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아래 <슬의>)이 시청률 9.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를 넘기며 순항 중이다. 이른 바 '워노 매직'(신원호 PD의 매직)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주 1회, 한 시간 반 정도 방영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우리나라에선 새로운 시도다. 특히 드라마는 밤샘 촬영 강행군에, 방송 당일까지 촬영하는 열악한 제작 환경으로 유명하다. 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사전 제작과 주 1회 방송을 통해 좀 더 여유로운 촬영 일정을 확보했다. 순조로운 시청률로 보건데, 우리나라 시청자들 역시 작품이 좋다면 기다려 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슬의>의 신선한 시도와 구성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 tvN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신선한 점이 그것만은 아니다. 지난 3월 26일 방송분에서는 오랜만에 외국에서 돌아온 이익준(조정석 분)의 아내가 등장했다. 아내 육혜정(기은세 분)은 반가워하는 남편이 무색하게 병원으로 찾아와 이혼을 종용한다. 여느 드라마라면 어떨까? 아마도 익준의 이혼이라는 소재에 한 회차를 통째로 할애할 것이다. 이혼의 위기, 심지어 외도의 소지가 있는 아내의 이혼 요구는 친구들에 둘러싸인 익준의 에피소드를 얼마든지 구구절절 애달프게 풀어낼 수 있다.

김희애 주연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역시 시청률 10%를 기록한 것은 물론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이혼을 둘러싼 갈등이 얼마나 드라마의 효자 아이템인지는 새삼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달랐다. 2일 방송분에서는 계절이 바뀌었고 어느새 익준은 이미 서류상으로도 이혼 절차를 다 끝낸 모습이었다. 앞서 <슬의>는 애정이 식은 아내의 모습을 아들의 땅콩 알레르기도 모르는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이어 4회에서 아들 우주(김준 분)는 "엄마가 우주 안 보고 싶으면 우주도 엄마 안 보고싶어"라는 말로, 덧난 상처를 드러냈다. 이혼을 사건이 아닌, 사람에게 촛점을 맞춰 다룬 <슬의>는 소재보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4회에서는 '마마 보이' 양석형(김대명 분)의 사연이 밝혀져, 5인방 이익준, 양석형, 안정원(유연석 분), 김준완(정경호 분), 채송화(전미도 분)의 캐릭터 소개가 마무리되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거나한 환영회를 피해 창고 안에 숨어들었던 5명의 친구들은 이제 어느덧 노안이 오고 입맛이 변하고 꽃 사진을 찍는 마흔 줄이 됐다. 이들이 여전히 '친구'인 이유는 무엇일까? 

글쓴이에게도 몇십 년 지기 친구가 있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대립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늘 우리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 비슷함이 우리를 통하게 하고, 믿게 하고 그래서 오랜 세월을 친구라 여기게 된 듯하다. 아마도 우정이 다 그렇지 않을까. 

우정의 조건, 좋은 사람들 

그렇다면 <슬의> 주인공 5명의 우정은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같은 직업을 가져서? 함께 밴드를 해서? 대학 시절부터 이들을 보아왔기에 이들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자처하는 응급실 봉광현 선생(최영준 분)은 이들의 공통점을 '없는 것'이라고 한다. '싸가지'가 없고, 쉴 틈이 없고, 사회성이 없는 등 저마다 하나씩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4회에 이르며 5명의 캐릭터를 소개했는데 과연 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들 다섯 명은 모두 과도 다르고, 싸가지가 없거나 사회성이 없는 등 성격도 다르다. 그렇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은 같았다.

'나이트클럽 죽돌이'인데도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이익준도 그렇다. 저녁도 못먹고 일하는 간호사를 배려해, 그는 퇴근도 마다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한다. 그게 이익준이다. 도시락을 준비한 인턴을 배려해서 선배 의사의 밥 투정을 유쾌하게 입막음하기도 한다. 또 주변 사람들이 의심할 정도로 장겨울(신현빈 분)의 외사랑을 지원해준다. 잔정 많은 점이야 이익준을 따라올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 그의 이혼도 해외로 공부하러 간 아내 대신 아들을 키우며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생긴 불상사였다. 

그 맞은 편에는 김준완이 있다. 그는 환자 보호자든, 인턴이든, 레지던트든 구분 없이 '싸가지' 없이 대한다는 점에서는 공평하다. 하지만 김준완 역시 알고 보면 속정이 깊은 사람이다. 결혼을 앞둔 딸의 아버지가 "수술 며칠만 미뤄달라"고 사정하자 김준완은 "안 됩니다. 돌아가시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세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나 그는 정작 아버지도 수술 때문에 못 간 딸의 결혼식에 찾아가 인사를 한다. 심장수술을 앞둔 미숙아의 어린 부모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어린 엄마의 눈물을 품어준 것 역시 김준완이었다. 채송화의 실연도, 양석형의 가정사도, 언제나 제일 먼저 마음 쓰는 사람은 김준완이었다. 

준완 못지 않게 사람들의 눈에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양석형이다. 그는 친구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와도 함께 있으면 불안해 하는 사람이다. 도대체 저런 사람이 어떻게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가 됐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4회에서 무뇌증 아이를 출산하는 엄마의 에피소드를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드러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 ⓒ tvN

 
양석형은 산모의 트라우마를 배려해 음악을 틀고,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출산 후 "미안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산모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위로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석형은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기에 더해 개인사까지 공개됐다. 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아버지의 외도, 여동생의 죽음, 어머니의 병이라는 과정을 겪으며 무뚝뚝했던 과거의 모습을 찾을 길 없는 '마마보이'가 되어버린 모습에서 더욱 석형이라는 사람의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안정원은 말할 것도 없다. 장래 희망이 신부였던 그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지 않아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헌신적이다.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당장 병원비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다. 4회에서는 월급까지 탈탈 털어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외국인 노동자를 도왔다. 돈뿐인가. 친구들 앞에서든, 후배 의사 앞에서든 그는 항상 주변을 챙긴다. 물론 편한 친구들 앞에서는 "너희 때문에 나는 하나도 못먹었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배려가 그의 몸에 뱄다는 건 정원을 정의하기에 가장 정확한 말이 아닐까 싶다. 

채송화도 지지 않는다. 응급실에 들어온 외국인 환자가 수술비 때문에 퇴원을 하겠다고 하자 그는 솔선수범 해서 '키다리 할아버지'를 수소문하는 등 환자를 도울 방법을 찾는다. 앞서 그는 아들을 병 간호 하느라 어머니의 건강을 미처 챙기지 못한 한 여성을 위로하고, 환자에게 더 적절한 방법으로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어시스트를 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휴머니즘이다. 그 정서가 이들 다섯 명을 오래도록 우정이라는 울타리로 묶어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석형의 수술에 기꺼이 밥을 거르며 찾아와 대기하는 안정원처럼, 그들은 늘 그렇게 선함의 연대로 따로 또 같이 친구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슬의>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결국 이렇게 좋은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살다보면 이별도 겪고, 죽음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를 버티게 만드는 건 결국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기운이 아닐까. <슬의>가 매회 우리에게 강변하는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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