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뮤직비디오 갈무리

'깡' 뮤직비디오 갈무리 ⓒ 레인컴퍼니

 

10여 년 전, 가수 겸 배우 비(정지훈)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였다. 남성성을 과시하는 컨셉, 그리고 자수성가와 노력의 서사는 그를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2004년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울음을 터뜨리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무대와 스크린, TV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던 비는 아시아 스타로 우뚝 섰다. 그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고, 워쇼스키 자매를 만나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새신>의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Rainism(2008)'이라는 자기 과시적인 노래 제목도,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도 결코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깡'으로 밀어붙였으나 총체적 난국
 
그리고 2020년 현재, 그는 여전히 대중들에게서 잊히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비라는 존재가 하나의 '밈(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학술 용어에서 유래한 표현으로서, 지금은 인터넷 공간에서 유행하는 문화적 요소를 의미하는 용어로 받아들여진다)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발점에는 '더 유닛' 방영 시점에 맞춰 공개된 '깡'(2017)이 있었다. 비는 '자신이 보여주지 않은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주겠다'며 매직 맨션에 타이틀곡을 맡겼다. 반응은 뜨거웠다. 문제는 이 '뜨거움'이 예상한 방향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발표 직후, 곡은 빠르게 음원 차트 순위권 밖으로 사라졌다. 모든 면에서 부자연스러웠다. 곡의 전반부를 지배하고 있는 트랩 사운드, '요즘 래퍼'들의 플로우를 따라 한 랩, 갑작스러운 발라드풍으로의 전환, 일관성 없는 가사 등 수많은 요소가 부자연스럽게 얽혀 있었다. 남이 써 준 스웨거는 작위적이었고, 클리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뮤직비디오와 안무 역시 예스러웠다.
 
"Yeah 다시 돌아왔지 내 이름 레인 스웩을 뽐내 WHOO They call it 왕의 귀환
후배들 바빠지는 중/ 신발끈 꽉 매고 스케줄 All Day/ 내 매니저 전화기는 조용할 일이 없네"
- '깡(2017)' 중
 

대중들은 '깡'에 질타를 보내기보단 한바탕 웃는 쪽을 택했다. 뮤직비디오의 댓글 창은 하나의 놀이터와 다름없게 되었다. 2017년 말에 발표된 곡이지만 2020년 4월 현재까지도 재치있는 댓글들이 작성되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1일 1깡(하루에 한 번 '깡' 뮤직비디오를 시청한다는 뜻)'을 행동에 옮겼고, 스스로를 '깡팸'으로 지칭했다.

최근에는 한 여고생 유튜버가 '1일 1깡 여고생의 깡'이라는 패러디 영상으로 10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엄연한 실패작 '깡'은 누리꾼들에 의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은 것일까?
 
 XtvN < 최신 유행 프로그램 >에서 문빈(아스트로)이 비의 '차에 타봐'를 패러디한 장면

XtvN < 최신 유행 프로그램 >에서 문빈(아스트로)이 비의 '차에 타봐'를 패러디한 장면 ⓒ XtvN

 
누리꾼들은 또 다른 유희거리를 발견했다. 비가 2014년에 발표했던 노래 '차에 타봐'였다. 발매 당시에도 '30 SEXY'와 'LA SONG'에 밀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지금은 곡의 제목 자체가 유행어가 되었다. '차에 타봐'는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의 'Take You Down'을 떠올리게 하는, 진지한 알앤비 넘버다. 문제는 가사였다.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대시를 하는 남성을 차에 태워 때리겠다는 내용의 가사는 과하게 비장했고, 곡과 어울리지 않았다(이 곡은 비가 직접 작사했다).
 
"지금 어디야 xx놈아 내 전화 빨리 받아라/ 지금부터 내 여자한테 전화하면 죽는다/
너 따위 남자가 바라볼 수도 아니 감히 나조차도 바라볼 수 없는 소중한 내 여자 내 여잘 니가 건드렸어 /나 못 참겠어 어떻게든 너를 때려야겠어"
- '차에 타봐 (2014)' 중
 

'깡'과 '차에 타봐',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래와 영화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창조의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요즘 세대에게 비의 이미지는 '군림하는 월드 스타'보다 더 친숙한 이미지로 재편되었다. 실패한 영화와 노래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들을 얻게 되었다. 

지난 1~2년 동안 누리꾼들 사이에서 비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하나의 인기 트랜드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나의 기억 속에 비는 2000년대 가요계를 상징하는 스타였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반응의 기저에는 그가 자신과 시대에 두루 부합하는 옷을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지 않을까?(그런 의미에서 2018년에 발매되었던 동시대 가수 보아의 앨범 < WOMAN >은 좋은 사례다. 이 앨범은 결코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 했다. 그러나 팝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보아가 가진 자원을 적절하게 부각시켰다).
 
비는 여전히 유능한 엔터테이너다. 그는 여전히 힘있게 춤을 출 수 있고, 특유의 중저음 역시 변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한 음악적 조력자다. 그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그의 매력을 십분 살릴 수 있는 프로듀서가 필요하다. 그는 언제든 다시 '비느님'으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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