬다. 1등도 꼴등이 되고 꼴등도 언젠가 1등이 되는 각본 없는 드라마, 스포츠의 묘미를 가득 담았다. <라라걸>은 주체적인 여성이 당당하게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과 극한의 한계를 극복하는 여성주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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