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 찬란

 
한국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특히 가족 간 불화나 상처가 있을 경우 그 간격은 더 벌어지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딱딱하게 굳어지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대표 껄끄러운 사이인 영조와 사도 세자의 갈등만 봐도 멀어진 부자 사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일 개봉한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형의 실종으로 소원해진 부자간의 간격을 좁히는 가족영화이면서 로드무비다. 빌 나이의 천연덕스러움과 맞장구를 치는 샘 라일리의 연기 호흡은 정적인 영화의 핵심이다. 터질 듯 말 듯 , 주거니 받거니. 쉼 없이 둘 사이를 이동하는 긴장감이 우리네 가족 같은 공감을 끌어낸다. 감각적인 색감과 영상은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나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연상된다. 색감, 대칭, 거울로 보는 시각, 만화 같은 화면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다.

아버지와 아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 찬란

 
평소처럼 스크래블 게임을 하던 중 홧김에 나간 큰 아들 마이클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무심히도 세월은 흘러 이제 성인이 되었을 마이클. 어느 날 시체 안치소에서 연락이 온다. 신원불명 시체를 확인해 달라는 것. 심란한 마음을 억누른 채 알란(빌 나이)은 피터(샘 라일리)와 동행한다. 맞아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떨리는 마음을 가진 채로 달려가기 바쁘다.

영화는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피터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반영한 듯 사전 형식을 빌려 일정표, 불편한, 희망이란 세 주제로 이야기한다. 형이 실종된 후 함께 하던 스크래블 게임에 집착하는 아버지와 티격태격 부자가 길 위에 오른다. 과연 고집불통 아버지와 까칠한 아들의 만남은 어떻게 흘러갈까. 영화는 팽팽한 신경전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피터는 아버지가 야속하고 늘 섭섭했다. 사라진 형 때문에 자신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며 호소한다. 엄마 없이 키우느라 아버지는 늘 엄격했고, 신중했으며, 계획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런 보살핌은 답답하기만 했고, 자신은 형의 대리인이 아닐까란 의심은 커져갔다. 하지만 사실 무뚝뚝해 보여도 알란은 삶 곳곳에 피터를 사랑한 흔적 남겨 놓았다.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 찬란

 
아버지는 해괴한 단어를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단어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때론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들로 가족들을 걱정하게 했다. 급기야 억지스러운 단어 조합을 토해내다시피 한다. 마치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는 것처럼 말이다. 인위적인 조합이라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된다는 결과 우선주의 사고다. 대체 왜 그렇게 스크래블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아버지는 실종된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해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크래블은 단어를 조합하고 연결하여 새로 단어를 만들어 내는 십자말풀이와 유사한 보드게임이다. 이 게임은 단어를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유리한데 조합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된다. '자살'이 '살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알란은 스크래블을 통해 두 아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과거에는 집 나간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뜰까 봐 두려움이 컸다면, 현재는 언제나 기다려준 남은 아들에게 진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수도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 찬란

 
사라진 마이클은 벌어진 부자 관계의 틈을 매워주는 맥거핀이다.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와 손자,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 쇄신에도 적극 활용된다. 서걱거리던 가족은 마이클 때문에 오히려 친밀감을 쌓는다. 피터 또한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아버지의 행동들이 사랑을 향한 집착이었음을 알게 된다.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판도라가 열어버린 상자의 남아 있는 희망 같다. 아무리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닥쳐와도 인간에게 '희망'있어 살아갈 이유를 확인하게 한다.

마이클은 죽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많다. 차라리 생사를 모르던 어제가 죽음을 확인한 오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약 없는 희망은 삶을 지치게도 하고 원동력 삼아 일어설 수도 있게 만든다.

그렇게 재단사인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행복의 단추 채우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준다. 우리나라에서 어른에게 술을 배우는 것처럼 양복 입는 법을 배운다. '가끔, 항상, 그리고 늘 열어 둘 것!'. 행복도 이 세 가지만 유념한다면 우리 삶에서 완벽하게 붙잡아 둘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부모님이 떠올랐다면 안부전화를 드려보는 것도 좋겠다. 겉으로는 별일 없다, 괜찮다 해도 부모님은 언제나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별일 없다, 괜찮다는 사랑한다는 부모님의 단어임을 알아차리자.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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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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