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아폴로 11> 포스터.

다큐멘터리 <아폴로 11> 포스터. ⓒ ?넷플릭스

 
1957년 10월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데 성공한다. 한 달 후엔 살아 있는 개 라이카를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보냈다. 이에 미국은 이듬해 초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에 질세라 소련은 익스플로러 1호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가하는 크기와 무게의 스푸트니크 3호를 발사했다. 때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었을 때, 무대는 지구에서 우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은 10년이 넘게 완전한 소련의 승리였다. 최초란 최초는 모조리 가져갔던 것이다. 이를 무기화하면 절대 미국이 이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5월 국회에서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 살아돌아오게 하겠다"는 요지의 연설을 한다. 이에 미국의 NASA(미국항공우주국)는 유인 달탐사 계획인 '아폴로 계획'에 착수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케네디가 공언한 대로 1960년대가 저물기 직전인 1969년 7월 미국의 NASA는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리며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게 하였다. 지구 아닌 곳에 최초로 발을 디딘 것이다. 지난 2019년이 50주년 되는 해로, 미국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 많이 기념하였는데 다큐멘터리 <아폴로 11>이 방점을 찍지 않았나 싶다. 오다 가다 엿보는 수준의 '아폴로 11호'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당시 그대로의 영상으로도 충분하다

<아폴로 11>은 우주 전쟁이라든지 아폴로 계획이라든지 심지어 아폴로 11호 준비 과정도 완전히라고 할 만큼 제외시키고, 온전히 '아폴로 11호' 임무 과정에 몰두한다. 더불어 작품을 이루는 거의 모든 영상은 오롯이 발사 당시 공개 및 미공개 영상과 우주선에 설치된 카메라 영상과 우주인들이 찍은 영상들로만 꾸려져 있다. 심지어 내레이션도 당시 공개되었던 그대로의 목소리다. 

추가로 덧붙인 것 없이 기존에 존재했던 것만으로 어떻게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시각과 지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게 분명하다.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텐데,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동안 수없이 봐왔던 왠만한 우주 영화들을 훨씬 상회하는 스펙터클과 그를 뒷받침하는 믿기 힘들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모순적 리얼리티. 

지나간 사건의 단면을 나름의 문제의식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흥미로운 문제제기를 가하는 게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면, 이 작품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어도 충분하고도 남을 사건이 주제이자 소재이기에 특단의 선택을 한 것이리라 본다. 선택은 적중했고, 작품을 보게 된 우리는 마치 50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도취하게 되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인간

아폴로 11호에는, 누구라도 이름을 들어 보지 않을 수 없는 '닐 암스트롱'과 '마이클 콜린스'와 '에드윈 버즈 올드린'이 탑승했다. 각각 맡은 임무는 사령관, 사령선 컬럼비아호 조종사, 달착륙선 이글호 조종사였다. 1969년 7월 16일 오전에 출발했고, 달로 향하는 3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달로 향하는 동안 우주선 안의 우주인 이야기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는데, 이보다 신기한 일이 있었나 싶었을 것이다. 

7월 20일, 달착륙선 이글호는 사령선 컬럼비아호와 분리되어서 달 착륙 궤도에 진입한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생겨 예상보다 4초 빠른 위치에 착륙이 예상되었다. 잠시 후 계속 에러가 뜨니 모두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컴퓨터 엔지니어가 착륙해도 좋다는 말을 전한다. 닐 암스트롱은 착륙을 강행하고, 무사히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할 수 있었다. 

마이클 콜린스가 지구와의 교신이 끊긴 채로 홀로 컬럼비아호에서 달 궤도를 도는 사이,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며 그 유명한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이어 에드윈 버즈 올드린이 달에 발을 디딘다. 그들은 기념판을 설치하고 성조기를 꽂아 '미국의 달 정복'을 명확히 한다. 2시간 반 이후 착륙선으로 복귀한다. 

컬럼비아호와 도킹한 이글호, 세 비행사는 다시 지구로 향한다. 달에 발을 디디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중요할 지구 귀환은 무사히 진행된다. 1969년 7월 24일 오후 태평양에 착륙했고, 항공모함 호넷이 그들을 맞이했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 때문에 2주간 격리되었고,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국과 지구를 대표할 영웅으로 환영·칭송받았다. 그야말로 아폴로 11호의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전말이다. 

아폴로 11호의 실질적 주체를 향한 헌사

<아폴로 11>는 50년 전 영상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선명하게 복원되고 보정된 화질을 자랑한다. 사실 자체만으로도, 여전히 믿기 힘든 인류의 달 착륙에 더불어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여, 1960년대 후반 당시 미국의 긴장과 희망을 자세히 엿볼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지나 베트남 전쟁 한가운데에 있던 당시 미국, 세계 최고의 국가로 기세와 영향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을 테다. 하지만 미국의 곁에는 항상 소련이 있었던 바, 아폴로 11호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반 국민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나른한 일상에 아폴로 11호가 한 줄기 빛과 같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대부분은 '아폴로 11호' '케네디 대통령' '미국 NASA' '인류 최초의 달 착륙' '닐 암스트롱' 정도로 요약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자세히 알 수도 없었고, 사실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 다큐멘터리로 새롭다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알게 된 건, 하나의 프로젝트에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이다. 한 명의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수백, 수천 명의 관계자 및 담당자들 말이다. 

이 작품은 아폴로 11호가 아닌 아폴로 11호를 만들고 뒷받침하며 실질적으로 운용한 주체들을 향해 보내는 헌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가 계속되며 기억해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만큼 축소되고 요약되어 한 마디로 알려지곤 하는데, 아폴로 11호 50주년을 맞이해 다시금 알려지지 않은 진짜 주인공이자 영웅들을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비단 아폴로 11호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역사와 다가올 역사 모두에 해당한다.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다양하게 기억하고, 더 오래토록 기억하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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