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2년 동안 준비해서 앨범 한 장 내고, 3개월 활동한단 말이죠. 3개월 활동했는데 이 앨범이 실패로 돌아가면, 나머지 (몇 년 간은) 할 일이 없어지는 거예요. 흔히 말하는 음반을 내는 패턴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하고, (중략) 혹시 무모한 방식일 수도 있지만, 매달 한 곡씩 내볼까? 라는 생각을 2010년에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목을 '월간 윤종신'이라고 붙여버렸어요."

2012년 가수 윤종신은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해 2010년부터 당시 2년 동안 진행해오던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그의 도전이 마냥 신기했던 내가 이 말을 듣고 그의 행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마음 속 한 켠에는 그런 생각도 있었다. 정규앨범을 내지 않고 계속 '월간 윤종신'만 내면서 활동하는 방식이 정말로 지속가능할까?

지난 3월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가 10주년을 맞았다. 이제는 무모한 방식이 아니라 가수 윤종신을 설명하는 데에 빠트릴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나만 알고 싶은 <월간 윤종신>의 트랙 다섯 개를 팬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 쿠바 샌드위치(2015)

로스트 포크 큐민 오렌지주스 / 마늘 소금 후추 발라 오븐에 굽는다면
My 샌드위치 그대에게 행복을 전해 줄게 


윤종신은 당시 <강심장> 방송에서 "매번 역작을 낼 수는 없다"면서 "노래를 일기처럼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특히 인상깊게 본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에 대한 느낌을 읊조리듯 노래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 <월간 윤종신>의 특징인데, <쿠바 샌드위치> 역시 그러하다. 그 해 1월에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2015)에서 영향을 받았다. 레게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하하와 스컬의 레게 듀오 '레게 강 같은 평화'가 곡에 참여했다.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터(존 파브로 분)가 메뉴 결정권을 빼앗기고 평론가의 혹평을 받아 레스토랑을 그만두게 된다. 요리를 그만둘 수는 없어 쿠바 샌드위치 푸드트럭에 도전한다.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게 된 칼. 윤종신에게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칼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평가를 떠나 즐겁게, 듣는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 그의 의지가 <쿠바 샌드위치>에는 담겨있다. 

2. 버드맨(2015)

그대가 좋아했으면 / 나를 바라봐 줬으면 / 잔뜩 멋 부린 내 모습을 좋아해 준 그대들 다 어디갔나요 / 나 여기 있는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동명의 영화 <버드맨>(2015)은 왕년에 히어로물에 출연하며 몸값을 올렸던 슈퍼스타지만 지금은 잊힌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생계를 위해 연극에 출연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소신을 따르는 것과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사이에서 리건은 갈등한다. 많은 사람이 처한 상황이지만, 윤종신 역시 예능과 음악 사이에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영화 속 버드맨과 윤종신이 다른 것이 있다면, 적어도 윤종신은 현역 가수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도 잊히겠지. 그때 그는 조용히 이 노래를 읊조리지 않을까. 

3. 그래도 크리스마스(2016)

참 힘들었죠 / 올해 돌아보면 / 어쩜 그렇게도 그럴 수가 있는 건가요 
잘했어요 / 참아내기 힘든 그 용서할 수 없는 걸 / 다 함께 외쳤던 그 날들
 

이 곡이 나올 즈음에 우리는 모두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촛불을 들고, 불의한 정권을 비판하며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따뜻한 재즈풍의 캐롤송. 이 곡의 백미는 뮤직비디오다. 컴컴한 터널을 지나고 나면 세월호 리본이 묶여있는 진도항이 보이고, 몇 푼 안되는 돈 때문에 무너지는 소녀상이 보인다. 또한 불빛을 환히 밝히며 총장 퇴진을 외치는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도 그려놓았다.

뮤비는 2016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던 소식들을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냈다. 뮤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발매된 그 날 저녁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당시 앵커가 앵커브리핑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4. Wi-Fi(2017)

널 끊겠어 뚝 끊어 버리겠어 마치 금연처럼 난 / 서서히 줄여 갈 수는 없는 거란 걸 
봐 각자의 인생을 봐 걸리적거릴 거야 / 벗어나야 풀리는 거리의 와이파이처럼


'나만 알고 싶은' 작품 혹은 아티스트가 갑자기 유명해지면 괜히 기분이 묘해진다는데, <Wi-Fi>가 딱 그렇다. 관계의 정도를 와이파이의 강도로 나타낸 것이 너무 신박할 뿐만 아니라 기계를 통해 마치 와이파이가 끊어지는 것처럼 목소리를 끊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깊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년이 지나서 남성 아이돌인 세븐틴의 부승관이 <라디오스타>에 나와 개인기로 이 노래를 부른 것이 화제가 되어 노래가 더 알려졌다. 

너무 반응이 좋은 나머지 아예 딩고 뮤직에서는 그를 섭외해 <Wi-Fi> 풀버전을 부르기도 했다. 덕분에 이 노래가 더 유명해졌지만, 기분이 묘한 것은 어쩔 수 없다. 

5. 늦바람(2019)

좀 더 꿈꾸겠어 / 생각보다 훨씬 느낄 게 많아 / 바람 맨 앞에서 숨지 말아야 해
겪는 게 이득이래 / 어차피 다가올 날 멍하니 만나긴 싫어


그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한국을 뜨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듣고 기꺼이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 윤종신은 여전히 뜨겁고, 영민하며,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출사표를 냈고, 현재 그는 "겪지 않기에는 몹쓸 그 호기심"을 탐구하는 여정을 보내는 중이다. 

이제는 매달 그의 노래가 기다려진다
 
 가수 윤종신

가수 윤종신 ⓒ 월간윤종신

 
<월간 윤종신>의 지난 10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성적과 무관하게 성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닐까. 물론 그의 가수로서의 꾸준함과 프로듀서로서의 영민함이 만나 '대박'을 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역주행에 성공한 <좋니>도 그렇고 <슈퍼스타K> 참가자들이 불러서 더 유명해진 <막걸리나>, <본능적으로> 같은 노래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우연한 일에 가깝다. 

윤종신은 또한 당시 방송에서 "부지런히 쌓이다 보면 언젠가 운이 닿는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방점이 찍혀야 할 부분은 '운'이 아니라 '부지런'이 아닐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지런히 쌓아놓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의 노래는 늘 우리 곁에 와 있다. 이제 귀를 쫑긋 세우고 다음 노래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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