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세기의 대결'은 끝내 허락되지 않는 걸까.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는 2일(이하 한국시각) 자신의 SNS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오는 19일로 예정된) 토니 퍼거슨과의 대결을 포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러시아에서 자가격리 중이라고 근황을 전한 하빕은 "지금은 우리 모두가 자신을 돌볼 때"라며 UFC249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빕과 퍼거슨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이 메인이벤트로 배치된 UFC 249는 오는 19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 지면서 뉴욕주 체육위원회가 뉴욕에서 열리는 모든 스포츠 행사를 취소했다. UFC의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개최지를 물색했지만 러시아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경을 봉쇄했고 결국 하빕은 퍼거슨과의 경기를 포기했다.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은 퍼거슨과의 '세기의 대결' 대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가격리를 선택했다.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은 퍼거슨과의 '세기의 대결' 대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가격리를 선택했다. ⓒ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라이트급 평정하고도 '마지막 검증' 강요 받은 챔피언 하빕

한국계 파이터 벤슨 헨더슨이 4차 방어전에서 앤소니 페티스에게 패한 후 UFC 라이트급은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한동안 지속됐다. 화려한 경기로 팬들의 많은 환호를 이끌어내던 '쇼타임' 페티스는 끊임 없는 전진과 레슬링 압박을 자랑하는 하파엘 도스 안요스에게 무너졌다. 도널드 세로니를 가볍게 꺾고 1차 방어에 성공한 안요스 역시 벨라토르에서 넘어온 '자객' 에디 알바레즈에게 덜미를 잡히며 타이틀을 잃었다.

하지만 드 단체의 챔피언을 석권한 알바레즈의 시대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지난 2016년 11월 뛰어난 실력과 신 들린 입담을 겸비한 '악동' 코너 맥그리거가 알바레즈를 2라운드 KO로 제압하면서 페더급과 라이트급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한 것이다. 라이트급 타이틀을 따낸 맥그리거는 페더급 챔피언이 됐을 때처럼 휴식과 사업, 복싱 외도 등을 이유로 방어전을 거부했고 결국 2018년4월 타이틀을 박탈 당했다.

맥그리거가 방어전을 거부하다가 타이틀을 박탈 당했을 때 무패의 전적으로 라이트급 강자들을 차례로 꺾으며 챔피언 벨트의 새로운 주인이 된 선수가 바로 하빕이었다. 압도적인 레슬링 실력과 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겸비한 하빕은 프로 파이터로 데뷔한 후 파죽의 25연승 행진을 달리다가 2018년 4월 알 아이아퀸타를 판정승으로 꺾고 라이트급의 새로운 챔피언이 됐다.

챔피언이 된 후 하빕은 더욱 완벽한 파이터로 거듭나며 라이트급을 지배했다. 2018년 10월 1차 방어전에서는 돌아온 맥그리거를 상대로 그라운드는 물론 타격에서도 한 수 위의 기량을 선보이며 압도한 끝에 4라운드 서브미션 승리를 따냈다. 저스틴 게이치와 알바레즈, 맥스 할러웨이 같은 강자들을 차례로 꺾으며 잠정 타이틀을 따낸 '다이아몬드' 더스틴 포이리에 역시 하빕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하빕은 28전 전승 8KO10서브미션이라는 완벽한 전적으로 2차 방어까지 성공했지만 격투팬들은 하빕이 라이트급의 진정한 최강자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라이트급 랭킹 1위에 올라 있는 퍼거슨을 꺾는 것이었다. 그만큼 격투팬들은 완전무결한 챔피언 하빕과 변칙적인 스타일에 진흙탕 싸움을 통해 상대를 그로기에 빠트리는 퍼거슨의 진검승부를 보고 싶어 했다.

하빕과 퍼거슨의 대결, 번번이 무산

사실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하빕과 2012년 5월 마이클 존슨에게 판정패를 당한 후 파죽의 12연승 행진을 달린 퍼거슨은 챔피언이 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재야의 강자'로 인정받았다. 따라서 두 선수의 맞대결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성사된 적이 있다. 하지만 두 선수가 옥타곤에서 서로 마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기가 성사될 때마다 번번이 사정이 생기며 대결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하빕과 퍼거슨은 2015년 12월 첫 번째 맞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하빕이 대회 준비도중 늑골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가 무산됐다. 예나 지금이나 격투기 선수가 대회를 준비하다가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두 선수의 첫 대결무산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격투팬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하빕과 퍼거슨의 2016년 4월 성사된 두 번째 맞대결도 퍼거슨의 간질환 증상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2017년 챔피언 맥그리거가 휴식을 선언하자 하빕과 맥그리거는 2017년 3월 UFC 209에서 잠정 타이틀전을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하빕이 감량 도중 신장 이상으로 경기에서 제외됐고 2018년에 열리기로 한 타이틀전에서는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퍼거슨이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4번이나 계속된 취소에 격노한 화이트 대표는 "내가 대표로 있는 한 하빕과 퍼거슨의 경기가 UFC에서 열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하빕과 퍼거슨은 여전히 라이트급뿐 아니라 UFC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로 군림했고 화이트 대표는 엄청난 흥행이 예상되는 두 선수의 경기를 또 한 번 성사시켰다. 두 선수 모두 챔피언 벨트가 걸려 있는 만큼 의지가 대단했다. 하지만 하빕과 퍼거슨의 5번째 대결은 두 선수의 건강도 부상도 아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때문에 또 한 번 무산됐다. UFC 역사상 5번이나 맞대결이 무산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상과 건강이상, 그리고 바이러스까지 방해하는 하빕과 퍼거슨의 계속된 대결 무산은 어쩌면 '운명'일지 모른다는 의문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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