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고 봄은 오나 봅니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한 꽃송이들에 맘이 설레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죠. 하지만 봄 꽃의 향연을 만끽하기도 전에 아쉬운 소식이 먼저 들려옵니다. '코로나 19'때문에 올 봄꽃 축제 일정 대부분이 취소됐습니다. 아쉬운 대로 집에서 잠시나마 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봄에 보면 딱 좋을 영화가 있어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며칠 전까지도 무성했던 샛노란 개나리가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연둣빛 잎사귀에 밀리고 있다. 만개한 목련꽃이 여전히 봄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벌써 봄이 가고 있다. 이토록 숨죽인 채로 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건만 이제 그만 가버려도 좋을 바이러스는 통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뉴스 한켠,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쳐도 몰려든다는 상춘객들에 혀를 차지만, 한편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음을 간질이다 못해 발바닥까지 근질이는 봄이 아니던가. 안 나가고는 못 배길 아름다운 계절이다.

허나, 마음따라 발길따라 가는 봄을 쫓을 수는 없다. 여차하면 끈질긴 바이러스에 여름마저 빼앗길 수도 있다. 아무래도 가는 봄을 함께 할 다른 계책이 필요하다. 근질거리는 발바닥은 동네 한 바퀴로 긁어주고, 간질대는 마음을 위해 봄바람처럼 살랑살랑한 영화를 찾아본다. 영화관 대신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무료영화 목록을 뒤져내 찾아낸 것이 영화 <클래식>이었다.

잊고 있던 감상을 일깨우다
 
영화 <클래식> 포스터

▲ 영화 <클래식> 포스터 ⓒ 시네마서비스

 
다시 보는 영화 <클래식>은 잠시 잊고 살던 감상을 일깨웠다. 싱그런 여름을 닮은 청춘의 순수한 사랑과 슬픔은 반감금 생활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날씨와 낮·밤에 따라 달리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답답한 눈까지 개운했다. 지금은 원숙한 배우의 반열에 접어든 손예진·조승우·조인성·이기우·서영희의 20대 초반의 모습은 이 시간도 곧 가리라는 위로를 전해준다.

동시에 이 오래된 영화는 지금 우리 시대가 겪는 아픔 한 자락을 느끼게 한다. 개봉 당시에는 느낄 수 없었던 아픔이었다. 그것은 기묘하게 전해져 왔다.

영화 <클래식>은 2003년 1월 30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물러갈 채비를 하는 겨울의 막바지에 먼저 도착한 봄 같은 로맨스 영화이다. 무려 17년 전에 만났던 영화를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다.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전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반전도 없는 그 잔잔함이 몰입을 이끈다. 깊은 밤 호수 한 가운데를 조용히 미끄러지던, 준하(조승우 분)와 주희(손예진 분)가 탄 배에 함께 오른 기분이다.

영화는 엄마 주희가 남긴 편지와 기록들을 딸 지혜(손예진 분)가 읽는 설정으로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배우 손예진이 엄마 주희와 딸 지혜 역할을 모두 맡아 큰 이물감 없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주희는 농촌 할아버지 집을 찾았다가 우연히 준하를 알게 된다. 준하에게 부탁해 할아버지에게 들은 '귀신이 나오는 집'에 함께 가면서 두 사람은 한껏 친밀해진다. 이 만남의 과정은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을 청소년 버전으로 영화화한 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닮아있다. 감독의 의중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소설을 읽었다면 영화가 대놓고 오마주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가 소설에서 가져온 가장 큰 요소는 무엇보다 순수한 이들의 만남과 사랑이다. 소설 속 소년과 소녀처럼 영화 속 주희와 준하의 시공간에는 서로에게 이끌리는 이들의 감정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즈넉한 폐가, 잔잔하고 맑은 호수, 밤하늘에 반짝이는 반딧불이 등 화면을 채우는 아름다운 정경은 이들의 마음 그 자체이다. 영화를 보며 어딘가 맑아지는 기분은 풍경과 어우러지는 이들의 순수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영화 <클래식> 한 장면

