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포스터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고 회장(이경영)의 마약 조직을 잡아들이려는 천 팀장(전혜진)은 뛰어난 성적으로 입사한 신입 경찰 조현수(임시완)를 전과자로 위장시켜 교도소로 보낸다. 그의 임무는 고 회장의 오른팔인 한재호(설경구)를 만나 친분을 쌓고, 그 친분을 이용해 고 회장의 조직에 잠입하는 것. 패기와 실력으로 한재호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현수는 교도소 안에서 재호와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출소한 후 작전대로 그와 함께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현수는 그의 어머니가 죽게 된 진짜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누구 편에 남아 있어야 할지 흔들리기 시작한다. 

브로맨스는 형제(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쳐서 만든 단어로, 브로맨스 영화는 뜨거운 우정과 유대 관계를 맺는 남자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를 의미한다. 브로맨스 테마는 동성애 관계는 아니지만 그 못지않게 끈끈한 유대관계를 지닌 인물들을 묘사할 때 용이하며,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2011) 속 홈즈&왓슨과 MCU의 아이언맨&스파이더맨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브로맨스 코드는 엄연히 다른 범주에 속하는 동성애를 우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고 왜곡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임시완, 설경구 주연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막 시작된 한국에서 두 남성 간의 진하고 섹시한 로맨스를 그려내는 보기 드문 시도를 감행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불한당>은 여러 장면에서 자신이 로맨스 영화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우선 한재호와 조현수가 처음 대화를 나누는 부분부터 그렇다. 감옥에서 펼쳐지는 싸대기 매치에서 재빠른 속임수로 승리한 현수에게 재호는 명백히 작업을 거는 투로 말한다.

"넌 멍도 이쁘게 든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컷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컷 ⓒ CJ 엔터테인먼트

 
러시아 갱들과 접선하던 장소에서는 현수가 잠시 경찰 동료를 만나는 장면은 재호의 강력한 질투심을 보여준다. "뭐하니 여기서?"라고 묻는 재호는 경찰을 밟아버린 후에 엘리베이터에서는 현수를 의심하며 거친 숨소리로 몸수색을 한다. 이 장면은 한 차례 신뢰에 금이 간 후에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는 절차이자, 섹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현이라고 보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현수가 재호의 넥타이를 세심하게 정리하는 대목도 이 작품이 로맨스 영화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또한 재호와 현수의 관계가 진전되는 방식도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를 충실히 따라가면서 이 작품의 장르가 로맨스라는 심증을 굳혀준다. 현수는 경찰로서 재호에게 접근해 그가 속한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의도로, 재호는 현수가 자신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을 알지만 그를 시험해보려는 의도로 접근한다. 철저히 목적을 위했던 둘의 관계는 서로의 개인사를 공유하면서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둘은 서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한 만큼 더 진하게 사랑한다. "나 죽이지 않으면 형이 죽을 거야"라는 현수의 대사처럼 그들의 애절함, 후회와 분노가 워낙 강렬해서 끝으로 갈수록 영화를 보기 불편할 정도다. 그렇기에 작중 둘의 감정선은 전형적인 로맨스 장르의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철저히 둘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집중하며 나머지 캐릭터들은 철저히 시나리오의 도구로 활용한다. 천 팀장과 고 회장이 대표적인 인물로 이들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개를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천 팀장은 팀원을 속이는 비열한 수를 써서라도, 또 상부의 지시에 대들면서까지 고 회장의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영화는 경찰이라는 직업의식 외에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마약 범죄를 잡으려고 하는지 아무런 동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천 회장도 다르지 않다. 그가 재호를 제거하려고 하는 이유를 영화는 "개가 주인을 물려고 한다"는 상투적인 인용구로 대신할 뿐, 그가 한재호를 위협으로 여기게 되는 계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은 역으로 영화가 현수와 재호의 관계를 더 정교하게 구축할 수 있는 기회이고, 영화는 '믿음'이라는 주제 안에서 둘을 이어준다. 한재호는 부모에게, 조현수는 자신이 믿던 상사와 동료로부터 버려졌다는 아픔을 공유한다. 이 아픔으로 인해 둘 모두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다만 그 방향성에 있어서 둘은 차이를 보인다.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으라고 말하는 재호는 애인과 친구를 포함해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한다. 반면에 현수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 대신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린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상황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마구 표류한다. 

서로 다른 믿음이 결여된 두 사람이 만나서 키우는 사랑은 사실 애초에 행복할 수 없는 예정된 비극이나 다름없다. 서로가 비밀을 숨긴 상태로 처음 만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불한당>은 수미상관의 연출로 어긋나는 사랑을 보여준다. 영화는 재호가 스포츠카에 누워서 출소하는 현수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현수가 재호를 죽이고 같은 자리에 누워있는 장면으로 끝나면서 뜨거웠던 로맨스를 마무리한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컷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컷 ⓒ CJ 엔터테인먼트

 
이처럼 로맨스 영화의 구조와 서사, 감정선을 완벽히 갖춘 와중에 <불한당>은 누아르 영화로서의 매력도 뽐낸다. 영화는 사람이 아닌 상황을 보라는 대사처럼, 어떤 상황을 먼저 던져주고 그 상황의 원인은 나중에 알려주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흥미를 자극한다. 또한 현수 어머니가 죽은 이유와 같은 사건의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 그 변화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중점을 둔다. 그 결과 강박적인 복수심과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축이 되는 작중 갈등 구도는 본 작의 누아르적 요소로 기능한다. 

한편 <불한당>은 액션의 분량이 적은 와중에도 액션 영화로서 충분히 인상적인 장면들을 선보인다. 특히 최 사장의 컨테이너에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영화는 재호가 싸움에 난입해서 자신을 둘러싸며 달려오는 한 무리의 깡패들을 해치우는 순간을 짧은 원테이크로 보여준다. 그 후에 곧바로 앵글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독특한 카메라 워킹으로 현수가 거한과 사투를 펼치는 액션을 스크린에 담는다. 각각 <올드보이>와 <셜록 홈즈>를 오마주한 듯 보이는 이 장면은 액션 영화의 정체성도 충분히 입증해 보인다. 

최근 재개봉하기도 한 <불한당>은 개봉 당시에도 칸 영화제 심야 상영 부문에 초청받는 등 큰 기대를 받은 영화였다. 실제로 이 작품은 로맨스, 누아르, 액션 영화로서 각각의 정체성을 잘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상이한 장르들을 두 인물의 강렬한 감정선에 맞춰 잘 버무린 수작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개봉한 지 3년이 지난 2020년에도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퀴어 로맨스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에 액션이나 누아르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을 충족시키기 어려웠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불한당>은 수려한 장르적 문법을 구사하지만 동시에 상업영화로서의 대중성을 잡는 데는 실패한 로맨스 누아르 영화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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