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오전 8시, 'n번방' 운영자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 포토라인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언론들은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의 발언을 앞다퉈 전했다.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등장한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무려 1119건의 속보가 나왔다. 지난 5일 방송한 KBS 2TV <저널리즘 토크쇼 J> '알권리 vs. 장삿속... 조주빈 자서전 쓰는 언론' 편은 연일 조주빈과 관련한 보도를 쏟아내는 언론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인터넷과 포털, SNS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며 속보, 단독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사실관계의 충분한 확인보다 1분, 1초라도 먼저 기사를 올려야 한다는 속도 경쟁에 치중하다 보니 오보가 넘쳐나는 상황이다.

조주빈은 25일 검찰 송치 직전 "손석희 사장님, 윤장현 시장님, 김웅 기자님을 비롯해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고 말했다. 조주빈의 발언 직후 동아일보는 <[속보] 포토라인에 선 '박사' 조주빈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2020.3.25.)을 올렸다.

그러나 후속 기사 <피해여성에 사과 한 마디 없었다>(2020.3.26.)에선 내용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연합뉴스 등 다른 언론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강유정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언론이 클릭 유도를 위한 속보 경쟁에 치중할 뿐, 해석과 맥락을 제공함으로써 이면의 이야기를 드러내야 하는 본연의 임무를 하지 않았던 결과라고 지적한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받아쓰기 저널리즘의 폐해도 나타났다. 김빛이라 KBS 기자는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기 전에 따옴표를 친 기사를 미리 만들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바로 받아써서 다른 언론사보다 빨리 내보내는 게 언론의 관행이 돼버렸다"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포토라인에서 피의자가 내뱉은 발언들이 별다른 여과 없이 기사로 올라간 후 이슈로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범죄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악영향만 부른다.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거나 가해자에게 자칫 면죄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서자 언론은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속보와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조주빈은 준비된 발언 외에 "혐의를 인정하는가?", "범행을 후회하지 않나?", "피해자들에게 죄책감은 없나?" 등 취재진의 질문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손석희 JTBC 사장, 윤장현 전 광주시장, 김웅 기자를 언급하며 포토라인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조주빈의 계획대로 언론은 움직였다. 3월 25일 네이버 기준으로 텔레그램 박사방 관련 보도가 3294건이었는데, 그중 4분의 1에 달하는 879건이 손석희 JTBC 사장과 관련된 기사였다. 성범죄 기해자의 말 한마디에 휘둘린 현실에 두고 임자운 변호사는 '언론 참사'라고 비판한다.

"한국일보 3월 26일 자 기사 소제목처럼 '손석희, 윤장현을 왜 언급했나'라는 질문 자체는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언론이 내놔야 할 답은 그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그 발언의 의도였던 거죠. 파렴치한 범죄를 마치 권력형 범죄처럼 과장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고 보는데 (언론이) 거기에 완벽하게 놀아났다고 봐요."

손석희 JTBC 사장 내세운 조선일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조선일보는 성범죄 가해자의 입에서 손석희 JTBC 사장이 언급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보도를 이어갔다. 3월 25일부터 3월 31일까지 손석희 JTBC 사장을 헤드라인에 내세운 기사만 10건에 달한다. 그런데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취재를 통한 사실 확인은 찾아볼 수가 없다.

<[김광일의 입] 수갑 찬 조주빈이 손석희를 갖고 논다>(2020.3.26.)에선 손석희 JTBC 사장이 텔레그램으로 뭔가를 했을 것이란 강한 추측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엔 "범인은 으레 거짓말을 한다고 봐야 할까. 방송사 대표는 항상 진실만을 말할까"라고 적어 성범죄 가해자를 옹호하기까지 한다. 기자 칼럼 <손 사장님 그날 밤 무슨 일이?>(2020.3.28.)엔 "신고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인데 신고를 안 했기 때문에 당신은 방조자와 같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만물상]늪에 빠진 손석희>(2020.3.30.)도 "분명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는 루머가 무성했다", "도대체 뭘 숨기려고 이런 사람들과 뒷거래를 하는지 궁금해진다" 등 추측이 가득하다. 조선일보는 합리적 의심을 강조하지만, 그저 의도성이 짙은 기사로 보일 따름이다. 사건의 본질을 왜곡, 은폐하려는 행위에서 조주빈과 조선일보는 공범 관계와 다름이 없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거된 후 언론은 그의 모든 것을 기사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불을 지핀 건 SBS다. SBS는 경찰이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하기 하루 전인 3월 23일에 < 8 뉴스 >를 통해 조주빈의 얼굴과 이름을 최초로 단독 보도했다. SBS는 조주빈의 이름, 얼굴, 나이를 공개한 이유를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고 밝혔다.

