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생애 첫 MVP 수상이 발표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10일, 한국배구연맹은 2020년 여자부 자유계약선수(FA) 취득 선수 1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쌍둥이 스타' 이재영(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과 이다영(현대건설)을 비롯해 '클러치박' 박정아, '문데렐라' 문정원(이상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국가대표 라이트 김희진(IBK기업은행 알토스), '밍키' 황민경(현대건설) 등 각 팀의 스타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FA자격을 얻은 선수들이 이번 FA시장에서 저마다 '대박'을 기대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대폭 상승한 연봉 상한선(샐러리캡) 때문이다. 한국배구연맹은 기존에 14억 원이었던 선수단 총액 연봉상한선을 무려 64.3%가 상승한 23억 원으로 인상했다. 여기에 3억5000만 원이었던 선수 개인의 연봉 상한선도 7억 원까지 상승해 이번 FA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이재영은 벌써부터 '배구재벌'을 예약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이번에 FA자격을 얻었고 그 누구보다 가치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증명됐음에도 FA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포기했다. '국민 리베로' 또는 '미친 디그'로 불리며 한국 여자배구 영광의 시대를 함께 했던 김해란 리베로가 그 주인공이다. 통산 9819개의 디그와 4609개의 리시브를 달성한 '전설의 리베로' 김해란은 2019-2020시즌이 끝난 후 현역 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리베로 연봉 '2억 원 시대' 연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
 
 김해란은 2017년 리베로 역대 최고연봉 기록을 세우며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김해란은 2017년 리베로 역대 최고연봉 기록을 세우며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16년 10월 2016-2017 시즌을 앞둔 여자부 미디어 데이에서 각 구단의 감독들은 '다른 팀 선수 중 가장 탐 나는 선수가 누구인가'라는 공통 질문을 받았다. 각 팀의 감독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센터 양효진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은 유일하게 김해란 리베로를 호명했다(그리고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흥국생명은 정말로 FA시장에서 김해란을 영입했다).

마산제일여고시절 고교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하던 단식 공격수였던 김해란은 3학년 때 발목 수술을 받으면서 성인배구 입성 후 리베로로 변신했다. 도로공사를 V리그 원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김해란은 2007-2008 시즌과 2008-2009 시즌, 2011-2012시즌까지 세 번에 걸쳐 수비상을 받았고 통산 9번이나 디그 부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적수가 없는 V리그 최고의 리베로로 군림했다.

하지만 최고의 리베로 김해란에게도 V리그 우승은 쉽게 오를 수 없는 고지였다. 김해란은 프로 원년부터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했지만 챔프전에서 KT&G에게 덜미를 잡혀 우승을 놓쳤다. FA 대어 정대영과 이효희를 동시에 영입하면서 정규리그 1위를 질주하던 2014-2015 시즌에는 올스타전에서 후위공격을 시도하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김해란이 빠진 도로공사도 챔프전에서 기업은행에게 패했다).

도로공사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10년 넘게 활약한 김해란은 2015년 5월 마산제일여고 후배인 임명옥 리베로와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 하지만 주력 선수들의 이적 및 은퇴로 전력이 약해진 인삼공사는 3번의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의 명문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해란은 인삼공사 이적 첫 시즌에도 변함 없이 디그 1위를 차지했지만 인삼공사는 2015-2016 시즌 7승23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인삼공사는 외국인 선수 알레나 버그스마가 맹활약하고 김해란이 수비의 중심을 잡은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김해란 개인에게는 2011-2012 시즌 이후 무려 5년 만에 맞는 봄 배구였다. 하지만 김해란의 봄 나들이는 인삼공사가 기업은행에게 1승2패로 패하면서 아쉽게 마무리됐다. 결국 김해란은 2017년 FA시장에서 리베로 최초로 연봉 2억 원 시대를 열며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현역 마지막 팀 흥국생명에서 첫 우승 감격 누린 후 은퇴선언
 
 김해란은 뛰어난 수비는 물론이고 동료들은 다독이고 이끄는 리더십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김해란은 뛰어난 수비는 물론이고 동료들은 다독이고 이끄는 리더십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 한국배구연맹

 
이적 첫 시즌 배구팬들은 김해란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1위였던 흥국생명이 2017-2018 시즌 최하위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전 센터 김수지(기업은행)가 이적했고 기존의 한지현(기업은행) 리베로가 있음에도 김해란, 남지연(기업은행 코치) 등 전·현직 국가대표 리베로들을 무차별적으로  모으며 배구팬들의 많은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2018년 FA 김세영과 김미연을 영입하며 팀을 정비했고 '핑크폭격기' 이재영과 외국인 선수 베레니카 톰시아로 구성된 쌍포가 폭발하면서 다시금 강팀의 위용을 되찾았다. 김해란 리베로는 후위에서 안정된 수비로 동생들을 든든히 이끌었고 흥국생명은 '김연경 시대'였던 2006-2007 시즌 이후 무려 12년 만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김해란에게는 성인배구 데뷔 후 첫 우승의 기쁨을 누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해란의 나이는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고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지난 시즌 53.14%였던 리시브 효율이 36.43%로 뚝 떨어졌다. 김해란은 이번 시즌 흥국생명의 챔프전 2연패를 이끈 후 당당히 유니폼을 벗는다는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예상보다 일찍 은퇴를 발표하게 됐다. 미련을 남기기 보다는 후회 없는 마침표를 선택한 것이다.

김해란은 구단을 통해 "부족한 저를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팬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선수생활은 아쉽지만 여기서 마무리하려 한다.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과 배구인생을 함께 해 행복했다. 앞으로 천천히 진로를 생각해 보고 싶다"며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김해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힌 흥국생명도 "앞으로도 김해란 선수의 앞날을 응원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해란의 은퇴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팀은 흥국생명이다. 수비에서 김해란 리베로에 대한 의존이 심했던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부터 리베로로 변신한 신연경이나 프로에서 주전 경험이 거의 없는 도수빈에게 리베로 자리를 맡겨야 한다. 물론 박미희 감독이 리베로 포지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이번 FA시장에 나온 김연견 리베로(현대건설)나 오지영 리베로(인삼공사)가 흥국생명의 타깃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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