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됐다. 하지만 대회 운영과 정상 개최 여부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경기장 반입 금지 물품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욱일기)를 결국 제외한 것으로 알려지며 우려를 사고 있다.

3월 31일 스포츠닛폰 등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대회 경기장 반입 금지 물품으로 올림픽 불참 국가의 국기와 1mx2m이상의 깃발, 배너, 현수막, 카메라 삼각대, 호루라기, 부부젤라, 확성기, 레이저 포인터 등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전범기는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범기는 일본 공식 국기인 흰색 바탕에 가운데 붉은 원으로 구성된 일장기와 달리, 붉은 원 주위에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깃발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군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항복할 때까지 공식 사용됐다. 하지만 1954년 6월 30일 다시 채택되며 부활했고, 현재는 일본 해상 자위대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전범기 허용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방사능 문제와 더불어 도쿄 올림픽과 관련한 가장 큰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 전범기는 역사적으로 일본 제국주의 및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은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여전히 전범기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야구 '프리미어12' 한일전에서도 전범기가 관중석에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일본 측이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여러 차례 전범기를 응원도구로 반입, 사용해 문제가 된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전범기 반입 지적에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

한국이나 중국처럼 일본의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국가들로서는 전범기를 통해 과거 역사적 아픔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전세계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기간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 전범기의 경기장 반입을 공식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일본 정부와 조직위는 요지부동이다.

일본 측의 일관된 논리는 전범기가 일본 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정치성과 엮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만일 올림픽기간에 전범기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퇴장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지만 구체적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상 전범기 사용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에도 외무성을 통한 보도자료를 통하여 전범기가 정치적 주장이나 국수주의의 상징이라는 지적을 강하게 반박하며, 일본 고유의 문화이자 전통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해 온 깃발일 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범기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쏙 빠져있었다.

전범기 허용, 올림픽 헌장에도 위배

전범기 허용은 올림픽 헌장에도 위배되는 결정이다. IOC 헌장은 올림픽 경기장에서 어떠한 정치적인 행위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헌장 50조에는 '올림픽과 관련한 모든 시설이나 장소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지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까지 하고 있다. 스포츠를 정치적-민족적으로 이용하려는 모든 시도로부터 스포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올림픽에서 전범기 허용을 공식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뿐이다. 하지만 IOC는 전범기 문제와 관련하여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으며 도쿄올림픽 조직위를 제지하는데 소극적이다. 일본 정부와 올림픽조직위의 일방통행은 결국 IOC의 묵인 혹은 방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인의 축제에서 전범 국가의 상징을 노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기록은 훗날까지도 IOC의 역사적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국적이 나치라는 아픈 역사를 가진 독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씁쓸한 대목이다.

애석하게도 서구인들의 전범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직까지 한국이나 아시아 국가들만큼 강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치라는 단어가 서구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생각한다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과 역사인식이 적용되어야 한다.

결국은 지속적인 공론화와 국제공조를 통한 여론몰이를 통하여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전범기가 경기장에서 휘날리는 것이 묵인되는 올림픽이라면 이미 올림픽으로서의 순수성이나 정당성이 사라진 것이다. 이미 각종 문제로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었지만 이대로라면 내년에 대회가 정상 개최된다고 해도 전 세계 평화의 제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청정' 올림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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