조주빈의 신상을 공개한 SBS는 그가 다닌 학교, 봉사활동, 교우 관계 등 성 착취 범죄의 본질과 관계없는 과거를 조명하는 보도로 가해자 행적 파헤치기 경쟁에 신호탄을 쐈다. SBS는 해당 보도에서 "조씨는 정보통신을 전공했지만 글쓰기를 좋아해 학내 독후감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학보사에서 활동하며 편집국장을 맡기도 했다", "4학기 중 3학기 평균 학점이 4.0을 넘을 정도로 성적이 좋아 장학금도 여러 차례 탔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후 언론은 조주빈의 과거 행적을 두고 단독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조주빈의 과거를 보도하는 게 공익적인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룹 자우림의 김윤아씨는 SNS에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십시오"라고 적어 많은 공감을 받았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의 과거는 범죄행각에 변명거리만 제공할 공산이 크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의 이윤소 활동가는 성범죄 가해자에게 '악마, 괴물'이란 표현을 사용하면 비일상적인 일회성 범죄로 인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우려한다. 성범죄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아는 사람에 의해 가장 많이 일어난다. 성범죄를 악마나 괴물이 저지른 특수한 문제로 치부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고자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지난 24일 'n번방 사건' 보도와 관련한 긴급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범죄는 비정상적인 특정인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짐승', '늑대', '악마'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이런 용어는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하여 예외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성범죄는 비정상적인 특정인에 의해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한겨레 보도가 눈에 띄는 까닭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는 상황 속에서 한겨레의 행보는 눈에 띈다. 한겨레는 지난해 11월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 착취> 기획 보도를 실어 'n번방'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바 있다. 그런데 경찰의 신상 공개 결정 이후에도 한겨레는 조주빈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다. 2010년에 내부적으로 만든 '범죄 수사 및 재판 취재 보도 시행 세칙'에 따라 공인일 경우엔 실명 또는 얼굴을 공개하지만, 조주빈은 공인이 아니기에 비공개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3월 26일 2면의 구성도 눈길을 끈다. 모자이크 처리된 조주빈의 사진을 중심에 놓고 그 밑에 <N번방 물려받았는데 "반성해서" 징역 1년?>과 <피해자들은 댓글 등 2차 가해로 더 고통>을 실었다. 다른 언론사들이 조주빈의 과거 행적과 손석희 JTBC 사장 루머를 쫓을 때 양형 문제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본질에 집중한 것이다.

한겨레는 지난해 생산한 콘텐츠에 대해 젠더적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과 원칙을 세우는 젠더데스크를 만들었다. 성 인지 감수성에서 문제가 없는 조직 문화로 바꾸겠다는 노력의 하나다. 취재기자에서 데스크로 이어지는 수직적 상하관계와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가 잉태한 젠더 무감수성을 벗어나기 위해선 다른 언론사에도 젠더데스크를 만들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많은 이가 'n번방 사건' 보도에 분노하고 있다. 대중은 언론에 세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려줬다. 첫째, 알 권리란 미명 아래 모든 사실을 보도할 권리는 없다는 점이다. 공익적 목적에 맞는 선택과 배제의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성역 없이 보도한다는 것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란 사실이다. 언론은 사실을 확인한다는 취재의 기본을 지켜야 하고 오보에 대해선 제대로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범죄 피의자, 특히 성범죄 피의자를 다룰 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피의자에게 함부로 마이크란 권력을 주어선 안 된다.

언론의 할 일은 자명하다. 디지털 성범죄의 범행 수법을 파헤치고 현행법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짚어야 한다. 그리고 공범자들의 응당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 재발 방지를 위해 사회 구조적으로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를 조명해야 한다. 또 하나, 후속 보도를 철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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