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교수가 프리젠터로 참여한 EBS <다큐 프라임-뇌로 보는 인간>은 '돈'으로 부터 시작해, 폭력, 예술, 섹스를 거쳐 '종교' 편에 이르렀다. 정재승 교수는 지난 3월 31일 SNS에 "5부 '종교' 편이 가장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직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종교와 신을 '인간의 창조물'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 '종교' 편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 '종교' 편의 한 장면 ⓒ EBS

 
한계적 인간이 만들어 낸 신 

지난 7일 방송된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 5부 '종교' 편의 시작은 인도 갠지스 강가였다. 하루 종일 시신이 불타오르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화장을 한 후 유골 가루를 뿌리면 그의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껍데기를 버린 영혼이 다른 생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도인들의 생각은 '육체는 헛되지만 존재는 영원하다'는 힌두교로부터 비롯됐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또 다른 여행의 시작으로 받아들인다. 

<다큐프라임>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종교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물론 사후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명료한 대답도 있었지만, 인터뷰에 응한 다수의 사람들이 죽은 뒤 천국, 극락세계, 환생 등을 이야기하며 존재의 영생을 믿었다. 

초월적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을까? 일단 <다큐프라임>은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1987년 죽은 멜린다의 영혼이 남아있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곳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전문가가 등장했다. 그는 창밖에 어른거리는 멜린다의 환영이 사실은 방문객 자동차에 비친 손전등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초자연적 현상이라 불리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인간의 상상력 또는 뇌가 작동한 결과물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걸까? 임사 체험을 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색과 빛이 화려하게 펼쳐진 천국을 봤다거나, 터널을 지나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인간의 뇌가 서로 비슷하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과학적 이유를 들었다. "자연 법칙에 따른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상대적으로 나약한 인간들은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불가지론'을 '초월적 존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어 <다큐프라임>은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싱어 교수의 뇌의 측두엽을 자극하는 장치를 활용한다. 정재승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참가자들은 측두엽 자극에 "붕뜬 상태에서 옆에 누가 다가와 속삭이는 듯했다", "신의 음성을 들었다"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자들, 전문가들 역시 인간이 경험한 신의 존재는 뇌의 자극으로 인한 생리적 현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견도 있었다.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의 신경과학자 앤드류 뉴버그 교수는 다양한 종교 수행자 400~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 뇌의 여러 부분이 연결되듯, 종교 역시 측두엽에 한정된 게 아니라는 반론을 편다. 일상생활과도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의 총체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 '종교' 편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 '종교' 편의 한 장면 ⓒ EBS

 
인간이 만들어낸 신의 모습은? 

왜 종교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 됐을까? 정재승 교수는 생존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한다. 수렵채집의 시대에 인간은 물가에 놓인 어린 아이와도 같았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우연한 사건에서도 원인을 추측하는 독특한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즉, 바구니 앞에서 피리를 부는 노인을 본 소년은 바구니 속에 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도망을 친다. 인간은 설사 그 판단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겁쟁이 뇌'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겁쟁이 뇌'가 '신'을 창조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교양 과학잡지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는 여기에 인간의 패턴에 대한 분석을 더했다. 인간의 뇌는 의미 없는 무늬에서도 어떤 형상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 능력을 통해 인간은 불규칙한 패턴의 자연 뒤에 초자연적인 존재를 유추했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 합리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인간 뇌의 결과물인 셈이다. 전염병, 재난, 질병 등 인류에게 닥친 불가항력적인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신을 창조했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이라고 생각해 기꺼이 그 재해들을 감수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신은 어떤 모습일까? 인지과학자 구형찬 교수와 종교학자 심형준 교수는 24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인간이 어떻게 신을 기억하는가'에 대해 실험했다. 

신의 대표적인 특징은 전지전능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조물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신은 뜻밖에도 인간같았다.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고, 때로는 화를 내고,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적인 존재였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6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사람들은 그 이야기 사이 공백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의 모습으로 채워넣었다. 힌두교 칼리 여신의 팔이 여러 개인 게 하나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람들의 자의적 해석처럼, 사람들은 신을 인간과 비슷하지만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냈다.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 '종교' 편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뇌로 보는 인간> '종교' 편의 한 장면 ⓒ EBS

 
과학이 해주지 못하는 위로

그렇다면 만들어진 신은 인간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의 종교 의식을 통해 알아본다. 모리셔스에서는 극단적인 종교적 의례를 수행한다. 신을 경배하기 위해 온몸에 바늘을 꽂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니, 그 고통스러운 종교 의례 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은 심박수와 호흡이 동일하게 고양되었다.

스페인의 종교 의례에는 700도가 넘는 나무 장작의 재 위를 다른 사람을 업고 뛰는 행위가 있다. 놀랍게도 이 의식에서 뛰는 사람이나, 업히는 사람이나, 심지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의 심박수가 같았다고 한다. 즉, 이러한 집단적 헌신을 통해 사람들은 동일한 심박수와 일체감을 경험한다. 무려 2억여 명의 사람들이 5일에 걸쳐 찾아오는 인도 북동부의 도시 알라하바드 역시 비슷한 사례다. 여기서 힌두교 축제를 벌이는 수많은 사람들도 같은 희열을 느낀다.

종교, 그리고 신은 위안과 소속감을 준다. 과학은 인간을 하나로 묶지 못하지만 신은 인간을 하나로 단단히 묶는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설사 지금의 신 혹은 종교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또 다른 '믿음'의 대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오랫동안 배타적이고 고립된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랐던 페사후 아이젠은 극단주의의 실체를 깨닫고 나서 그곳을 떠났다. 물론 그는 1천여 명의 가족이 있는 것같은 든든한 소속감을 그리워 했다. 하지만 그는 "소속감은 규율을 잘 따를 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예술과 문화 등 공통 분모를 통해 만드는 현대 사회의 또다른 공동체를 만나게 되었다.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종교는 삶의 지표일까, 아닐까. 유용할까, 유용하지 않을까. 믿음과 논거는 평행선을 이룬다. 인간이 신을 만든 과학적 논거가 진행되는 한편, 또다른 곳에서는 내림굿을 받고 이제 막 새롭게 신을 받들게 된 애기 무당의 서사가 펼쳐진다. 몸이 너무 아프고,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던 그녀는 살고 싶어서 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부르며 통곡을 하고, 작두를 오르던 그녀는 내림굿이 끝난 후 활짝 웃는 얼굴로 이제야 속이 편해졌다며 선배 무당에게 기댄다. 

여전히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많다. 종교는 때때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준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학의 세계가 도래하고, 학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종교'의 종말을 점쳤다. 하지만 과학이 세상을 분석하면 분석할 수록 세상은 뜻밖에도 점점 더 알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과학이 발달할 수록 위태로워진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은 그 모든 불확실성을 잠재워 줄 절대자를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다큐프라임>이 보여준 '종교'는 명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위로를 줄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 역시 명확하다. 가슴 떨리는 일체감을 주지 못하는 차가운 과학은 결국 떨리는 가슴의 종교 앞에서 그저 한낱 명제에 불과하다. 과학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인간이 탄생시킨 진화의 결과물. 아마도 종교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래, 내내 과학과 평행선을 유지하며 갈 것이다. 이성과 비이성의 불합리한 혼재,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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