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서 '4050세대' 탑골 언니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부부의 세계>의 김희애, <하이에나>의 김혜수, <아무도 모른다>의 김서형 등 노련한 여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력과 원숙미를 앞세워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격정멜로로 돌아온 김희애

JTBC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인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복수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멜로물이다. 영국 BBC의 원작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했다. 김희애는 극중 성공한 가정의학과 전문의였지만 남편의 배신으로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 지선우 역을 맡았다.

이미 여러 장르의 작품을 자유롭게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김희애지만 그녀의 매력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장르는 역시 격정멜로다. SBS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평소의 이미지를 깨고 친구의 남편을 빼앗으려는 파격적인 불륜녀로 등장하기도 했고, JTBC <밀회>에서는 스무 살 차이 나는 어린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금기를 넘나드는 사랑을 보여준 바 있다. 당시에는 불륜의 주체였다면 이번에는 불륜의 희생자 역할이 된 것이 다를 뿐.

누구보다 지적이고 차분한 매력이 돋보이는 김희애가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여 내면의 욕망과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 화면에 뿜어내는 폭발력은 배가 된다. 소재만 놓고 보면 '불륜'과 '웰메이드'라는 단어는 그리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상투적이거나 불편한 이야기가 김희애라는 캐릭터와 만나는 순간 스토리에 설득력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김희애라는 배우가 지닌 내공이다. <부부의 세계>는 방송 2주만에 큰 화제와 인기몰이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특히 김희애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원작 방송사인 BBC에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다.

억척스러운 변호사 역에 김혜수

당당하고 능력있는 커리어우먼 캐릭터에 최적화된 김혜수는 SBS <하이에나>에서 정의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변호사 정금자 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전작 <시그널>에서 사명감이 뚜렷한 형사를 연기했다면 <하이에나>의 정금자는 좀더 현실적이고 억척스러우면서도 능글맞다.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강자와 약자 사이를 넘나들며 불편한 타협도 마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인간미를 잃지 않는 정금자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야생속에서 생존을 위하여 발버둥치는 맹수 하이에나를 연상시킨다. 정금자와 대비되어 엘리트 인생만 걸어온 윤희재(주지훈 분)와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은근한 로맨스까지 넘나드는데, 이들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다.

형사 역할 김서형, 따뜻한 인간미 돋보여

<스카이캐슬>에서 '쓰앵님' 열풍을 몰고 온 냉혹한 입시 코디네이터였던 김서형은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팀장인 차영진 역을 맡아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 연쇄살인으로 소중한 친구를 잃은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소년을 보듬을 줄 아는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인물이다.

데뷔 초기부터 멜로물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김희애나 김혜수와는 또다르게 김서형은 한국 여배우중에서는 유니크한 매력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출세작인 <아내의 유혹>부터 <샐러맨 초한지>,<SKY 캐슬>에 이르기까지 김서형은 주로 악역이나 팜므파탈에 가까운 '기센 이미지' 위주로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그저 악역을 위한 악역과는 다르게 김서형이 맡은 인물에는 항상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었다.

미스터리 감성추적극을 표방한 <아무도 모른다>는 김서형의 전작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차갑고 이지적인 매력에, 속내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감성을 더했다. 차영진이라는 인물의 특성상 감정선의 진폭과 소모가 클 수밖에 없는 캐릭터지만, 김서형 특유의 절제되면서도 세밀한 감정표현으로 절박함과 고뇌를 울림있게 전달한다. 

이러한 4050세대 여성 배우와 캐릭터를 앞세운 작품들의 인기몰이는 최근 달라진 시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가족드라마와 멜로극이 주류를 이루던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40대~50대 여성 캐릭터의 입지는 제한적이었다. 이 연령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는 이야기 자체가 적었고, 그나마도 여성 캐릭터들은 '걸크러시'나 '모성애' 같은 한정적인 이미지 위주로 소비되기 일쑤였다. 

최근에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을 선호하는 추세와 맞물려 여성 캐릭터들도 남성 의존적이나 로맨스를 위한 소도구에서 벗어나 당당히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있다. 국내 드라마들도 로맨스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미스터리, 액션, 공포·법학, 치정멜로, 전문직 이야기 등 소재와 장르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웹툰 원작이나 해외 인기드라마의 리메이크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표현의 소재와 범위도 다양해졌다.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풋내기 젊은 주인공보다는, 어느 정도 사회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지닌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동백꽃 필무렵>의 공효진, <킹덤>의 배두나, <VIP>의 장나라, <시크릿부티크>의 김선아, <방법>의 조민수 등, 2030시절 로코퀸으로 활동했던 여배우들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에서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4050세대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 장르극들이 많은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도 다양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풀어낼 수 있는 여배우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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