▲ 영화 <클래식>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그러나, 이들이 놓인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주희는 준하의 친구 태수(이기우 분)의 정혼자였고, 준하는 태수의 부탁으로 주희에게 대신 편지를 써주기 시작한다. 이후로 두 사람은 태수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숨긴 채 몰래 만나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영화는 이 꼬인 관계의 심각성을 강조하기보다는 70년대 학창 시절의 모습을 통해 낭만과 웃음을 선사한다. 점멸을 반복하며 준하가 주희에게 보내는 가로등 신호, 남녀 학생들의 경쾌한 댄스, 채변 봉투와 구충제 등의 소소한 장면들은 정감 어린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웃음을 전하면서도 예리함을 놓지 않는다. 웃는 와중에 낭만과 웃음, 그리고 주희와 준하, 태수의 관계 속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주희와 준하의 사랑에는 묵직한 시대의 아픔이 동반된다. 검정 교복을 입은 해맑은 고교생들의 모습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당시는 억압과 폭력이 일상이었던 6·70년대였다. 그 안에서 청춘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주희와 준하, 태수의 고통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의 복잡한 사정은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지혜는 상민(조인성 분)을 좋아하는 친구 수경(이상인 분)을 위해 매일 대신 이메일을 보내주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지혜 역시 상민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상민이 수경을 좋아한다고 확신하고 상민을 단념하려 한다. 과거 순탄하지 않았던 주희의 꼬인 사랑은 현재 지혜의 사랑에도 반복된다.

그러나, 가슴 아프기는 매한가지라 해도 지혜의 사랑은 엄마의 사랑만큼 힘겨워 보이지 않는다. 지혜의 다른 고민이나 고통은 사랑 외에는 그려지지 않는다. 영화가 전개하는 내용의 중심이 주희의 사랑에 가 있기도 하지만, 주희 때와는 사뭇 다른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영화 <클래식>이 제작된 2000년대 초는 1997년도의 외환 위기를 지나 세기말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2002년 월드컵을 가히 열광적으로 치러낸 시기이다. 

주희와 지혜의 사랑, 닮았지만 다르다

시대가 변하자 사랑의 양상도 변한다. 어두운 시절 행사되던 억압과 폭력은 사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어진 자유만큼 사랑도 가능했다. 주희와 지혜의 사랑은 흔한 삼각 관계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처했던 현실과 맺는 관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주희는 비만 맞으면 앓지만, 빗속을 힘차게 뛰어든 지혜는 아무렇지도 않다. 주희의 사랑은 허락되지 않는 것이지만 지혜의 사랑에 관여하는 외부의 압력은 없다. 주희는 반딧불이를 간직하는 반면, 지혜는 놓아준다. 주희에게 사랑은 몰래 품는 것이지만 지혜에게 사랑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주희의 사랑은 어려워 보인다. 준하를 향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우는 것이다. 현실에 붙잡힌 주희의 사랑은 자유롭지가 못하다. 이런 주희와 달리 지혜에게 사랑은 잡을 수 있는 현실이다. 지혜를 관통하는 시대의 고통 같은 것 없다. 그녀는 사랑 밖에 몰라도 되는 뜨거운 청춘이다. 지혜의 사랑을 막는 것은 표현하지 않는 '자신'이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듯한 상민이다.

엄마와 다르게 그려지는 딸의 모습이 이후 세대에 대한 몰이해로 비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엄마 세대와 같은 고통은 없을 것이라는 편협한 속단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전 세대에 비교해 구속했던 여러 장애물들이 사라졌다는 것이 좀더 강조된다.

청춘은 사랑을 원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주희의 시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조차 마음대로 하려는 압력이 가득했던 시대였다. 그 시대 속에 있던 청춘은 사랑하는 마음을 주변과 상대를 위해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영화 <클래식> 한 장면

▲ 영화 <클래식>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물론, 영화는 2000년대 초 청춘들의 안정이 지난 세대의 삶에 기초해 있음을 숨기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감상한 후 어딘가 편하지 않은 기묘한 느낌이 남았다. 안타깝게도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삶이 안정돼 보이지 않는다. 

전 세대와 달리 사랑할 자유를 가진 지금의 청춘들은 사랑조차도 포기하는 세대가 되어 버렸다. 최루탄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과 폭탄이 터지는 전쟁도 없건만 2020년의 청춘들은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다. 때문에, 다시 보는 영화 <클래식>은 개봉 당시보다 더욱 가슴 아프다.

영화 <클래식>이 드러내는 고전적 주제는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청춘의 애틋한 로맨스이다. 개봉 당시 영화는 이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다시 본 영화는 로맨스의 설렘보다 지금의 청춘들을 향한 '애틋함'만을 강하게 남겼다. 지금의 청춘들에게 과연 로맨스가 허락될까. 너무나 많은 비가 내려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클래식> 한 장면

▲ 영화 <클래식>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영화 <클래식>은 눈물을 자아내는 슬픔이 있으나 우울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시종일관 밝고 웃음을 주는 영화이다. 무겁게 늘어지기 보다는 산뜻하게 진행되는 영화이다. 이 봄의 끝을 잡기 위해 선택했던 영화는 그 시간을 충실하게 채워주었다.

안타까운 것은 영화에 담긴 기원이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의 청춘들이 사랑해야 할 특별한 시기에 별다른 걱정없이 사랑에 전전긍긍하는 할 수 있기를, 영화 <클래식>이 담고 있는 바람처럼 청춘의 잃어버린 봄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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